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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 공정거래사건 첫단추 ‘시장획정’…플랫폼 사회에선 진화해야

‘공정거래 사건의 첫 단계는 시장획정’이라는 말이 있다. 공정거래 사건은 특정 사업자가, 혹은 사업자들이 시장의 건전한 경쟁질서를 해치고, 거래 상대방이나 소비자의 이익을 훼손하는 사건이다. 따라서 건전한 경쟁이 훼손된 시장이 어디인지 확인하는 작업이 조사의 시작이 된다. 그런데 디지털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시장획정의 난이도가 급상승하였다. 미국이나 유럽연합(EU)에서는 효과적인 경쟁법 집행을 위해 더는 엄밀한 시장획정을 요구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사실 디지털 플랫폼이 등장하기 전에도 시장획정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유료 방송사업자 간 기업 결합에서 유선방송, 위성방송, IPTV와 OTT 서비스가 시청자 확보를 놓고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관계인지, 간접적 경쟁관계인지 따져본 적도 있다. 이러한 시장획정 과정에서 경제 분석이 중요하게 활용되는데 가상의 독점 사업자가 가격을 올릴 수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가격을 올리면 더 큰 이윤을 누릴 수 있지만 크든 작든 얼마의 고객은 떠날 것이다. 남아 있는 고객으로부터 벌어들이는 더 큰 이윤과 떠난 고객으로 인하여 상실한 이윤을 비교하면 가격 인상 가능성을 가늠해볼 수 있다. 가격을 올릴 수 없다면 이는 고객이 비교적 많이 떠났다는 것으로, 해당 사업자에게 만만치 않은 경쟁자가 있다는 뜻이다. 이때는 고객들이 옮겨간 상품을 포함해서 시장을 넓히게 된다.

플랫폼은 두 개 이상의 이용자집단을 중개한다. 그러다 보니 여러 이용자그룹을 함께 묶어서 하나의 시장으로 보아야 하는지, 각각의 이용자그룹별로 시장을 나누어 보아야 하는지부터 판단에 어려움이 있다.

아멕스(Amex) 사건에서 미국 법무부는 가맹점 측면의 반경쟁행위에 주목한 반면 대법원은 카드 가맹점과 카드 이용자, 두 그룹을 함께 묶어서 시장을 획정하여야 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그런데 이 첫 단계를 건너뛰고 각 이용자그룹을 따로 나누어 본다고 해도 플랫폼 시장획정은 전통적인 시장보다 훨씬 어렵다.

플랫폼과 양면 시장의 가장 큰 특성은 특정 면 이용자의 플랫폼 매력도가 다른 면 이용자의 규모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다. 음식점이 많은 배달앱에 소비자들이 몰리고, 음식점들은 이용 소비자가 많은 배달앱을 더 매력적으로 느끼게 된다.

그런데 가상의 독점 배달앱(요기배민통이라고 하자)이 음식점 수수료를 인상하면 어떻게 될까? 음식점 일부가 요기배민통에서 떠나게 될 것이다. 음식점이 줄어든 상황에서는 소비자들도 요기배민통을 떠나게 된다. 예전만큼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또 요기배민통을 떠나는 음식점이 생긴다. 다시 소비자들도 따라 나가고, 음식점이 더 줄고 하는 일이 반복된다. 이래서야 가상의 독점 배달앱이 가격을 인상했을 때 얼마나 많은 음식점이 (또는 소비자가) 그 배달앱을 떠나게 되는지 알 수가 없다(또는 계산하기가 너무 어렵게 되었다).

디지털 플랫폼 시대에는 이러한 피드백 효과의 크기를 고려해서 시장을 획정할 필요가 있고, 경제 분석도 그에 맞춰 수행되어야 한다. 기존 경제 분석 방법론에 대한 수정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새로운 모형들이 개발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이러한 상황 변화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경제 분석 역량 강화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공정위는 지난해 11월 5일 한국경제학회, 한국산업조직학회와 공동으로 ‘플랫폼 분야 경제 분석의 역할과 방향’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플랫폼 생태계 특유의 경쟁 환경으로 기존에는 없던 데이터 독점 등의 문제가 발생하여 이에 대응할 정밀한 경제 분석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플랫폼 사회에선 공정거래 사건의 첫 단추인 시장획정도 진화하여야 한다.

조성익 공정거래위원회 경제분석과장

th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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