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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큰일이네”…휠체어 장애인에게 서울행 저상버스는 없었다[새장에 갇힌 장애인 삶]
뇌병변장애인 이성우 씨와 파주·고양·서울 동행취재
장애인콜택시 예약부터 도착까지 한 시간 이상 걸려
서울로 이동하는 저상버스 없어 난감해하기도
“그저 다른 사람처럼 지하철·버스·택시 이용하고 싶어”
지난 14일 오전 10시30분께 뇌병변장애인 이성우(53) 씨가 경기 파주시 헤이리예술마을에 위치한 자택 앞에서 장애인 콜택시를 기다리는 모습. 김영철 기자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지난 14일 뇌병변 장애가 있는 이성우(53) 씨는 경기 파주시 자택에서 기자와 함께 장애인 콜택시를 타고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에 위치한 직장에 들린 뒤 버스를 타고 약속 장소인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으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뇌병변 장애 중증으로 손가락도 까딱하기 어려운 탓에 이씨는 전동 휠체어마저 사용할 수 없어 타인의 도움 없이는 이동할 수 없다.

하지만 시작부터 계획은 틀어졌다. 이씨가 사는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예술마을에서 직장까지 가는 저상버스는 한 대 남짓. 나아가 일산서구에 위치한 직장에서 약속 장소인 여의도동으로 가는 저상버스는 단 한 대도 없었다. 결국 이씨와 동행에서 그가 저상버스를 이용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이씨는 “파주시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콜택시의 차량이 적은 데다, 휠체어를 타지 않는 장애인들도 택시를 이용할 수 있어 이용에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이날 오전 10시30분께 이씨의 자택이 위치한 헤이리예술마을에 도착했을 당시 이씨는 이미 장애인콜택시를 예약한 상태였다. 그러나 택시가 30분이 넘도록 도착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그는 다시 자택에 들어가서 기다리기로 마음을 바꿨다.

이씨의 자택에서 그가 일하는 경기도 일산서구 햇빛촌장애인자립생활센터까지 걸리는 시간을 네이버지도로 검색했더니 소요 시간이 각각 버스 54분, 자동차 27분이었다. 이씨는 “저상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씩 오니까 애당초 버스 타고 출근하는 방법은 포기했다”며 “집이 외지이기도 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터진 뒤론 버스 운행도 줄어서 버스가 많지 않다”라 토로했다.

이씨가 예약한 장애인 콜택시가 도착했을 당시 시간은 오전 11시45분. 이씨는 이마저도 “빨리 온 편”이라고 안도했다. 그는 “출근시간과 점심시간 사이에 택시를 잡아 금방 온 것”이라며 “수요가 많은 시간대에 택시를 예약하면 집까지 오는 데만 족히 한 시간 이상은 잡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14일 이성우 씨의 자택 앞에 장애인 콜택시가 도착한 모습. 택시 예약부터 자택까지 도착하는 데 1시간 이상 소요됐다. 김영철 기자
지난 14일 오전 이성우 씨가 장애인 콜택시에 탑승하는 모습. 김영철 기자

이씨를 태운 택시기사 임모(37) 씨는 “하루 10개 정도 예약이 들어온다”며 “도심 속 가까운 거리는 10분 내로 태울 수 있지만, 일산처럼 옆 도시를 갈 때는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파주를 벗어나게 되면 예약이 아예 잡히지 않는다. (때문에)파주에서 택시를 잡으려는 이들에겐 더 불편하게 다가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거 큰일이네. 미안하지만 오늘은 지하철을 타야 할 것 같아요.” 낮 12시께 일산에서 서울 여의도동으로 가는 저상버스를 알아보던 이씨는 이같이 말했다. 막상 저상버스를 검색해보니 서울행 버스가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며 이씨와 활동지원사는 난처한 기색을 감추기 어려워했다. 결국 저상버스를 타고 약속 장소로 가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돼버렸다.

실제 경기도에서 운영하는 저상버스는 서울에 비해 적은 편이다. 경기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경기도 시내버스 중 저상버스는 1909대로, 전체 시내버스 7300여 대 중 26%에 불과했다. 고양시의 경우, 서울시로 이동하는 광역버스 중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저상버스를 운행하지 않았다. 고양시 관계자는 20일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현재 기준 저상버스로 운행되는 마을버스와 시내버스는 총 209대”라고 말했다.

지난 14일 오후 이성우 씨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도착한 모습.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에 위치한 이씨의 직장에서 서울까지 가는 저상버스가 없어 부득이하게 지하철을 타야 했다. 이날 이씨는 “그저 남들처럼 편의에 따라 버스, 지하철을 골라가며 타고 싶다”고 씁쓸해했다. 김영철 기자

이씨는 “어디를 가느냐에 따라 지하철이 편할 수도, 버스가 편할 수도 있다”면서도 “우리는 무엇을 타고 갈 지 선택할 권리조차 없다. 그저 남들처럼 편의에 따라 버스, 지하철을 골라가며 타고 싶은 것뿐”이라고 씁쓸해했다.

이씨의 사례처럼 서울 밖에서 장애인들의 이동권 실태가 더욱 심각한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저상버스를 확보하기 위한 차등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봤다. 지방의 버스 이용객 수요가 서울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점에서 버스 회사들의 이윤이 적어 저상버스를 확충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는 이유에서다.

이동석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경기의 인구는 서울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인구 밀접도에 있어선 확연히 다르다. 특히 경기 내 군(郡) 단위 지역으로 갔을 땐 저상버스 보급률이 현저히 떨어지는 현실”이라며 “지방 버스회사에서 저상버스를 확보할 수 있도록 서울보다 더 많은 지원금이 차등적으로 지급돼야 척박한 환경에서 거주하는 장애인들의 버스 이동권도 증진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yckim645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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