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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스포츠 타타라타] ‘천영석 탁구’가 남긴 것

고 천영석 회장의 빈소모습. /사진=대한탁구협회

# 영화 ‘한산’으로 새삼 화제가 되고 있는 이순신은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했다. 이런 연구를 바탕으로 ‘이기는 패턴’을 만들어냈고, 또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전쟁을 준비했다. 예컨대 임진왜란(1592년 4월)이 일어나기 14개월 전 전라좌수영 수군대장이 된 이순신은 ‘왜선’에 대응하기 위해 판옥선을 만들었다. 또 각종 화포를 준비해 흔들리는 배에서 사격하는 훈련을 시켰다. 노상 참모들과 토의했고, 정보를 얻기 위해 적의 동향을 파악하는 배인 ‘탐망선’을 띄우기도 했다. 이순신은 원래 ‘책을 많이 읽는, 공부하는 리더’이었다. 1년 동안 읽은 책이 대략 100권에 달한다는 기록도 있다. 이기기 위해 연구하고 또 연구한 것이다. 전쟁에서 요행은 없는 법이다. 불패의 신화는 공부에서 비롯된 것이다.

# 스포츠는 ‘작은 전쟁’이다. 그 속성이 아주 유사하다. 선수가 병사라면, 지도자는 지휘관이다. 어차피 나가서 싸워야 한다면 지도자의 리더십에는 ‘공부’가 필수적으로 포함돼야 한다. 끊임없이 상대를 분석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승리할 수 있는 핵심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 과정은 선수들과 함께해야 하고, 지도자와 선수는 신뢰를 바탕으로 목표달성을 위한 피나는 훈련을 소화해야 한다. 그래야 강적을 꺾을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꼭 맞는 지도자가 한국탁구에 있었다. 한달 여 전(6월 21일) 향년 92세로 소천한 천영석 전 대한탁구협회장이다(고인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 “우리나라 여자 탁구가 마침내 세계 정상을 차지했습니다. 우리나라가 구기 부문에서 세계를 제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대한뉴스 1973년 4월).” 천영석이 코치를 맡아 이에리사, 정현숙, 박미라 등과 함께 세계 최강 중국과 강호 일본을 꺾고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에서 우승한 것은 교과서에 실리는 스포츠 역사가 됐다. 그들이 귀국했을 때 30만 명의 환영인파가 몰렸고, 3개월에 거쳐 전국을 돌며 카퍼레이드를 했다. 탁구스타를 넘어 대학교수와 국가대표선수촌장, 국회의원을 차례로 거친 이에리사(이에리사 휴먼스포츠 대표)는 고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라예보 신화는) 한 마디로 천영석 탁구가 세계를 제패한 겁니다.”

# 바른 말 잘 하기로 유명한 이에리사 대표가 콕 짚어서 말할 정도로 ‘지도자 천영석’은 압도적이었다. 1956년 세계탁구선수권에 국가대표로 출전할 정도로 선수로도 성공했지만, 천영석 탁구는 지도자로 빛을 발한 것이다. 먼저 국내. 1961년부터 1983년 퇴직 때까지 22년간 한국산업은행 탁구팀을 맡으면서 천하무적으로 이름을 날렸다. 배출한 국가대표만 30여 명. 탁구계에서는 “별 볼일 없는 선수라도 천 감독 손에만 가면 펄펄 난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국제적으로는 1966년 방콕 아시안게임 때 김충용의 남자단식 금메달(이 금메달로 한국이 태국을 제치고 종합 2위를 달성했다), 1970년 아시아선수권 우승, 그리고 1973년 사라예보 신화가 나왔다.

# 비결은 무엇일까? 철저한 공부와 처절한 훈련이었다. 지도자 천영석은 ‘천영석이 지도하는 한 2류는 용납 못한다’는 신조를 만들었다. ‘독종’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공부든 훈련이든 적당히 넘기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훈련 과정에서 선수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나도 선수들과 똑같은 고생을 했다. 오히려 신기술을 개발하고 외국의 탁구 조류를 분석하느라 선수들이 잠자는 시간에 혼자 골머리를 앓는 일도 많았다”(천영석의 회고). 심지어 큰 대회를 앞두고는 1년에 집에 들어가는 날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여서 막내아들(현재 탁구용품회사 티아이티티의 천호성 대표)이 아버지를 몰라보기도 했다.

# 천영석은 선수들에게 늘 강조했다. “땀 흘리지 않으면 좋은 결과는 없다.”, “항상 머리를 써서 훈련하고 경기하라.”, “이기고 싶은 상대가 있으면 철저히 분석하라.” 스스로 ‘실제로 내 지도방식에 충실한 선수들은 모두 그만한 보상을 받았다’고 자평했다. 그럴 만도 하다. 탁구에 대한 고인의 열정은 아주 유명하다. 또 한 명의 사라예보 신화의 주인공인 정현숙(한국여성탁구연맹 회장)은 천영석 회장의 빈소를 찾아 이렇게 말했다. “(천 회장님은) 돌아가시기 전까지 열흘 동안 내내 탁구얘기만 했다고 하네요.”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도 탁구열정을 토해낸 것이다.

#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山高谷深)’고 했다. 탁구인 천영석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심지어 거친 경우도 있다. 특히 유명 일본 탁구용품사의 한국총판을 맡는 등 탁구계에서 사업을 했고, 한국실업탁구연맹-한국한국중고탁구연맹-대한탁구협회 회장을 차례로 역임하는 등 탁구계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현장, 그것도 가장 꼭대기에 머물렀기에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웅(이순신)까지 거론하며 그의 장점을 부각한 것은 이유가 있다. 한국탁구의 위상이 예전같지 못하기 때문이다. 88년 서울올림픽에서 탁구가 첫 정식종목이 된 이후 7회 연속 메달을 획득한 한국이 최근 두 번의 올림픽에서 연속으로 노메달에 그쳤다. 이제 ‘중국에 이어 못해도 2위’라는 평가도 불가능해졌다. ‘회장 천영석’, ‘사업가 천영석’은 몰라도 한국탁구는 지금 공부하고 노력하는 ‘지도자 천영석’이 그립기만 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스포츠 칼럼니스트(KTTL 사무처장)

peopl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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