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참석자들 박수를 받으며 악수하고 있다. [연합]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미국 50억달러 추가 투자 발표 후 정 회장 어깨에 손을 얹으며 나란히 걸어가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정태일 기자] 1992년 2월 미국 로스엔젤레스 센추리플라자 호텔. 당시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미국 서부 지역 선거운동을 위해 현지를 찾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40분간 단독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이 회장은 부시 대통령과 양국 민간기업 간의 경제협력과 첨단기술이전 등에 대해 논의했다.
1992년 2월 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오른쪽 첫번째)이 당시 부시 대통령(오른쪽 두번째)과 만나는 모습 [삼성 제공] |
2022년 5월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기지인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 첫 공식 일정으로 평택캠퍼스를 찾은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영접했다. 이 부회장은 “삼성은 25년 전 미국에서 반도체를 만든 최초의 글로벌 기업으로, 이런 우정을 계속 발전시키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30년이 지난 지금 국내 그룹 총수의 외교적 리더십이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윤 대통령 취임으로 ‘민관 합동’이 경제 최대 키워드로 부각된 가운데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 기업의 글로벌 위상이 한층 올라갔다. 특히 정상회담이라는 가장 규모가 큰 외교적 행사에서 이재용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등은 미국 대통령과 별도의 기념촬영을 하는 등 역사적 ‘투 샷’도 남겼다. 그간 한미 경제동맹 과정 중 경제사절단으로서 민간 세일즈 강화에 초점을 맞췄던 재계 총수들이 국가적 비즈니스의 주연으로 거듭나고 있다.
역대 양국 정상 회담 일정 동안 삼성전자와 현대차그룹의 총수가 미국 대통령과 1대 1 기념촬영을 한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전자의 ‘3나노 반도체 동맹’, 현대차그룹의 ‘100억 달러 이상 신규 투자’ 등 굵직한 발표는 해당 기업만의 주요 사안이 아닌 국가적 경제·산업 의제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를 두고 한 경제계 관계자는 “그간 기업인들은 대통령의 경제사절단으로 나서 정상회담 공식 일정 뒤에서 별도의 조찬·만찬이나 비즈니스라운드 테이블 등을 통한 스킨십 기반의 세일즈에 주력했다면 이번 회담에서는 주요 총수들이 완벽히 무대로 올라와 국가적 차원의 네이션 비즈니스를 펼치며 경제·산업의 동등한 파트너로 올라섰다”고 평가했다.
22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미국 대규모 투자에 대해 영어로 공식 브리핑 하는 가운데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를 경청하고 있다 [AP] |
실제 1년 전만 해도 미국에서 열린 양국 정상회담 후 가진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서야 한국 기업들의 44조원 규모의 미국 투자 등이 공개됐다.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에 기립을 부탁하고 기자회견장에서 감사 인사를 표한 정도였다.
반면 이번 회담에서는 삼성과 현대차가 경제 일정 시작과 마무리를 맡았다. 이 부회장은 양국 정상을 평택캠퍼스에서 그림자 수행하면서도 1분 37초간의 환영 인사를 통해서는 양국 반도체 동맹의 중요성을 전 세계에 알렸다. 정 회장도 바이든 대통령과 예정보다 훌쩍 넘긴 50분간 면담하고 100억 달러가 넘는 초대형 투자에 대해 직접 브리핑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이 모습을 지켜봤고 백악관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됐다.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도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을 통해 양국 간 태양광 사업 협력 강화를 강조했다. 김 사장은 “양질의 에너지를 공급하고, 탄소 발자국이 낮고 투명성이 보장된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 양국의 경제·기술 동맹을 태양광 분야까지 확대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지나 레이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은 “협력 강화 필요성에 공감하며,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이를 두고 재계 한 관계자는 “이번 정상회담은 윤석열 정부에서 한국 기업 총수들의 위상과 역할이 급변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이를 통해 글로벌 무대에서 기업인 리더십의 중요성이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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