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교체 71명보다 규모 더 커질수도
홍장표(사진)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이 한덕수 국무총리를 직접적으로 비판하고, 사의를 표명했다. 한 총리가 홍 원장을 겨냥해 “소득주도성장 설계자가 앉아있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냐”고 지적한 뒤 8일만이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비서관 출신인 황덕순 한국노동연구원(KLI) 원장도 사퇴 의사를 밝혔다. 황 원장은 6일 한국노동연구원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원장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일자리수석비서관을 지낸 황 원장은 작년 2월 한국노동연구원장으로 취임해 임기가 1년 6개월가량 남았었다. 사퇴 압박이 있었는지 등 사의를 밝힌 이유와 경위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처럼 홍 원장과 황 원장이 잇따라 사의를 밝히면서 문 정부 인사로 분류되는 공공기관장들이 올해 내에 대거 교체될 가능성이 커졌다. 올해 이미 예정된 교체 대상자만 71명에 이르는데, 그 규모가 더 커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7일 KDI 등에 따르면 홍 원장은 전날 ‘총리님 말씀에 대한 홍장표 KDI 원장 입장문’을 기자들에게 발송하고 “총리께서 정부와 국책연구기관 사이에 다름은 인정될 수 없고 저의 거취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에 크게 실망했다”며 “국책연구기관은 연구의 자율성과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원장의 임기를 법률로 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KDI의 독립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국책 연구기관은 정권과 뜻을 같이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분을 뵌 적은 없었다”며 “총리께서 KDI와 국책연구기관이 정권의 입맛에 맞는 연구에만 몰두하고 정권의 나팔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신다면, 국민의 동의를 구해 법을 바꾸는 것이 순리”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사의를 밝혔다. 홍 원장은 “생각이 다른 저의 의견에 총리께서 귀를 닫으시겠다면, 제가 KDI 원장으로 더 이상 남아 있을 이유는 없다”며 “제가 떠나더라도, KDI 연구진들은 국민을 바라보고 소신에 따라 흔들림 없이 연구를 수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 경제정책기조인 민간주도성장에 대한 비판적 소신도 드러냈다. 그는 “10년 전 이명박 정부 집권 초기에 표방한 ‘비즈니스 프렌들리’와 다르지 않다”며 “복합 위기를 극복하고 대전환의 시대를 대비하기에는 미흡해 수정·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미국 바이든 대통령도 작년 의회 연설에서 ‘감세를 통한 낙수경제학은 작동한 적이 없다’고 단언한 바 있다”고 비판했다.
현재 370개 공공기관(본부기관 350개·부설기관 20개) 중 임기 만료 등으로 연내 기관장 교체가 예정된 공공기관은 71개다. 그러나 법에 정해진 임기에도 불구하고 문 정부 시절 임명된 인사들에 대한 사퇴 압력은 거세지고 있다.
문 정부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이태수 가톨릭꽃동네대 교수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김재진 전 대통령실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 조세팀장은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으로, 강현구 전 국정기획자문위원은 국토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정해구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주현 산업연구원장 등도 낙하산 논란이 일어난 바 있는 인물이다.
홍태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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