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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사 나가면 뭐 먹고 살지” 대기업 과장이 1000만 조회 작가 된 사연 [H.OUR]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송희구 작가 인터뷰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사무실에서 송희구 작가를 만났다. [임세준 기자/jun@heraldcorp.com]

[헤럴드경제=박로명 기자] “회사 나가면 뭐 먹고살지?”

시작은 부장들의 한숨이었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던 작년 초 부장들의 미래는 깜깜했다. 평생 회사에 충성했지만, ‘역피라미드 인력 구조’의 대기업에선 은퇴가 코앞이었다. 전문 기술도 자격증도 없었다. 자칭 ‘투자 귀재’들로부터 내부 정보를 입수해 주식 투자를 했지만 결국 돈을 잃었다. 모두가 아는 정보였다. 자기집 마저 없는 부장들은 ‘전세 난민’이 되어 썰물처럼 수도권으로 밀려났다.

이런 부장들의 흥망성쇠를 곁에서 지켜본 이가 있었다. 11년째 대기업에 재직 중인 송희구(39) 씨다.

일찍이 부동산 투자로 ‘경제적 자유’를 이룬 송 씨는 부장들에게 “미리 경제적으로 준비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아무도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부장들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만 쌓여가던 어느 날, 송 씨는 결심했다. 전국의 ‘김 부장’에 관한 소설을 써야겠다고.

이렇게 탄생한 것이 소설 ‘서울 자가(自家)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다. 송 씨가 개인 블로그에 연재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돼 100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직장인들의 애환을 치밀하게 묘사해 ‘직장인 아포칼립스’ ‘극사실주의 부동산 소설’이란 호평을 받았다. ‘김 부장’ 시리즈는 3권의 책으로 출간됐고, 웹툰과 드라마 공개를 앞두고 있다.

송 씨는 현재 휴직을 한 상태다. 그는 여전히 매일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이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출근지가 회사에서 연예기획사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바로엔턴테인먼트’에서 송 씨를 만났다.

10년 만에 쓴 첫 소설…연재 10일 만에 입소문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사무실에서 송희구 작가를 만났다. 임세준 기자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 이유가 있나.

“하루 일과 중 하나가 일기를 쓰는 것이었다. 개인 블로그에도 가끔 글을 썼다. 작년 3월 갑자기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렇게 소설을 써서 개인 블로그에 하루 한편씩 일주일 동안 올렸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게시물이 퍼져서 많은 댓글이 달렸다. 그때부터 약간 부담을 느꼈다. 그래도 계속 썼다. 원래 제 블로그 이웃 수가 400명인데 10일 사이에 2만명이 됐다. 이게 뭔 일인가 싶었는데 소설을 10회까지 연재했을 때 출판사, 영화·드라마 제작사, 투자사에서 연락이 쏟아졌다. 신기했다.”

▶과거에 습작 경험이 있나. 전공이 궁금하다.

“전혀 없다. 10년 간 일기와 블로그에 글을 써온 것이 전부다. 작년까지 소설을 읽어본 적도 없었다. 그동안 자기계발서, 경제경영 책만 읽었다. 언젠가 경제나 부동산에 관련된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때마침 부장들의 상황이 겹치면서 소설을 쓰게 됐다. 그동안 꾸준히 일기와 블로그 글을 쓴 것이 누적이 돼서 도움이 된 것 같다. 전공은 응용수학과다. 관심 분야는 아니고 수능 점수에 맞춰서 갔다.”

▶‘새벽형 인간’으로 유명하다. 하루 일과는.

“매일 새벽 4시30분에 일어난다. 10년 전부터 이어온 일과다. 처음엔 새벽 6시 전에 지하철을 타면 교통비가 몇 백원 할인된다고 해서 시작했다. 일찍 출근하면 사무실이 고요했다. 저만의 세상 같았다. 책상에 앉아 일기와 소설을 쓰고, 신문과 책을 읽었다. 그러다 보면 업무를 시작하는 9시가 됐다. 지금은 육아휴직 중이지만 같은 생활습관을 지키고 있다. 오히려 글을 쓰는 시간이 늘어나 만족스럽다.”

"회사에 전념한 부장, 은퇴 후 사회 나오면 어린아이가 된다"
김 부장은 늘 1등으로 출근해서 꼴등으로 퇴근했다.
먼저 퇴근하는 팀원들에게 한 마디씩 툭툭 싫은 소리를 던졌다.
회식은 무조건 삼겹살에 소맥 말아 먹고
2차는 맥주집, 3차는 국밥집으로 갔다.
김부장은 그게 당연한 건 줄알았다.
서울 자가(自家)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1권 중

▶소설 속 ‘김 부장’은 실존 인물인가

“회사에서 관찰한 세 명의 부장을 토대로 가상의 인물을 만들었다. 한 명은 회사에 목숨 거는 사람이다. 자기 자신보다 회사를 먼저 생각하고, 회의 때 자주 화를 낸다. 다른 한 명은 투자를 잘못해서 사기를 당한 사람, 마지막 한 명은 밥을 엄청 빨리 먹는 사람이다. 모두 결핍 의식이 있다. 항상 불안하고 쫓기는 인생을 산다. 그러다 보니 은퇴 후 시야가 더욱 좁아진다.”

▶소설 속 ‘김 부장’과 달리 실제로 투자에 능한 부장을 본 적이 있나.

“못 본 것 같다. 대기업은 자기가 일을 잘하건 못하건 그냥 흘러가게 돼있다. 주변 사람들이 대기업 부장이라고 인정해 주니까 그 사실에 취해버린다. 어떤 면에서 안정적이기도 하다. 간혹 주식 투자를 해도 느낌으로 한다. ‘나만 아는 정보야’라며 주식을 산다. 오르길 기도하는데 떨어진다. 그렇게 회사에만 전념한 부장들은 은퇴 후 사회로 나오면 어린아이가 된다. 그래서 사업을 했다 망하고, 사기를 당하기도 한다.”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사무실에서 송희구 작가를 만났다. 임세준 기자

▶소설 속 ‘정 대리’와 ‘권 사원은’ 2030세대를 상징하는 것 같은데.

“정 대리와 권 사원을 통해 극과 극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동안 후배들을 봤을 때 삶의 방식이 크게 두 갈래로 나뉘었던 것 같다. 정 대리처럼 SNS에 중독돼 부자처럼 보이고 싶어 하지만 속은 비어있는 사람. 권 사원처럼 자산을 형성하기 위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알짜 같은 사람. 이런 등장인물의 모습이 공존해 있다.”

▶그렇다면 30대 ‘송 과장’은 자기 자신의 모습인가.

“1권과 2권에서는 제가 되고 싶은 ‘송 과장’의 모습을 그렸다. 소설에서 회사 동료들에게 조언해주는 역할로 나오는데 사실 전 ‘인싸’가 아니었다. 제가 회사에서 돈, 자산, 자본에 대해 얘기하면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불편해했다. 3권은 제 자전적 이야기를 그대로 썼다. 1권부터 3권까지 인간의 본성과 본질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고, 그 소재로 회사와 부동산을 활용했다.”

한국에서 '명품·자동차·아파트' 의미는?
옆 칸에 BMW가 세워져 있다.
주차를 하고 문을 여는데 옆 차에서 누군가가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자세히 보니 김 부장의 팀원 정 대리다.
어? 저 자식이! 감히 외제차를! 나도 그랜저 타고 다니는데!
믿을 수가 없다. 당황스러움과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내가 대리였을 때를 생각하면
상사나 선배보다 좋은 차를 타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서울 자가(自家)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1권 중

▶직장 생활에서 질투와 경쟁 심리를 잘 묘사했다. 명품·자동차·아파트가 주요 장치로 등장한다. 이 셋은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나.

“한국 사회에서 명품·자동차·아파트는 부의 측정 단위인 것 같다. 모든 사람이 셋 중 적어도 하나에 관심을 갖고 있다. 명품에 관심 있는 사람은 부동산에 관심이 없고, 반대로 부동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자동차에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자신을 표현하는 한 가지 수단인 것 같다.”

▶책의 장르가 뭔가. 소설이라는 사람도 있고 자기계발, 경제경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저도 고민이 많았다. 글이 유명해진 이후 출판사 여러 곳과 만났다. 첫 번째 출판사는 ‘무조건 소설’이라고 했다. 두 번째 출판사는 ‘무조건 경제경영’이라고 했다. 마지막 출판사는 ‘모르겠다. 시장에 나와 봐야 안다. 세 장르 중간 지점에 걸친 책이다. 정의하지 말자’고 했다. 결국 마지막 출판사와 계약했다. 책이 나온 이후 교보문고가 자기계발서로 분류했고, 나머지 서점들도 그대로 따랐다. 저는 개인적으로 소설이라고 부르고 싶다.”

대기업 과장, 그가 본업을 떠나지 않는 이유
송희구 작가는 작가로 유명해진 이후에도 대기업 과장으로 일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작가로 유명해진 이후에도 직장을 그만두지 않은 이유는.

“아직까진 그만두고 싶지 않다. 본업이 없으면 인생이 메마를 것 같다. 실제로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6개월간 했을 때 10년간 이어오던 4시30분 기상이 깨졌다. 그때 알았다. 완전히 자유로운 것보다, 적정한 제약이 있을 때가 더 좋다.”

▶‘김 부장’ 시리즈가 웹툰과 드라마로도 공개된다고 하는데.

“웹툰은 올해 8월 네이버 웹툰에서 공개된다. 드라마는 제작사와 회의 앞두고 있다. 아직 캐스팅은 확정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김 부장’ 역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배우가 있는데 비밀이다.”

▶작가로서의 목표는

“현재 집필 중인 소설이 있다. 정신과 의사가 만난 사람들의 관한 얘기다. 평범해 보여도 각자 아픔을 하나씩 갖고 있는 사람들에 관한 얘기다. 올해 말 공개할 것 같다. 장기적으론 제 책이 100년이 지나도 읽히는 고전의 반열에 올라서게 하고 싶다.”

dod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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