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글로벌 팹리스 1%…OSAT 글로벌 선두 기업도 없어
“삼성의 투자 뿐 아니라 대만처럼 정부의 지원도 필요”
삼성전자 반도체 제조 라인 모습[삼성전자 제공] |
[헤럴드경제=김지헌 기자] 최근 삼성이 반도체·바이오·신성장 IT 등 미래 신사업을 중심으로 향후 5년간 450조원을 투자할 예정이라고 밝힌 가운데, 파운드리(반도체 칩 위탁생산) 생태계 강화에도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점쳐져 기대를 모은다. 글로벌 파운드리 1위 기업인 TSMC가 위치한 대만의 경우 파운드리의 산업의 전후 생산 과정을 연결하는 기업들의 수준 역시 글로벌 선두권이다. 이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기업의 투자와 더불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단 분석이 나온다.
지난 23일 삼성은 미래 성장 투자계획을 발표하며 “삼성의 (팹리스) 시스템반도체 1등 도약으로 팹리스, 디자인 하우스, 패키징, 테스트 등 ‘(팹리스) 시스템반도체 생태계’의 동반성장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시스템반도체는 스마트가전, 스마트카, 스마트팩토리,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전장, 로봇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기기의 핵심 기능을 구현하는 역할을 한다. 각종 전자기기가 인간의 눈, 코,귀, 피부처럼 데이터를 감지하고 두뇌처럼 분석, 처리할 수 있도록 기능을 갖춘 반도체다. 정보를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정보를 연산하는 성격에 가까운 비메모리 반도체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2025년 시스템반도체의 시장 규모는 4773억달러(약 599조원)로 메모리 반도체(2205억달러)의 2배 이상이 될 전망이다. 팹리스(시스템반도체에 대한 설계 전문기업) 산업을 보면, ▷중앙처리장치(CPU) 분야의 인텔 ▷그래픽처리장치(GPU) 분야의 엔비디아 ▷시스템온칩(SoC) 분야 퀄컴 ▷이미지센서 분야 소니 등 각 글로벌 최강자들이 현재 이미 포진된 상태다.
삼성전자는 ▷고성능·저전력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5·6G 통신모뎀 등 초고속통신 반도체 ▷고화질 이미지센서 등을 중심으로 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내에 이런 시스템반도체을 키우기 위한 관련 생태계 지원에도 나설 예정이라고 전했다.
웨이저자 TSMC CEO [TSMC 제공] |
시스템반도체는 이를 디자인하는 디자인하우스, 설계하는 팹리스와 이후 이에 대한 위탁생산을 맡는 파운드리, 그다음 공정을 마무리하는 후공정(OSAT) 기업들을 거쳐야 최종 완성된다.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인 만큼, 분업화와 고도화가 제품 생산 구조에 적용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기업을 하나의 생태계로 구축하고, 기업간에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작업 역시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다. 삼성의 정책 발표는 파운드리 전 단계인 팹리스 기업과 이후 단계인 OSAT 기업들의 경쟁력 역시 함께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반도체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시스템반도체 부문에서 우리나라의 세계 점유율은 3%에 불과하다. 그 가운데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로 시야를 좁혀보면, 지난해 기준(IC인사이츠 자료) 비중은 단 1% 수준이다.
TSMC가 위치한 대만의 경우 파운드리를 중심으로 한 생태계 구축을 강화하면서, 반도체 경쟁력 역시 강화됐단 분석이 나온다. TSMC는 중소 반도체 설계 지적재산권(IP)을 만드는 회사들을 끌어안는 각종 연합체(IP얼라이언스·EDA얼라이언스·디자인 센터 얼라이언스·클라우드 얼라이언스 등)를 일찌감치 만들었다.
덕분에 고객사에게 제공할 수 있는 반도체 설계 포트폴리오가 방대해졌다. 삼성전자가 2019년 비슷한 형태의 ‘삼성 파운드리 생태계(SAFE)’를 만들었지만 한 발 늦었다는 평가다.
또 대만은 정부 차원에서도 파운드리 생태계 지원에 나서고 있다. 1987년 TSMC 창업자 모리스 창이 회사를 세울 때부터 대만 정부가 출자 형태로 자금을 대줬다. 정부는 TSMC에서의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AP를 만드는 팹리스 기업인 자국의 미디어텍 등도 지원했다.
미디어텍 AP 관련 이미지[미디어텍 홈페이지 캡처] |
최근 미디어텍은 세계 스마트폰 AP 시장에서 절대강자로 평가받던 미국의 퀄컴을 앞지르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미디어텍은 AP시장에서 40% 점유율을 기록하며 퀄컴(27%)과 격차를 13%포인트로 넓히는데 성공했다. 지난해 4분기에는 미디어텍(33%)과 퀄컴(30%)의 점유율 격차가 좁혀졌으나, 미디어텍의 경쟁력은 향후 더 강화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대만은 파운드리 업계 1위 TSMC를 중심으로 OSAT 기업들 역시 키우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가 발표한 글로벌 OSAT 순위(2021년 3분기 기준)에 따르면 6개의 대만 업체가 톱10에 포함됐다. ASE(1위), SPIL(4위), PTI(5위), KYEC(8위), 칩모스(9위), 칩본드(10위) 등이다. 나머지는 미국 1개, 중국 3개다. 한국 업체는 전무하다.
전문가들은 뒤처진 국내 파운드리 생태계를 확대하려는 시도가 지속돼야 한다고 분석한다. 한국과 미국의 기술 동맹 분위기 덕에, 미·중 무역분쟁과 기술유출 우려 등의 이슈가 있는 중국보다는 국내 시장이 반도체 발전에 더 유리해지기도 했다. 2019년 삼성전자는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고, 파운드리 사업 강화에 나서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이 대규모 투자를 하더라도 민간기업이다보니 팹리스나 OSAT 기업 등과 조직적인 협력을 지속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대만과 같이 정부차원의 정책 지원 역시 뒷받침돼야 글로벌 반도체 경쟁에서 한국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raw@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