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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드벨벳’도 춤추게 한 이 화가의 정체…"악마의 아들? 나 원 참" [후암동 미술관-보스 편]
초현실주의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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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어릴 적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본 뒤 관련 책과 영화를 모두 찾아봤습니다. 잘 그린 건 알겠는데 이 그림이 왜 유명한지 궁금했습니다. 그림 한 장에 얽힌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몰랐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이 경험을 나누고자 글을 씁니다. 미술사에서 가장 논란이 된 그림, 그래서 가장 혁신적인 그림, 결국에는 가장 유명해진 그림들을 함께 살펴봅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일부 확대), 1504년경, 384 x 205 cm
레드벨벳 'Feel My Rhythm' 뮤직비디오 캡처. 이들 뒤에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그림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 천국 장면에서 등장하는 분홍색 분수와 유사한 조형물이 있다. [유튜브 채널 SMTOWN]
레드벨벳 'Feel My Rhythm' 뮤직비디오 캡처. 이들 뒤에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그림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 천국 장면에서 등장하는 분홍색 분수와 유사한 조형물이 있다. [유튜브 채널 SMTOWN]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 1500년께 네덜란드 스헤르토헨보스에 있는 한 작업실. 딱 봐도 깐깐해 보이는 중년의 한 남성이 붓질에 온 정신을 쏟고 있습니다. 단호한 눈빛과 각진 코, 꾹 다문 입과 푹 들어간 두 볼에서 꺾이지 않을 고집이 느껴집니다. '한 명이라도 더 이 그림을 보게 해야 한다….' 마치 계시를 받은 듯, 이 사람은 자기 몸집보다 크고 넓은 세 폭 제단화(triptych·세 부분으로 나눠지는 그림)를 빨리 그려내고자 하는 의지로 가득합니다. 이 남성의 작업실에는 속담집 등 온갖 책과 종교서가 수북이 쌓여 있습니다. 그는 그림을 그리다 말고 여러 번 고민합니다. 깔린 책들을 열심히 뒤지더니 "그래, 이 구절을 활용하면 좋겠어!"라고 외치곤 다시 그림을 그립니다.

도대체 무슨 대작을 그리기에 작업 삼매경일까요. 그의 작업물을 슬쩍 봅니다. 벌거벗은 채 스스럼없이 애정 행각을 벌이는 남녀, 끔찍한 괴물에게 고통받는 인간, 수상한 생명체들의 술 파티,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로테스크(grotesque)한 괴물들…. 입이 떡 벌어집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색채는 동화책 삽화처럼 알록달록합니다. 당황스럽습니다. 엄격·진지·근엄의 표상 같은 이가 이런 걸 그리고 있다니요. '이 사람, 제정신 맞아?'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그림은 말 그대로 '초현실' 그 자체였습니다. 이때가 고작 16세기였습니다. 초현실주의 화풍의 시대였던 20세기보다 400년이 앞선 시기였습니다. 이 남성의 이름은 히에로니무스 보스(1450?~1516)입니다. 별칭은 지옥의 화가, 악마의 화가입니다. 시대를 앞서가도 너무 앞서갔던 그는 20세기 이후에야 '초현실주의의 아버지'란 칭호를 얻게 됩니다.

그림을 보고…할 말을 잃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 1504년경, 384 x 205 cm

그리스도교와 관련 있는 세 가지 장면이 담긴 이 그림을 보는 순서는 왼쪽부터 오른쪽입니다. 연대기적 구성입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일부 확대), 1504년경, 384 x 205 cm
히에로니무스 보스,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일부 확대), 1504년경, 384 x 205 cm

왼쪽 패널부터 볼까요. 가장 눈에 띄는 장면은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아담과 이브입니다. 이들 모두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한가운데에 분홍색 분수가 있지요. 생명의 물줄기를 뿜어냅니다. 정결을 상징하는 유니콘은 물을 마십니다. 흰색으로 그려진 코끼리기린도 마음 놓고 시간을 보냅니다. 새들은 평화롭게 날아다닙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일부 확대), 1504년경, 384 x 205 cm

아담과 이브 아래 있는 웅덩이에서는 펄떡임이 느껴집니다. 새로운 생명들이 끊임없이 태어나고 있습니다(그 안에서 유유히 책을 읽고 있는 오리너구리를 찾았나요?). 식물 중에서는 유독 야자수가 눈에 띄는데요. 당시 이 나무는 그리스도교인의 삶을 상징했습니다. 전체적으로 평화롭고 풍요로운 천국 풍경입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일부 확대), 1504년경, 384 x 205 cm

중앙 패널입니다. 이때부터 분위기가 심상찮습니다. 무엇보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남녀가 너무 많습니다. 부끄러움 따위 느끼지 않는 이 사람들은 환락에 젖어 있습니다. 벌거벗은 여성들이 중앙 연못에서 물놀이를 합니다. 대놓고 유혹의 자세도 취합니다. 온갖 동물에 올라탄 남성들은 각자의 전리품을 든 채 이들을 포위하듯 주변을 내달립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일부 확대), 1504년경, 384 x 205 cm
히에로니무스 보스,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일부 확대), 1504년경, 384 x 205 cm

먼 물가를 보면 남성과 인어가 서로를 끌어안고 있습니다. 가까운 왼쪽 아래 호수를 보면 남녀가 금이 간 투명한 구슬에서 서로의 육체를 탐닉합니다. 당시 플랑드르에는 '행복은 유리구슬처럼 빨리 부서진다'는 속담이 있었다고 합니다. 인간이 다른 생물체와 끈적하게 뒤엉킨 장면도 보입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일부 확대), 1504년경, 384 x 205 cm

당시 생선, 조개 등은 육욕을 상징했습니다. 심지어 인간과 여러 과일이 필요 이상으로 끈끈히 붙어있는 모습도 찾을 수 있습니다. 순수하게 벌거벗고 노는 인간들을 보니 낙원이 분명한데, 성스러운 분위기는 전혀 아닙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일부 확대), 1504년경, 384 x 205 cm

잠깐 심호흡하시고요. 오른쪽 패널입니다. 어디부터 봐야 할 지 모를 만큼 기괴합니다. 절망스러울 정도입니다. 악몽입니다. 불바다가 넘실댑니다. 물은 오물이 둥둥 떠 있는 듯 색이 탁합니다. 인간들은 이곳에서 찔린 채, 빠진 채, 매달린 채 고통받습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일부 확대), 1504년경, 384 x 205 cm

오른쪽 아래부터 보면 수녀복을 입은 돼지가 인간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 위에 있는 새 부리를 가진 괴물은 인간을 먹고 배설합니다. 왼쪽 아래, 도박용 주사위를 든 손은 잘린 채 칼이 꽂혀 있습니다. 바로 위, 쾌락의 상징인 류트하프 등 악기들이 고문 도구가 돼 있습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일부 확대), 1504년경, 384 x 205 cm

그리고 중앙 부분에는 몸이 텅 빈 어떤 남성의 형체가 있습니다. 몸 안에는 선술집이 차려졌지요. 악마 같은 생명체가 모여 술을 마십니다. 머리에는 또 다른 악기인 백파이프가 보입니다. 이 남성은 이미 지옥의 지박령(地縛靈)이 된 듯, 두 팔은 배 위에서 나무뿌리처럼 굳어 버렸습니다.

이곳은 지옥 그 자체입니다. 천국에서 지옥까지의 장면이 담긴 이 그림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쾌락의 정원)'입니다.

이게 500년 전 그림이라고?

아니 왜, 뭐 때문에, 이렇게까지. 두서없이 묻고 싶습니다. 이 그림은 요즘 시대 잘 나가는 힙합 가수의 앨범 커버가 아닙니다. 16세기 초에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르네상스 시대라곤 하지만요. 보스가 당시 여러 파격적인 실험이 주도적으로 이뤄졌던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 때문에 보스는 지금도 돌연변이 화가로 칭해집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판 화가"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그런데요. 보스는 억울합니다. 보스는 그저 '중2병'틱한 재미에 젖어 '내 모든 지식과 상상력을 총동원해 세계관 최강의 지옥을 보여주마!'라는 생각으로 붓을 든 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제발 이 그림을 보고 경각심을 가지길 바란다', 즉 '우리 함께 착하게 살아요'라는 뜻을 품고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종교의 메시지를 충실히 전달했을 뿐인 겁니다. "그래. 돌연변이란 말은 그렇다고 해도 지옥의 화가, 악마의 화가라는 말은 좀…." 씁쓸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네요.

보스는 억울하다…단서① 시대상

당시 남유럽은 이탈리아발(發) 르네상스의 열기로 새 시대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과학과 이성이 미신과 신화를 몰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실험과 도전이 관습과 규범을 코너로 내몰았습니다.

하지만 그 시기 북유럽은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랐습니다. 새바람은 분명 알프스를 넘어 이들 지역에도 불었습니다. 그러나 북유럽은 종교적 교리를 중시하는 중세적 색채가 남유럽보다는 훨씬 강했습니다. 르네상스의 바람은 맞고 있지만 몸은 아직 경직된 채 중세의 집에 머문 상태. (미술사에서는)북유럽으로 분류되는 네덜란드 역시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보스 또한 딱 그런 화가였을 공산이 큽니다. 기법은 중세의 틀을 수 십 번도 뛰어넘었지만, 주제 의식은 여전히 중세와 '터치'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입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

그렇다면 중세 예술의 주제 의식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리스도교에 대한 가르침이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속죄하라. 사악한 것에 투쟁하고 저항하라. 그러지 않으면 너희가 갈 곳은 지옥밖에 없는데, 그 지옥은 바로 이런 곳이야." 보스는 이렇게 알려주고, 가르치고 싶었을 것으로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특히나 유럽인들이 전쟁과 전염병, 천재지변 등으로 매일 한 무더기씩 죽어가던 때입니다. 1000년에 오지 않은 세상 종말이 1500년쯤에는 올 것으로 믿는 사람들도 그때는 많았습니다. 보스는 빨리, 효과적으로 이들에게 지옥의 참혹상을 알려줘야 했습니다. 충격 요법을 쓸 수밖에 없었지요. 원죄로 가득한 인간에게 큰 울림을 줘 교화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을 겁니다.

보스가 그린 충격적 장면 중 상당수가 당시 속담과 설교의 삽화와 비슷하다는 점도 그가 품은 설교의 열정을 뒷받침합니다. 실제로 보스의 그림에 등장하는 괴물들의 원형은 네덜란드에서 당시 출판되던 설교서에서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단서② 알레고리

쾌락의 정원 곳곳에선 보스가 그려 넣은 알레고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림 곳곳에 경고성 메시지를 심어놓은 겁니다. 알레고리는 다른(allos)과 말하기(agoreuo)가 더해진 말입니다. 하고 싶은 말을 다른 사물 등에 비유해 암시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알레고리는 중세 예술 작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기법이기도 합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일부 확대), 1504년경, 384 x 205 cm
히에로니무스 보스,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일부 확대), 1504년경, 384 x 205 cm

다시 중앙 패널을 봅니다. 곳곳 숨어있는 딸기를 찾았나요. 누군가는 딸기를 끌어안고, 어떤 이는 딸기를 등에 이고 있습니다. 저 멀리 한 무리의 인간들은 딸기를 숭배하듯 떠받들고 있습니다. 당시 딸기는 한순간 성적인 유혹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일단 씨앗이 많지요. 향기는 스쳐 지나가면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옅어지지요. 이 때문에 딸기야말로 현세의 쾌락이 찰나라는 점을 말해준다고 여겼던 겁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일부 확대), 1504년경, 384 x 205 cm
히에로니무스 보스,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일부 확대), 1504년경, 384 x 205 cm

오른쪽 패널에 있는 선술집도 한 번 더 봅니다. 자기 몸을 돌아보는 듯한 이 얼굴, 보스의 자화상으로 알려졌습니다. 실제로 보스의 초상화와 비교하면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어휴, 너희 내 말 안 듣더니 그럴 줄 알았다." 이런 말을 할 듯한 표정입니다. 바로 위 만신창이가 된 두 귀는 "내 말을 안 들은 너희들의 귀"라는 생각으로 그린 게 아닐까요.

히에로니무스 보스,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 패널을 모두 접었을 때.

그리고 마지막입니다. 패널을 모두 접었을 때입니다. 이 그림은 패널 안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 미완성의 지구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색의 농담과 명암으로 그려졌습니다.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ipse dixit, et facta sunt: ipse mandavit, et creata sunt, 시편 33편 9절)" 상단에서 볼 수 있는 구절입니다. 세계가 창조된 후 딱 사흘째 되는 날이라고 합니다. 왼쪽 위에서는 설교 책을 든 신의 형상이 자기가 창조한 세상을 보고 안타까워합니다. 고심 끝에 만든 피조물의 종착지가 결국 지옥이니까요.

보스는 다양한 알레고리와 메시지를 통해 쾌락만 좇는 삶을 경고하고 있는 겁니다.

‘외딴섬’의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초상화.

 

실제로는 독실하고 고지식했을 그리스도교인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큰 보스가 오랫동안 지옥의 화가로 불린 까닭, 그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기 때문입니다. 미술사를 장식하는 거장 중 보스만큼 미스터리에 갇힌 이는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이 때문에 그는 '외딴섬의 화가'로도 불립니다.

1450년께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보스는 네덜란드 남부 노르트브라반트주에 속하는 스헤르토헨보스를 삶의 주 무대로 삼았습니다. 본명은 예로니무스 판 아켄(Jheronimus van Aken)입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이 도시의 이름을 붙여 그냥 보스로 불렀습니다.

보스의 생애에 대해선 정확히 알려진 게 많이 없습니다. 그는 일기나 편지를 쓰지 않았습니다. 몇몇 그림 말고는 제목과 서명조차 남기지 않았습니다. '쾌락의 정원' 또한 후세의 사람들이 붙인 것입니다. 지금껏 그의 작품으로 판명된 원화는 24점, 드로잉은 20점 정도입니다. 보스의 이름은 1474년 스헤르토헨보스시(市) 문서에서 처음 볼 수 있습니다. 이렇다 할 정보는 없었습니다. 그가 1479~1481년 사이 연상인 알레이트 고이아르츠 반 덴 메르베네(Aleyt Goyaerts van den Meerveen)라는 여성과 결혼한 일 정도만 겨우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 보스가 신앙심 깊은 그리스도교인이었다는 점을 추측할 수 있는 건 당시 도시의 분위기가 그랬기 때문입니다.

브라만트 공국의 중심 도시였던 스헤르토헨보스는 종교 부흥이 크게 일던 곳이었습니다. 무수한 수도원이 도시 내외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보스는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그리스도교를 접할 수 있었을 겁니다. 또, 당시 스헤르토헨보스가 상업 도시로도 발전 궤도에 오르고 있었습니다. 보스가 볼 때 '불경'스러운 짓을 하는 이도 너무나 많았을 겁니다. 실제로 보스의 이름은 도시에서 복음 전파 일을 하던 '성모 마리아 형제회' 명단에서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림 실력이 남달랐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보스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삼촌에 형까지 모두 화가였습니다. 그가 누구에게 그림을 배웠는지, 누구와 얼마나 교류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예술가의 진한 피가 흘렀던 것만은 분명하지요.

지옥에서 왔나? 미래에서 왔나?
히에로니무스 보스,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일부 확대), 1504년경, 384 x 205 cm
히에로니무스 보스,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일부 확대), 1504년경, 384 x 205 cm

워낙 미스터리의 화가인 만큼 보스에 대해선 다소 음모론적인 논쟁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시간 여행자 설입니다. 미래인이라는 겁니다. "'쾌락의 정원' 오른쪽 패널에서 볼 수 있는 새 부리 괴물이 사실 수세식 변기를 쓰고 있어!" "그 아래 있는 초록색에 둥근 유리를 덮어쓴 무언가는 외계인 내지 미래인이 아니야?" 이런 식입니다.

환각제 설도 있습니다. 약의 힘 없이는 이렇게나 끔찍하고 괴상한 괴물들을 그릴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악마와 교신했다더라, 실제로 지옥을 다녀온 적이 있다더라는 식의 '카더라' 이야기도 많습니다. 물론 모두 사실무근입니다. 보스는 당시 설교서의 삽화류를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각색했을 뿐이었다는 게 중론입니다.

달리의 ‘아이돌’…레드벨벳도 춤추게 했다

1516년 보스가 죽고 난 후 400년 가량이 지난 후에야 태어난 초현실주의의 대가 살바도르 달리는 평생 보스를 존경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출생한 초현실주의의 또 다른 거장 이브 탕기도 보스의 열혈 팬이었습니다. 초현실주의의 개척자로 칭해지는 두 사람은 보스의 작품을 사랑했고, 질투했고, 공부했습니다. 보스가 4세기를 앞선 초현실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까닭입니다.

펠리페 2세 초상화.

그 시대에도 보스의 팬은 있었습니다. 1556년 스페인 왕국의 왕에 올라 '황금 스페인 시대'를 연 펠리페 2세가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였습니다. 드넓은 영토를 다스린 부왕 카를 5세의 업적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 그에게 '사필귀정'을 일깨우는 보스의 그림은 후련한 숨구멍이었습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함께 정신분석학의 큰 줄기를 만든 스위스의 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은 보스를 "기괴함의 거장, 무의식의 발견자"라고 칭했지요. 그런가 하면, 사이키델릭 록 그룹인 도어즈의 리드 싱어이자 원조 록 스타인 짐 모리슨은 보스의 작품 '바보들의 배'를 보고 같은 제목의 곡을 지어 불렀습니다.

공연 '보스 드림즈'의 한 장면. [엘지아트센터]

지난 2002년 창단한 서커스 그룹 '세븐 핑거스'는 덴마크 극단 '리퍼블리크', 프랑스의 비디오 아티스트 앙쥐 포티에와 함께 '보스 드림즈'라는 서커스·연극·애니메이션 결합 공연도 만들었습니다. 살바도르 달리와 짐 모리슨까지 모두 캐릭터로 등장하는, 보스에 대한 종합선물 세트 같은 작품입니다.

레드벨벳 'Feel My Rhythm' 뮤직비디오 캡처. [유튜브 채널 SMTOWN]
레드벨벳 'Feel My Rhythm' 뮤직비디오 캡처. [유튜브 채널 SMTOWN]
레드벨벳 'Feel My Rhythm' 뮤직비디오 캡처. [유튜브 채널 SMTOWN]

마지막으로 시간이 되면 먼저 국내 아이돌 그룹 레드벨벳의 노래 '필 마이 리듬(Feel My Rhythm)' 뮤직비디오부터 찾아봐도 좋습니다. 제작진이 보스 등 대가의 명화와 뮤직비디오의 조화를 위해 깊이 연구하고 고민한 흔적이 있습니다. 이 안에선 분수대, 새 부리 괴물, 딸기 등 보스의 그림 속 상징을 찾는 재미가 있습니다.

 

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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