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된 철강제품 인도에 열흘…냉연·선재 16일 생산재개
안전운임제 근본개선 실패…정부 컨트롤타워 부재 지적도
국토부 관련입법 지원에도…연장기간 등 불확실 ‘갈등 불씨’
윤 대통령 파업 종료에 “조마조마…경제위기 살얼음판”
화물연대 총파업 일주일째인 13일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쌓여 있는 컨테이너 옆에 화물차들이 멈춰서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원호연·김용훈 기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의 총파업은 2조원대의 막대한 손실을 남기며 7일 만에 종료됐다. 이번주를 존립위기의 마지노선으로 삼았던 산업계는 셧다운 사태를 피했다는 것에 안도하는 분위기지만 물류망의 취약성은 그대로 남았다는 점에서 불씨는 여전하다. 파업의 발단이 된 안전운임제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 방향에 대해서는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한 채 단순히 시한만 연장하면서 이번과 같은 갈등이 반복될 여지가 남았다.
15일 국토교통부와 화물연대에 따르면 양측은 전날 오후 8시부터 경기도 의왕 내륙물류기지(ICD)에서 5차 실무대화를 열고 2시간40여분 만에 안전운임제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내용 등에 합의하고 협상을 최종 타결했다. 협상 타결로 화물연대는 집단 운송 거부를 중단하고 이날부터 물류 수송을 재개하기로 했다.
합의문에는 ▷국회 원 구성이 완료되는 즉시 안전운임제 시행 성과에 대해 보고 ▷컨테이너·시멘트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 지속 추진 및 품목 확대 ▷유가보조금 제도 확대 검토 및 운송료 합리화 지원·협력 ▷화물연대 즉시 현업 복귀 등이 담겼다. 협상 타결에 따라 화물연대는 15일부터 현장으로 복귀해 물류 수송을 재개하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출근길에 화물연대 파업 종료에 대해 “조마조마하다”면서 “전 세계적으로 경제위기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데 우리가 다 함께 전체를 생각해서 잘 협력해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육상물류망이 마비된 지 7일 만에 정상화되지만 산업계와 우리 경제에 남겨진 상처는 컸다. 실제 생산·출하 차질이 빚어진 철강·석유화학·자동차·시멘트·타이어업계 피해 추산액은 약 2조원에 달한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국내 5개 주요 철강사가 파업 첫날인 7일부터 13일까지 출하하지 못한 누적 물량은 총 72만1000t(톤)에 달했고, 이에 따른 피해 규모는 1조1500억원으로 집계됐다.
각 철강사는 긴급한 물량을 사전에 출하하고 선박과 철도 등 대체 운송 수단을 통해 제품을 실어 날랐다. 그러나 전국 철강 유통망 공급을 책임지던 육송망을 대체하기는 어려웠다.
포스코의 경우 총 30만t의 철강제품 육송 출하가 막혔다. 화물연대 파업이 끝났지만 이 물량을 출하하려면 고객사별 제품 선별작업으로 10일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공장 가동 중단으로 선재 약 2만3000t, 냉연 1만3000t의 생산 차질이 빚어졌다. 해당 공장은 16일 오전 생산을 재개한다.
시멘트·레미콘업계의 피해액도 912억원으로 추산됐다. 성수기 대비 시멘트 출하량이 13%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전국 건설 현장에 시멘트 부족 현상이 속출했다. 시멘트업계는 45개 킬른(소성로) 중 2개의 가동을 중단했다. 하루 생산량이 정해져 있는 만큼 설비 가동을 되살린다고 해도 시멘트 공급량이 빠르게 늘어나기 어려운 상황이다.
화물연대 총파업 8일째인 14일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열린 5차 실무교섭에서 협상이 타결된 후 화물연대 관계자들이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 |
완성차업계에서는 화물연대의 운송 거부로 일부 부품 수급에 차질을 빚어 조립 라인이 가동과 중단을 반복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을 비롯해 업계 전체적으로 총 5700여대의 생산 차질과 2571억원의 손실을 겪었다. 가뜩이나 반도체 공급난으로 고객 출고가 1년 반 이상 지연된 상황에 생산 차질이 가중됐다. 3만여개 부품 중 하나라도 없으면 조업이 어려운 조립산업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줬다는 평가다.
또 석유화학제품의 출하가 평소 10분의 1로 줄어든 석유화학업계는 5000억원의 피해를 입었다. 타이어 업계는 한국타이어 대전 공장 출하 중단 등으로 570억원가량의 피해를 입었다.
산업의 핏줄인 물류망을 정비하고 합리적인 운임 체계를 구축할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안전운임제는 2020년부터 3년 일몰제로 도입돼 올해 말 폐지될 예정이었다. 국회엔 이미 안전운임제 상설화를 골자로 한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과 화물차 안전운임 적용 대상을 전 품목으로 확대할 수 있도록 한 같은 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국토부도 지난 3년간 안전운임제의 시행 성과를 국회 원 구성이 완료되는 즉시 국회에 보고하고 관련 입법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연장 기간이나 제도 확대 범위 등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 없어 갈등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번 화물연대 파업으로 정부 내 노정관계 컨트롤타워 부재에 대한 지적도 제기된다. 특히 화물연대의 일몰제 폐지(연장) 투쟁이 예고된 상황에서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가 정권교체기란 점을 이유로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는 점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실제 국토부는 한국교통연구원의 안전운임제 일몰 관련 연구용역보고서를 지난 2월 받고도 4개월여 동안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해당 보고서가 전반적으로 안전운임제의 성과를 주목하는 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어 새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내부에서 제기된 탓이다.
고용노동부 역시 “(화물연대 파업의) 주무 부처는 국토부”라며 ‘강 건너 불구경’식의 태도를 보였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화물연대 파업 시작을 앞둔 지난 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110차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 참석차 출국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산업계 전반으로 피해가 심화되기 전에 불을 꺼서 일단 다행이지만 기업의 운송비 부담이 가중될 가능성이 남아 있어 향후 국회 논의 결과를 주시해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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