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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러 강세 즐기는 미국 인플레 고통 떠넘기기? [증권 플러스]
치솟는 달러·환율…세계경제 영향은
증시 활황·소비회복 자신감 바탕
구매력 강화 인플레 완화 기대감
엔화·유로화 등 非달러권은 약세
외국인 자금 엑소더스 견제 한계
한국 등 신흥국 방어력 시험대에

1971년 미국의 리처드 닉슨 행정부는 달러 가치를 금에 고정시킨 ‘브레튼우즈 체제’를 일방적으로 포기한다. 베트남 전쟁을 치르면서 늘어난 재정부담을 달러를 찍어내 충당하면서 더 이상 금 가치에 연동시키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결과는 달러 가치 폭락이었다. 주요 무역 상대국 통화 가치가 평가절상 되면서 수출기업들이 경쟁력을 위협받게 되자 전세계가 미국을 강도 높게 몰아세웠다. 이 해 로마에서 열린 주요 재무장관 회의에서 미국 재무장관 존 코널리의 발언은 이른바 ‘달러의 무기화’ 선언에 가까웠다.

“달러는 미국의 통화죠. 하지만 여러분의 문제입니다(It‘s our currency, but it’s your problem).”

이후에도 미국은 여러차례 경제위기를 달러의 힘으로 이겨냈다. 1·2차 오일쇼크가 그랬고,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대유행도 달러를 찍어내서 극복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반대다. 미국은 달러 가치를 높여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극복하려 하고 있다. 미국의 고통을 전세계로 수출하는 방법이다.

▶달러냐 달러가 아니냐…전세계가 시름 =코로나19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원자재발(發) 인플레이션을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원자재는 대부분 달러로 거래된다. 미국 연준은 인플레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고 있다.

원자재 가격 인상와 달러 강세가 겹치면 미국 외 다른 주요국 입장에선 수입 물가 인플레이션 고통이 더 커진다는 의미다. 가뜩이나 경제전망이 어두워지는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이 덮치는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이 고조되는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 달러 강세는 수입 측면에서 기업과 가계의 구매력을 강화시켜 인플레이션 압력을 완화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물가보다 경기 다급한 일본·유럽…달러 독주 견제 어려워=연준의 긴축은 미국 경제에 대한 자신감이 바탕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미국 증시가 급팽창하면서 주가가 오르고 소비가 회복되면서 미국 경제는 상당한 수혜를 봤다. 물가지표가 급등하지만 경기지표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미국 외 다른 나라들의 사정은 다르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타격에서 여전히 신음하고 있다. 경기가 부진해 외부 자금 유입이 원활하지 못하다. 긴축을 하기엔 경제 펀더멘털이 너무 약하다. 금리를 높이지 못하면 달러화 대비 통화가치는 더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일본 엔화는 4월 일본은행(BOJ)이 통화 완화 정책을 유지하기로 하면서 반등을 노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과 일본의 10년물 국채 금리차는 지난해 8월말 1.28%포인트에서 지난달 말 2.58%포인트로 확대됐다. 엔화 약세 압력은 그만큼 커진 것이다.

유로화 역시 마찬가지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조정하면서 미국(-0.3%)보다 프랑스(-0.6%), 독일(-1.7%) 등 유로존 주요국의 기대치를 더 크게 내렸다. 유럽의 중앙은행은 긴축의 고삐를 바짝 쥘 수 없는 형편이다. 앞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유로존이 전쟁으로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ECB가 긴축 정책에서 미 연준에 계속 뒤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최근 HSBC는 올해 달러화 대비 유로 가치가 당초 추정치보다 9% 더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을 수정했다. HSBC는 “유로화는 우리 예상보다 더 큰 하락 압력에 직면해있다”면서 “하지만 현 상황에서 유로화는 희망을 찾기 어렵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가 통제하는 위안화도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코로나19 재확산과 사상 초유의 경제봉쇄로 글로벌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국제금융연구소(IIF)는 1분기 해외 투자자가 중국에서 거두어들인 자금은 384억위안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10년 간 가장 큰 규모다. 전쟁이 본격화한 2월부터 자금 유출이 두드러졌다는 점에서 정치적 요인도 ‘차이나 엑소더스’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IIF는 “중국으로부터의 자금 유출은 코로나19 봉쇄와 서방과의 마찰을 빚는 국가에 대한 투자 위험 인식 고조 때문으로 설명된다”며 “결과적으로 중국 위안화는 여전히 세계 최고의 준비자산(reserve asset·대외결제를 위해 보유하는 자산)이 되기 멀어보인다”고 지적했다.

네덜란드 라보은행의 제인 폴리 외환전략실장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유럽 경제는 잠재적 압력에 시달리고 있고 중국의 성장은 더디다”며 “올해 달러 강세는 장기화될 것으로 우려되고 이로 인해 세계 경제 상황은 좋지 않다”고 밝혔다.

▶달러 강세, 임계점은 어디= 미국이 자국 경제를 위한 달러강세 전략을 펼치고 있지만 임계치는 분명 존재한다. 공급발 인플레에 대응하기 위한 긴축이지만 수요까지 위축시켜 경기에 부담이 되는 상황은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요위축은 소비 중심의 미국 경제에 치명적이고, 증시 발목을 잡아 401K와 같은 미국 가정의 연금자산에도 큰 타격을 입히게 된다.

대외적으로도 달러 강세에 따른 다른 국가들의 어려움을 마냥 외면하기 어렵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달러 강세가 미국 기업의 해외수익 환산에 타격을 줘 성장에 역풍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올해 첫 분기 실적에서 달러 강세 때문에 매출에서 3억달러 가량이 감소했다고 밝혔다. 구글(알파벳) 역시 달러 강세에 따른 수익 하락을 우려했다. 팩트세트에 따르면 S&P500 기업들은 매출의 약 40%를 미국 밖에서 올리고 있다.

소시에테제네랄의 키트 주케스 통화전략가는 “산사태가 나면 눈과 바위, 나무 등 모든 것을 집어 삼키듯, 달러 랠리는 더 많은 다른 통화들을 연쇄적으로 약세로 이끌 것”이라며 “이러한 광범위한 움직임은 글로벌 통화 환경을 긴축시키고 결국 경제의 위험을 증대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영향은? “경제펀더멘털에 달렸다”=연준이 ‘달러 흡입기’를 작동하면서 우리나라와 같은 신흥국은 외국인 자금 이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달러화 대비 가치가 하락하면서 외국인으로서는 원화자산을 보유하면 할 수록 손해가 되기 때문이다. ‘달러 인출기’로 손꼽히는 우리나라에서도 달러 유출 조짐이 뚜렷하다. 한국은행의 지난달 말 현재 외환보유액은 4493억달러로 한 달 전보다 85억1000만달러 줄었다.

증시에선 외국인 투자금이 이탈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초 이후 외국인은 국내 증시에서 9조5000억원 가량을 순매도했다. 3월과 4월 각각 약 4조8000억원, 4조3000억원으로 달러 강세와 맞물려 순매도 규모가 커졌다. 국내 증시에서 30%가량을 차지하는 외국인 자금이 이탈하면 주가 하락을 피하기 어렵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전월대비 3% 이상 오를 경우 증시 상승/하락 비율은 같았지만 그 이상 오르면 절대적으로 지수가 하락했다.

달러 강세 폭풍을 견뎌내려면 경제 펀더멘털이 튼튼해야 한다. 달러 강세는 수출중심의 우리 경제 구조에서는 대외 가격경쟁력 상승 효과도 있다. 원화보다 엔화 약세가 더 심한 탓에 우리 기업이 국제무대에서 일본 업체에 밀릴 것이란 우려가 크지만 과거보다는 그 영향이 작아졌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일 수출경합도(두 국가 간 수출구조 유사 정도를 측정한 지표)는 2015년 0.487에서 2021년 0.458로 하락했다. 특히 가전(-0.068), 자동차·부품(-0.051), 전기·전자(-0.051) 등의 하락폭이 컸다. 또 지난달 우리나라의 수출은 576억달러(잠정치)로 전년 동기 대비 12.5% 증가하는 등 엔저로 인한 수출의 부정적 영향은 크지 않았다.

조의윤 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한국과 일본의 수출구조가 차별화되고 한국제품의 경쟁력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은행도 한미 금리역전을 막기 위해 과감한 기준금리 추가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기준금리 인상 여력은 경제 펀더멘털을 반영한다. 일본 유럽과 달리 한은은 선제적인 금리인상으로 일찌감치 연준의 긴축에 대비해왔다. 가계부채 부담의 안정적 관리가 중요하다. 수출을 바탕으로 외화 순유출을 최소화하고, 기준금리 인상으로 원화가치의 상대적 하락폭을 최소화한다면 대한민국호가 이번 ‘달러 태풍’을 뚫고 순항할 수도 있다.

김우영 기자

kw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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