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들, TSMC 추월에는 시간 필요”
일본 닛케이 “TSMC와 격차 커지고 있어”
칩4 동맹 협력 속 치열한 반도체 주도권 싸움, 추격 위기감 등 복합 요인
경계현(왼쪽부터) 삼성전자 DS부문장 사장,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최시영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사장. [삼성전자 제공] |
[헤럴드경제=문영규·김지헌 기자]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3나노미터(1㎚=10억분의 1m)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제품 출하식을 개최한 날 대만 유력 매체가 즉각 견제에 나섰다. 사실상 삼성전자가 기술로 추월한 것을 낮춰 평가하고, 자국 TSMC 추격에 실패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등 다급함을 드러냈다는 평가다. 미국 주도의 4개국 반도체 동맹 ‘칩(Chip)4’에 대만도 포함돼 한국이 가입할 경우 표면적 동맹 관계 이면에 치열한 신경전도 함께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만 디지타임스의 설립자인 콜리 황 사장은 삼성전자 3나노 출하식이 있었던 지난 25일 ‘구조적 장점’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TSMC는 제조능력, 고객 구조, 생태계 등 3가지 경쟁력을 동시에 갖춘 세계 유일의 기업”이라며 “5나노나 3나노 제조가 가능할 뿐 아니라 생산능력에서도 업계 리더”라고 추켜세웠다.
그는 “생태계 측면에서 TSMC는 매출의 8%를 연구·개발(R&D) 자금으로 유지하고 있다”면서도 삼성전자에 대해선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이 TSMC의 30% 수준인데 삼성 시스템LSI사업부는 TSMC의 R&D 투자규모를 달성하기 위해 최소 매출의 24%를 투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TSMC 건물 모습. [TSMC 홈페이지 캡처] |
콜리 황 사장은 “TSMC가 R&D 팀을 두 개로 나눠 ‘뛰는 개구리’ 모드로 배치하고 있어 경쟁사들이 단일 프로젝트에서 고객사를 끌어올 기회가 있을지라도 구조적인 변화를 가져오려면 시간이 걸린다”고 판단했다. 모리스 창 TSMC 설립자가 파운드리 진출을 선언한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에게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을 인용했으나 사실상 삼성전자의 3나노 최초 양산을 놓고 기술적 추월이 가능하지만 시장을 점할 수는 없다고 평가절하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면서 “시장 도전자(후발주자)로서 경쟁사를 넘어서는 것은 꿈을 실현하는 것이지만 처음으로 넘어서는 시도를 하는 동안 (시장에서) 탈락하는 경우도 매우 잦다”며 “만약 삼성이 최근 파운드리 사업 경영진 인사를 단행한 것이 사업부의 기대이하의 실적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실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고 꼬집었다.
디지타임스는 자국 TSMC에 대해선 우호적인 평가를 내리는 반면, 경쟁사인 삼성전자에는 다소 비판적인 경향이 있다. 30여년 경력의 IT시장 분석가인 콜리 황 사장은 디지타임스를 설립하면서 TSMC, 에이서 등을 비롯한 50여개 대만기업으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삼성은 그동안 공정기술에서 TSMC를 추격하는 입장이었지만 초미세공정에서 격차를 좁혀왔고 3나노 양산을 통해 처음으로 기술에서 TSMC를 추월했다. 대만 경제에서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이 높은 만큼 TSMC가 기술역전을 당한 것은 상징성이 크다.
삼성전자 임직원들이 지난달 30일 3나노 양산을 발표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
대만뿐 아니라 일본도 삼성을 견제하고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삼성이 3나노 양산을 시작한 이후인 지난 8일 삼성과 TSMC의 격차가 더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닛케이는 삼성이 3나노 공정의 고객에 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며, 생산 장소가 최신 설비 도입이 진행되는 삼성 평택캠퍼스가 아닌 화성이어서 극히 소규모의 양산 가능성이 제기된다는 추측성 보도를 내놓기도 했다.
대만과 일본 닛케이 보도를 이해하려면 한·미·일·대만을 포함한 동아시아-태평양 세력의 주요 역학 관계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안정적인 역내 반도체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경제안보 전략으로 칩4를 제안했지만 동맹 내에서도 주도권 싸움은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이같은 파트너십이 구축될 경우 주도권을 쥔 미국과의 관계에서 어떤 국가가 더 협상력을 확보할 수 있는지가 국가 간 주요 문제로 등장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힘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양향자 의원 역시 주도권 확보를 언급했다.
반도체 시장 내 기술력이 협상력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는데, 이에 따른 대만과 일본 측의 한국에 대한 견제와 ‘깎아내리기’가 지속될 수 있단 분석이다. 칩4 참여를 놓고도 고도의 외교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기업들로선 숨죽이며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전자산업을 비롯한 주요 산업에서 한국에 추월당했던 경험이 있는 일본과 대만은 소재·파운드리 산업까지 추격당하고 있어 국가적인 위기감도 높다. 일본은 이미 반도체 생산에선 패배했고 최근 3년간 무역분쟁을 계기로 강점인 소재산업도 한국이 상당부분 내재화를 이뤄 우위를 점하기 어렵게 됐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은 “칩4로 함께 행동할 수도 있지만, 이 국가들 안에서 불가피한 경쟁이 있을 수 있다”며 “반도체는 전략 산업이라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삼성이 결국은 메모리 기술 초격차를 바탕으로 팹리스 쪽에서도 박차를 가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장기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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