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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세사기·대박 신화·위장결혼까지…K-콘텐츠에 비친 부동산공화국 [부동산360]
드라마 속 부동산 이야기
영화와 드라마 부동산 현실 묘사 많아
<응답하라1988>의 신도시 개발
<싱크홀><월간집>에서의 내집마련의 꿈
<대박부동산> 부동산 중개업자
<이구역의 미친×>의 부녀회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정부는 최근 폭등하고 있는 서울의 주택가격을 안정시키고 주택공급을 확대하기 위해 경기도 성남시 분당동 일대에 540만평 규모, 고양군 일산읍 일대에 460만평 규모로 총 18만가구의 아파트 및 단독주택을 공급하기로 했습니다.”

한 가족이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분당과 일산 신도시 개발 계획에 대한 뉴스다. 엄마는 뉴스를 보면서 혼자 중얼거린다. “아파트를 저래 많이 짓는데, 왜 우린 살 집이 없노”. 이들은 반지하 전세에 살고 있다. 아들은 갑자기 아빠를 향해 조른다. “아빠 우린 언제 이사가? 나도 아파트 살고 싶은데. 내 친구들도 이제 반 이상은 아파트 살아.”

2015년 첫 방송한 드라마 〈응답하라1988〉의 한 장면이다. 1989년 1기신도시 개발 계획을 발표하던 당시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 살던 덕선이네 가족의 이야기다.

최근 개봉한 영화 〈싱크홀〉(2021년작)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동원(김성균 역)은 소위 ‘영끌’을 해서 빌라를 마련하고, 직장 동료들을 초대해 집들이 행사를 한다. 마침 발코니 창을 통해 멀리 한강변 아파트 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한 동료가 말한다. “(저긴) 에버레스트 산 같지 않냐? 어디에 있는지 아는데 못올라가는 산!” 옆에 있던 직장 후배가 동원을 보며 아쉽다는 듯 내뱉는다. “대출을 왕창 땡겨서라도 아파트로 가셨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정대리 엄마는 올 초 4억5000주고 아파트를 샀는데, 6개월만에 2억 올랐대요.” 동원은 화가 난다. “누가 아파트 좋은 거 모르냐! 못사니까 안산 거지. 이 집 사는데도 11년 걸렸다.”

1980년대나 2020년대나 아파트에 들어가 살고 싶은 서민들의 목소리는 왜 이리 똑같은지 모르겠다. 그 사이 1기 신도시는 물론 2기신도시까지 건설됐고, 서울 도심에도 무수한 아파트가 새로 지어졌는데도 말이다.

요즘 한류 바람이 거세다. ‘K드라마’, ‘K무비’의 인기가 전세계적으로 뜨겁다. 인기있는 작품을 보면 의외로 부동산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다. 무주택자의 서러움, 집값이 오르기를 바라는 서민들의 애환, 부동산 개발을 통해 돈을 벌겠다는 욕망 등이 녹아 있는 작품이 많다. 말 그대로 우리 사회의 부동산에 대한 인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K콘텐츠다.

▶쫓겨나고 사기당하는 무주택 서민들= 최근 방영된 드라마 〈월간집〉(2021년작),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2021년작), 〈도도솔솔라라솔〉(2020년작), 〈편의점샛별이〉(2020년작)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등장인물들이 모두 전세보증금을 날렸다는 거다.

〈월간집〉(2021년 작)의 영원(정소민 역)은 자신이 살던 집이 경매로 팔려 쫓겨난다. 집주인은 영원이 ‘전입신고’를 하기 전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후 잠적해 버렸다. 은행은 대출금 회수를 위해 집을 경매로 넘긴다. 세입자가 전입신고를 하기 전 은행이 담보설정을 해놓았으면 법적인 권리가 앞서기 때문에 먼저 자금을 회수해 간다. 그러고도 돈이 남으면 후순위 세입자에게 돌아가는 몫이 생기지만, 영원은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쫓겨난다.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집은 영화 〈기생충〉(2019년작)의 가족이 살았던 것 같은 반지하 뿐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에서 도재학 선생(정문성 역)은 ‘부동산이중계약’ 사기를 당한다. 중개업자가 도선생하고 전세계약을 하고 집주인에게는 월세 계약을 했다고 속인 후, 보증금을 가로챘다. 〈편의점샛별이〉의 샛별이(김유정 역)나 〈도도솔솔라라솔〉의 구라라(고아라 역)도 비슷한 사기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 요즘 집을 투자목적으로 산후 중개업소에게 임대 대리권을 주는 경우가 많아, 언론에 종종 등장하는 사기의 유형이다.

사기가 아니어도 요즘 세입자가 가장 크게 겪는 어려움은 전셋값 폭등이다. 최근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구필수는 없다〉(2022년작)에서 구필수(곽도원 역)가 겪는 상황이다. 집주인은 주변 시세가 너무 많이 올랐다며 갑자기 전세보증금을 1억원 올려달라고 요구한다. 구필수는 집주인에게 임대차보호법대로 5%만 올려야하지 않느냐고 맞서지만, 집주인은 자신이 “들어가 살겠다”며 묵살한다.

‘집주인 실거주’는 실제 집주인이 ‘계약갱신’을 거부할 때 흔히 쓰는 방법이다. 그래 놓고 실제 거주하지 않고 방치했다가 몇 개월 후 높은 가격에 전세를 새로 놓는 편법을 쓴다. 실제 집주인이 거주하는 지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는 맹점을 이용한 범죄다.

▶내 집 마련에 나서기는 하지만…= 이들의 심정은 〈월간집〉의 영원의 대사에 함축적으로 표현된다. “저렇게 집이 많은데, 왜 난 내 집이 하나 없어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냐고요!”

영원은 편의점에서 ‘원플러스 원’ 음식만 사먹고, 매일 마시던 아아(아이스아메리카노)를 끊을 정도로 악착같이 내 집 마련을 위한 종잣돈을 모은다.

하지만 그렇게 돈을 모아도 아파트를 사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 서울의 중위소득 가구가 서울에 있는 중간가격대 주택을 사려면 한 푼도 안 쓰고 18.4년을 모아야 한다. 생활비로 소득의 3분의1을 쓴다면 27년 이상 걸린다는 의미다.

그러니 수입이 적고 모아둔 돈이 많지 않은 무주택자들의 선택지는 정해져 있다. 집을 사는 걸 포기하거나 아파트 보다 싼 오피스텔이나 빌라 등을 목표로 삼는다.

〈대박부동산〉(2021년작)의 1화가 오피스텔에 투자했던 청년의 이야기였던 건 이런 맥락을 반영한다. 이 드라마의 소재는 좀 독특하다. 공인중개사가 귀신을 쫓는 퇴마사인데, 흉가가 된 부동산에서 사연 있는 원귀를 퇴치한 후, 정상적으로 거래되도록 한다는 이야기가 에피소드 마다 반복된다. 1화에 등장하는 원귀는 부동산 불패를 믿고 ‘영끌’을 해서 오피스텔 분양권을 샀지만, 건설사 도산으로 분양권을 날린 두 청년의 이야기다. 대출이자가 감당이 안돼 공사가 중단된 건물 옥상에서 자살한 후, 건물을 떠도는 귀신이 된 젊은이들의 사연이다.

이 드라마엔 대출까지 동원해 어렵게 다세대 빌라를 샀다가 사기당한 60대 여성의 이야기도 나온다. ‘할인분양’하는 미분양 빌라가 있다는 중개업자의 말만 믿고 급히 계약을 진행하면서, 약정서류에 적힌 신탁계좌가 아니라 엉뚱한 입금용 계좌로 돈을 보내다 사기를 당하는 경우다. 분양대행업자가 중간에 돈을 가로챈 것이다.

드라마 〈해피니스〉(2021년 작)에서는 아파트 청약을 위해 젊은이들이 어떤 노력을 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경찰특공대원인 윤새봄(한효주 역)은 공무원 아파트 특별공급을 받기 위해 형사 친구인 정이현(박형식 역)과 사실상 위장결혼을 한다. 청약가점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위장결혼까지 하는 현실을 꼬집은 거다.

▶‘집값’을 높이기 위한 조건= 어렵게 집을 마련했으면 이젠 ‘집값 띄우기’다. 드라마 〈이구역의 미친×〉(2021년 작)에선 아파트 집값을 띄우기 위한 부녀회 모습이 꽤 흥미롭게 묘사된다. 한 부녀회 간부가 “입구 개폐장치도 바꾸고, 도색도 바꾸고, 저평가된 우리 아파트값을 하루빨리 정상화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고 제안한다. 그리곤 단지 이름인 ‘홍직 아파트’를 트렌디하게 바꾸자고 제안한다 .

입주민들이 하나둘 의견을 낸다. “홍직센트로아파트 어때요?”, “‘홍직’ 빼고 ‘마포센트럴 아파트’가 좋지 않아요?”, “여기가 마포구도 아닌데, ‘마포센트럴’은 좀 그렇지 않아요?”, “아니, 마포갈비가 마포에만 있나요? 마포 생활권이란 의미에서…”

이런 방법이 실제 집값을 올리는데 얼마나 효과를 봤는지는 확인된 사실은 없지만, 꽤 흔히 일어나는 일인 듯하다. 실제 정부가 이런 행위를 자제시키기 위해 각 시도에 공문을 보내 “부적절한 아파트 이름 변경을 허용하지 말고 필요하면 감독권을 발동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을 정도다. 정부는 이 공문에 “최근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 집값을 올리려고 페인트 칠만 새로 해 건설사의 옛 브랜드를 새 브랜드로 내거는 일이 생겨나고 있다”면서 “이는 주택법상 ‘공동주택의 효율적 관리를 저해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적시했다.

집값을 유지하는 메커니즘으로 교육을 빼놓을 수 없다. 꽤 오래된 영화지만 〈맹부삼천지교〉(2004년 작)가 그런 현실을 보여준다. 영화는 생선장수 맹만수(조재현 역)가 아들 맹사성(이준 역)을 일류대에 보내겠다고 결사적으로 나서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뤘다. 일류대에 보내기 위해 맹만수가 선택한 방법은 강남으로 이사 가는 것이다. 그는 한 강남 아줌마로부터 ‘일당십락’이란 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집과, 학교와 학원이 반경 1킬로미터 이내에 있어야 명문대에 합격하고 10킬로미터 밖에 있으면 떨어진다는 것이다. 맹만수는 하도 답답해 학교를 찾아가 선생님과 상담을 한다. “누가 그러던데 강북에서 일등을 해도 서울대 못 간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맞습니다.” “학교하고 학원하고 거리가 멀면 서울대 가기 힘들다는데 사실입니까?” “그것도 맞습니다.”

최근 종영된 드라마 〈그린마더스클럽〉(2022년작)에선 초등학교에서 영재반이 폐지된다는 소식을 들은 단지 주민들끼리 집값 하락을 걱정한다. 집값을 유지하려면 교육 여건이 좋은 것은 물론 사건사고도 없어야 한다.

영화 〈목격자〉(2018년 작)에선 아파트 단지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단지 내 부녀회가 주민들에게 ‘경찰 언론 협조 반대 동의서’를 돌리는 모습이 그려진다. ‘본 사건에 관해 우리 아파트 주민은 일체 경찰과 언론에 협조하기 않는다’는 내용에 서명을 하라는 거다. 단지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는 걸 알리는 데 협조했다가 집값만 떨어질 수 있다는 게 이유다. 동의서를 받은 상훈(이성민 역)은 황당해서 아내에게 묻는다. “단지에서 사람이 죽었는데 신고를 하지 말자니 무슨 황당한 소리냐?”, 아내는 세상 물정 모른다는 듯이 답한다. “소문내서 입주민에게 좋을 게 없잖아. 아파트값 떨어지면 책임질거야!”

사람이 목숨을 잃은 사건보다 집값 떨어지는 걸 먼저 걱정하는 씁쓸한 세태에 대한 풍자다.

영화와 드라마는 시대를 담는다. 부동산으로 인해 고통 받고, 좌절하다가도 희망을 찾는 이야기가 곳곳에 숨어 있다. 실제 부동산에 대해 우리들이 느끼는 그대로다.

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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