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아노 아몬(왼쪽) 퀄컴 최고경영자와 젠슨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모습[퀄컴과 엔비디아 유튜브 캡처, 테일러시 제공] |
[헤럴드경제=김지헌 기자] 미국이 자국의 반도체 공급망 강화를 위해 삼성전자와 TSMC를 붙잡을 묘수가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미국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인 퀄컴과 엔비디아를 통해 첨단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의 생산력을 확보, 중국보다 반도체 제조 경쟁력을 우위에 두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는 “반도체 의존이 미국 안보를 위태롭게 한다”는 제목의 기고문이 실렸다. 국제관계학자인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와 에릭 슈미트 구글 최고경영자(CEO)가 공동 작성한 글이다.
이 글에서 저자들은 퀄컴과 엔비디아 등을 활용해 삼성전자와 TSMC를 미국이 붙잡을 것을 제안했다. 기고문에서 이들은 “미국은 대만과 한국 정부에 힘을 써 TSMC와 삼성이 미국과 협력관계를 구축해 미국에서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도록 해야 한다”며 “퀄컴과 엔비디아 같은 미국 기업들과 합작 투자를 하게 해서 미국 방위 체제가 이들 나라에 대한 안보 공약을 이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들 각국 정부의 제조 독려와 미국의 세제 지원, 보조금 등 유인책이 있다면 TSMC와 삼성이 미국에서 더 많은 반도체를 생산하면서 돈을 벌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저자들이 우려하는 것은 중국 반도체의 눈부신 성장세다. 이미 중국은 반도체를 장치에 부착하는데 필요한 회로판 생산이 전세계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중국은 공급망을 쥐락펴락할 핵심 자원들을 장악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세계 실리콘의 70%를 생산하며 텅스텐의 80%와 갈륨의 97%를 생산한다. 이들 모두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이다.
저자들은 “중국이 반도체 공급망에서 유리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면 미국이 따라잡을 수 없는 기초기술 우위를 달성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서명이 담긴 반도체 웨이퍼. 두 정상은 5월 20일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공장에서 첫 만남을 가진 뒤 3나노 미세공정이 적용된 최첨단 반도체 웨이퍼에 서명했다. [대통령실 제공] |
이에 팹리스 기업이자 미국기업인 퀄컴과 엔비디아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들 기업은 삼성전자와 TSMC가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최대 발주 고객사들이기 때문이다. 팹리스 기업은 파운드리인 삼성전자와 TSMC에 반도체 제조를 의뢰하지만,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반도체는 해당 팹리스가 만든 상표를 달고 나가게 된다. 예를 들어 퀄컴은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인 스냅드래곤, 엔비디아는 컴퓨터에 설치되는 그래픽처리장치(GPU)인 지포스 시리즈 등을 위탁생산해 자사의 브랜드로 판매하고 있다.
퀄컴과 엔비디아는 올해 1분기 전세계 팹리스 매출 순위에서 각각 1위와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의 제안은 단순히 정부차원의 협력을 넘어 팹리스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민간기업들을 활용해 경제 안보를 강화하자는 제안이라 주목된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공급망 확보가 국가간 총성 없는 전쟁이라 할 정도로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제안”이라고 평가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미국과의 안보 논의시 한국 정부가 협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국내 팹리스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팹리스 기업의 시장 영향력이 막강해질수록, 미국 중심의 팹리스 고객사가 삼성 등 파운드리 기업에 미치는 영향력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1년 기준 국내 팹리스 기업의 전세계 시장 점유율은 1% 미만(IC인사이츠 기준)으로 나타나, 이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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