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석방 이후 활발해진 경영 행보, 450조원 투자 이어져
유럽 출장 통해 장비 등 글로벌 공급망 안정, 대규모 M&A 등 모색 전망
각계 이 부회장 사면 여론 높아져…가석방 1년, 8·15 특사에도 주목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연합] |
[헤럴드경제=문영규·김지헌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오는 8일 가석방 300일을 맞는다. 300일 동안 등기임원 미등재로 적극적인 ‘총수 리더십’을 펼지치 못했다. 아울러 해외 출장도 6개월 만에 물꼬를 틀 정도로 급변하는 글로벌 경영 환경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어려운 제약도 많았다. 그런 와중에 한·미 정상회담에서 ‘반도체 동맹’ 가교 역할을 톡톡히 했고, 5년간 450조원이라는 대규모 투자 계획도 발표했다. 이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 삼성전자를 제대로 진두지휘할 수 있도록 사면을 조속히 단행해야 한다는 여론이 재계 등 안팎에서 확산되고 있다.
▶가석방 300일, 450조 투자까지 숨가쁜 행보= 이재용 부회장은 유럽 출장을 위해 7일 출국에 나섰다. 이날은 선친인 고(故) 이건희 회장이 “마누라·자식 빼고 다 바꾸자”고 말한 ‘프랑크푸르트 선언’ 29주년이며, 8일은 지난해 8월 13일 가석방된 지 300일째 되는 날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월 국정농단 뇌물공여 및 횡령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 형을 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가 그 해 8월 광복절을 앞두고 207일 만에 가석방됐다.
가석방 직후 삼성은 코로나19 이후 미래 준비를 위한 240조원(3년 간)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하고 시스템반도체, 바이오, 차세대 통신, 인공지능(AI), 로봇 등에 대한 투자를 본격화했다.
이 부회장은 9월에 미국 이동통신 업체인 디시네트워크의 찰리 에르겐 회장을 만나 1조원 규모의 5G(세대) 통신장비 수주에 역할을 했다. 이어 11월에는 미국 출장을 통해 모더나, 버라이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의 글로벌 최고경영자와 연이어 만나며 차세대 기술 협력을 강화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 이후엔 한·미 경제안보 강화에 일조했다. 지난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방문 때는 직접 양국 정상을 수행했고 윤 대통령과는 취임 이후 한 달 동안 5차례나 만났다. 경쟁자이자 동반자인 팻 겔싱어 인텔 CEO와도 만나 사업 기회를 모색했다. 혁신성장은 물론 국민소득 증대와 경제발전을 위해 반도체, 바이오, AI 등 신성장 산업에 향후 5년 간 45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목숨 걸고 하겠다”며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연합] |
▶글로벌 경영 박차, 대형 M&A 타진하나= 이 부회장은 이번 출장에서 먼저 글로벌 반도체 노광 장비업체 ASML의 본사가 있는 네덜란드로 향했다. ASML은 초미세 공정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산하는 업체다. 2년 전인 2020년에도 EUV 노광장비 확보를 위해 ASML 본사를 찾아 피터 베닝크 최고경영자(CEO) 등을 만난 바 있다.
주요 경쟁사인 대만 TSMC, 미국 인텔도 ASML의 노광장비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장비 수급에도 경쟁이 붙은 상황이다.
네덜란드에는 오랫동안 삼성의 유력 인수합병(M&A) 대상으로 거론된 차량용 반도체 기업 NXP의 본사가 있어 이번 출장에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부회장은 네덜란드 외에도 독일, 영국 등 3개 국가 이상을 찾을 것으로 관측된다. 독일에선 차량용 반도체 기업 인피니온이 있고, 오랜 협력사인 지멘스를 찾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영국에는 반도체 설계(팹리스) 기업 ARM이 있어 M&A 논의 가능성 역시 거론된다. 이 부회장이 지난달 30일 팻 갤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와 서울에서 만나 양사 협력방안을 논의하면서 ARM 인수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 바 있다.
아울러 이 부회장이 영국 케임브리지에 있는 삼성 AI 연구센터를 찾아 직원들을 격려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최근 이 부회장이 적극적으로 경영 행보에 나서며 구체적인 M&A 논의 가능성에도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삼성전자의 1분기 말 현금성 자산이 124조원에 달하는 데다 시스템반도체를 미래 먹거리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인 만큼 대규모 M&A 가능성이 점쳐진다.
▶높아진 사면 여론, 재계 한 목소리= 이번 출장은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 불출석 요청을 법무부가 승인해 가능했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재판에선 실형을 선고받고 가석방됐지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재판이 진행 중이다.
공판은 내년 1월까지 계획이 잡혀있고 가석방은 내달 29일 형기가 만료되지만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5년간 취업이 제한된다.
이에 재계는 매주 열리는 재판으로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어렵고 총수 공백에 대한 우려가 있다며, 이 부회장이 국가 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사면해줄 것을 건의하고 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최근 추경호 경제부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이재용 부회장과 신동빈 회장 등 기업인들 사면도 적극 검토해달라”고 재차 요청하기도 했다.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도 “재판 때문에 제대로 경영을 할 수 없다면 결국 국민이 피해를 보는 것”이라며 ‘국민의 뜻’에 따라 사면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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