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 밸류체인 미드·다운스트림 편중 심화
“기술경쟁력 강화 지원책 나와야”
한화큐셀이 작년 건설한 미국 텍사스주 168㎿ 태양광 발전소 [한화큐셀 제공] |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잉곳·웨이퍼 기업 웅진에너지가 파산 수순을 밟으면서 태양광 가치사슬(밸류체인) 중 소재와 부품을 만드는 국내 기업들이 고사 직전에 이르렀다. 규모가 커지는 글로벌 시장에 역행하는 국내 상황을 두고 업계에서는 도태되지 않도록 기술경쟁력을 키우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회생법원 법인회생2부는 지난 8일 웅진에너지의 회생 절차 폐지 결정을 내리면서 조만간 파산 선고가 이뤄질 예정이다. 웅진에너지가 2019년 5월 회생 신청을 한 이후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국산품 사용을 유도하는 탄소인증제를 도입하고, 한화솔루션의 인수설 등이 나오는 등 웅진에너지를 살리기 위한 여러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웅진에너지는 끝내 지난달 회생 절차를 포기했다.
2006년 웅진그룹과 미국 썬파워의 합작으로 설립된 웅진에너지는 국내 마지막 남은 잉곳·웨이퍼 기업이었다. 태양광산업은 폴리실리콘을 소재로 한 잉곳·웨이퍼 등 부품으로 태양전지인 패널, 그다음 모듈을 만들어 태양광 발전을 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잉곳과 웨이퍼는 중국의 점유율이 각각 95%, 97%에 달할 정도로 높은 수준인 터라 웅진에너지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웅진에너지가 폐업하면서 국내 태양광산업의 ‘업스트림’은 없어지다시피 됐다. 태양광업계는 폴리실리콘과 잉곳 및 웨이퍼 등 소재·부품은 업스트림, 태양전지와 모듈은 미드스트림, 설비·시공·운영·보수는 다운스트림으로 구분된다. 국내 기업들은 소재와 부품이 겹치는 반도체 생태계를 기반으로 태양광 밸류체인 전반에 분포했으나 업스트림의 기업들이 상당수 철수하면서 현재는 국내 유일한 폴리실리콘 기업인 OCI만 업스트림에 남아있다.
국내 상황과 달리 글로벌 태양광 시장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태양광 발전 설비 설치량은 184GW로 전년 대비 28% 증가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태양광은 2050년 글로벌 전력 생산의 33%를 담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동시에 글로벌 태양광 시장에서 중국의 영향력도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지난 10년간 태양광 발전에 500억달러를 쏟아부으며 점유율을 50%에서 80%대까지 끌어올렸다. 중국과 중국 기업들이 진출한 동남아 국가들의 집중도가 석유 등 화석연료보다 커지면서 ‘햇빛 OPEC’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미국의 2021년 태양광 모듈 수입 국가 [미국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NREL)·현대차증권 자료]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미국과 유럽 등에서 태양광 공급망 다변화에 대한 논의도 커지고 있다. 미국의 태양광 개발업체들은 지난달 중국·동남아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향후 4년간 60억달러(약 7조8000억원)어치의 미국산 태양광 패널을 구매하기로 했다. 유럽 태양광협회도 성명을 통해 유럽이 태양광 설비 대부분이 중국산 수입품이라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이같은 다변화 속에서 국내 기업들에게는 일정 부분 수혜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낙관론도 나오면서 국내 태양광산업에 대한 지원책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 5월 새 정부에 제출한 ‘청정에너지 산업 활성화를 위한 경제계 건의 과제’를 통해 “신성장 원천기술을 사업화하는 시설에 포함돼 투자금액의 3%(대기업)에 대해 기본공제가 가능하나 투자금액 규모 및 타 국가 대비 빠른 기술선점의 필요성 을 고려했을 때 낮은 수준”이라며 지방투자 촉진 보조금 제도를 개편하고 투자세액공제 비율을 10% 이상으로 상향해야 한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도 기업들이 자체 기술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연구개발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경쟁력을 자체적으로 키울 수 있다면 좋지만 태양광산업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은 쉽지 않다”며 “예산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가치사슬을 복원을 위한 정책지원 보다는 현 밸류체인의 제조경쟁력을 강화하는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addressh@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