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잿값·인건비·물류비 급등…불확실성 커져
소비심리도 위축…“무리한 투자 꺼리는 분위기”
LG에너지솔루션과 미국 제너럴모터스(GM) 합작사인 ‘얼티엄셀즈’가 미국 테네시주에 짓고 있는 합작2공장. [얼티엄셀즈 제공] |
[헤럴드경제=김지윤 기자] 새 정부 출범 이후 잇달아 대규모 투자 계획을 내놨던 국내 기업들이 최근 이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있다. 인플레이션과 환율 급등 여파로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다.
특히 배터리, 반도체, 자동차 등 해외에 대규모 공장 건설을 계획 중인 대기업들은 현지 공장 건설에 당초 계획보다 더 큰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 상황이라 고민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2분기 착공에 나설 계획이었던 미국 애리조나 원통형 배터리 공장 건설 계획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1조7000억원이 투입될 예정이었던 이 공장은 ‘원통형 배터리 독자 생산공장’이라는 점에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국내 배터리 업체 중 북미 시장에 원통형 배터리 전용 독자 생산공장 건설에 나선 것은 LG에너지솔루션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2024년 하반기부터 양산에 돌입할 예정이었지만,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공장 건설 비용이 대폭 증가하자 투자의 수익성을 다시 따져보기로 했다.
발표 당시 1213.8원이던 원달러 환율은 착공을 앞둔 최근 1300원대까지 급등했다.
다만 LG에너지솔루션은 공장 계획 자체를 철회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 현지 상황에 따라 투자 규모, 시점 등을 조율할 계획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투자 비용이 대폭 늘어난 만큼 LG에너지솔루션이 배터리 판매 가격 등을 두고 고객사와 협의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며 “기존 안대로 투자를 진행할지, 규모 면에서 일부 조정이 있을지는 1~2달 정도 이후에 결정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사업장 전경. [삼성전자 제공] |
170억 달러를 투입해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제2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짓고 있는 삼성전자도 비용 부담이 커졌다. 지난해 11월 테일러시 부지를 확정할 때만 해도 투자 금액은 우리 돈으로 총 20조원 규모였으나 6개월 만에 환율 상승 영향으로 2조원가량 부담이 더 늘어났다.
삼성전자는 다만 2024년 하반기 가동 목표 시점까지 아직 1년 6개월가량 남아있는 만큼 계획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미국 법인에 유보된 달러 자금을 우선 활용하기 때문에 당장 환율의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미국 내 인플레이션 심화로 원자잿값, 인건비, 물류비 등이 급등하며 비용 부담은 당초 계획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조지아주에 연간 30만대 규모의 전기차 전용 공장과 배터리셀 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한 현대자동차그룹도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6조3000억원을 투입, 2025년 상반기 가동을 목표로 내년 상반기 착공에 들어갈 계획인데 경영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관련 부품 협력사들의 동반 진출에도 먹구름이 꼈다. 당장 비용 부담이 커지며 신규 진출이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잇따르고 있어서다.
국내 투자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우려된다. 실제 원화값이 싸지면 해외에서 원자재나 설비 등을 들여올 때 더 많은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경기 위축에 따른 수요 둔화도 대규모 투자를 앞둔 기업들에 부담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고금리·고환율·고물가 3중고 상황으로 공장 건설비뿐 아니라 이자 비용도 대폭 늘어난 상황”이라며 “소비 심리까지 위축돼 당초 투자 계획을 무리해서 이행할 필요가 없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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