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투자의견 ‘중립’을 제시하는 증권가 리포트가 쏟아지고 있다. 국내 증권업계에서는 사실상 ‘매도’ 의견이다.

전세계적 긴축으로 기업실적과 투자환경이 크게 악화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투자의견은 ‘매수’이지만 목표주가를 현주가 보다 낮거나 큰 차이가 없는 수준으로 제시하며 사실상 매도 의견에 가까운 보고서들도 등장하고 있다.

12일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지난달 24건이던 국내 증권사의 ‘중립’ 의견 리포트는 이달 들어 열흘 남짓 만에 16건에 달하고 있다. 11일 하루에만 8건이나 쏟아졌다.

한국투자증권은 삼성카드에 “현재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41배이지만 자기자본이익률(ROE)이 올해 7.4%, 내년 6.2%로 하락해 투자 매력도가 감소될 점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신한금융투자는 컴투스에 “‘서머너즈워:크로니클’의 흥행을 기대하긴 어려우며, (전작에 이어) 연달아 흥행에 실패할 경우 개발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것”이라면서 “리스크가 주가 상승 여력보다 더 큰 시점이라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지난달에는 국내 증권사에는 이례적인 ‘매도’ 의견을 제시한 리포트가 등장하기도 했다. DB금융투자는 지난달 29일 ‘이상과 현실의 괴리’라는 리포트를 통해 카카오뱅크에 대해 당시 주가(3만3750원)보다 낮은 목표주가(2만4600원)를 제시하면서, 매도를 뜻하는 언더퍼폼(Underperform) 의견을 냈다.

DB금융투자는 “카카오뱅크의 밸류에이션은 은행들의 6배 이상으로 형성돼 있으며, 여기에는 고성장에 대한 기대가 충분히 반영돼 있다”고 냉정히 판단했다. 카카오뱅크 주가는 리포트 발간 당일 7.9% 급락했다.

그간 국내 증권사들은 이해관계가 적은 외국계 증권사와 달리 국내 기업들과의 선린관계와 투자금융(IB) 업무 관계 악화 우려로 ‘매도’ 의견을 내는 데 크게 인색했다. 증권사에 기업들은 금융상품 판매, 대출, 주식·채권 발행, 인수·합병(M&A) 등 기업금융 대상이 되는 잠재적 고객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중립’ 의견도 시장에서는 사실상 ‘매도’ 의견으로 받아들인다.

최근 ‘중립’ 의견을 낸 리포트들이 대량으로 발간되는 것은, 증권사 입장에서 이같은 기업과의 관계악화와 주가하락 유발리스크를 감안하더라도 더 이상 ‘매수’ 일색의 리포트를 내기 힘들만큼 투자환경이 어려워졌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증시불황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 글로벌 긴축정책 등으로 장기화되고 있다.

한편 이런 와중에도 목표가가 상향되는 종목들도 있다. 이날 한국투자증권은 LG이노텍에 대해, 다올투자증권은 에코프로비엠에 대해, 이베스트 투자증권은 덴티움에 대해 각각 목표가를 상향했다. 윤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