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월급 빼고 다올랐다” 인상 요구, 단체행동 조짐도
‘물가↑→임금↑→물가↑’ 악순환의 고리, 인력 이탈, 파업 가능성, 원가 부담 등에 기업들 고심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지난 28일 서울 마포구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열린 회장단 조찬 간담회에서 기업들의 임금인상 자제를 요청했다(왼쪽). 노동계는 지난 28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앞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양대노총 결의대회’를 열고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연합] |
[헤럴드경제=문영규·서경원·김지윤 기자] 정부가 고(高)물가를 경계하며 대기업들에 임금 인상 자제를 촉구한 반면, 노동계는 파업까지 불사하며 기업에 임금 인상을 지속 고수하고 있다. 임금을 둘러싼 양측의 상반된 요구에 기업들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우수 인재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고 곳곳에 인력난도 가중되고 있어 마냥 임금 인상을 자제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이런 가운데도 정부 압박이 거세지고 있어 기업들이 물가라는 ‘짐’까지 떠안게 됐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9일 재계에 따르면 자동차 업계는 임금인상을 둘러싸고 갈등이 증폭되며 파업 가능성까지 열려 있다. 교섭 결렬을 선언한 현대차 노조는 당장 내달 1일 전 조합원을 상대로 쟁의행위(파업) 찬반투표를 진행한다. 실제 파업이 진행되면 2018년 이후 4년 만이다.
노조는 사측에 기본급 16만5200원(호봉승급분 제외) 인상, 순이익 30% 성과급 지급, 신공장 건설 등을 요구했지만 사측은 난색을 보이고 있다.
기아 역시 현대차와 같은 수준을 요구하고 있고 한국지엠 노조는 기본급 14만2300원 인상, 성과급 400% 등을, 르노코리아 노조는 기본급 9만7472원 인상, 일시금 500만원 지급 등을 요구하고 있어 장기화할 조짐이다.
대한항공은 지난 23일 일반노조, 조종사노조와 임금 총액 기준 10% 인상안에 잠정 합의했지만 코로나로 타결하지 못한 2020·2021년 임금인상률을 동결키로 해 조종사노조를 중심으로 불만이 거세다.
전자업계는 우수인재 확보를 위한 임금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노조의 인상 요구안을 받아들여야 할지 고심 중이다. 회사 내부에서는 인력 이탈을 막고 경쟁사 대비 처우를 개선해달라며 임금 인상 목소리가 높다.
SK하이닉스 기술사무직 노조는 올해 기본급의 12.8% 인상률을 적용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복수노조 사업장인 SK하이닉스는 전임직(생산직)·기술사무직 양 노조와 별도로 교섭을 벌이는 중이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은 이달 초 임직원들과의 대화 자리에서 임금 협상과 관련해 신속한 진행과 구성원과의 원활한 소통 등을 언급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노사협의회를 통해 올해 평균 9% 임금 인상에 합의했다. 그러나 삼성전자 사무직노동조합 등 4개 노조가 지난해분 임단협을 마치지 못했고 요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자택 앞에서 여전히 농성을 벌이고 있다. 노사협의회에서 합의된 인상률은 이미 적용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기, 삼성디스플레이 등도 9% 인상하기로 했다. LG그룹 계열사들은 올해 임금 인상률을 평균 8~10% 수준에서 합의했다.
조선업계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배달 등 다른 업종으로 인력 이탈이 이어지며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지만 적자 상태인데다 후판 가격 등 주요 원자재가 상승으로 임금 인상이 어려운 상황이다.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동조합은 30% 임금 인상을 주장하며 한달 가까이 파업을 지속하고 있으며 회사는 법적 대응을 검토중이다. 현대중공업 3사(중공업·미포조선·삼호중공업)는 기본급 14만2300원(호봉승급분 제외) 인상 등 공동요구안을 마련, 내달 사측과 상견례할 계획이다.
한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최저임금위원회의 내년 최저임금 결정을 앞두고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계를 보장과 임금 격차 해소, 소득 분배 개선 등을 이유로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요구했다.
이런 가운데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장관은 “과도한 임금 인상을 자제하고, 생산성 향상 범위 내 적정 수준으로 임금을 인상해달라”고 기업들에 촉구했다. 대기업 주도의 임금상승이 물가상승을 비롯해 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 확대와 사회 양극화 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정부와 노조 사이에서 기업들의 고민이 많을 것”이라며 “임금인상이 이뤄지면 좋겠지만 여러 입장을 고려해 회사와 노조가 절충안을 잘 찾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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