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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악은 정치보다 높은 차원…전쟁과 무관하게 우리는 친구”
오늘 세계평화 기원 특별콘서트
헤경·KH·예술의전당 주최
서울팝스오케스트라 협연
러시아·우크라 단원들 화합무대
바리톤 고성현과 서울팝스오케스트라가 ‘세계 평화 염원 특별 콘서트’ 준비를 위해 한 자리에 모여 연습을 진행하고 있다. 박현구 기자

“마음을 열고 귀 기울여요, 온 세상 형제들의 고통. 나는 믿어요. 사랑, 평화 넘쳐나는 날, 그날. 빛과 사랑이 부디 함께 있어 이곳에 우리 가슴에…”(‘나는 믿어요’ 중)

바리톤 고성현과 소프라노 진윤희의 아름다운 목소리와 서울팝스오케스트라 단원이 만들어낸 선율이 ‘평화’를 노래했다. 1997년 8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 주제곡인 ‘나는 믿어요(I Believe)’는 평화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다. 성악가들의 입은 마스크로 가려졌지만, 장막을 걷어내듯 퍼져나온 단단한 소리가 주는 의미는 그 어느 때보다 묵직하다. 세계평화와 인류의 형제애를 그린 음악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메시지이자 위로이기 때문이다.

지난 22일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안에 위치한 서울팝스오케스트라 연습실은 모처럼 활기가 넘쳤다. 70명의 서울팝스오케스트라 단원들은 3개월 만에 다시 만났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한달이 되는 시점에 열리는 ‘세계 평화 염원 특별 콘서트’(23일 오후 7시 30분·서울 예술의전당)를 위한 막바지 준비를 위해서다. 이날 만난 우크라이나 출신 세르게이 살로(Salo Sergiy·48) 제1바이올린 악장은 “오랜만에 동료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내내 설레기도 하고, 떨리기도 했다”며 “평화콘서트를 준비하기 위해 오전 10시부터 모여 연습을 하고 있는데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1988년 창단한 서울팝스오케스트라는 70명의 단원 중 20여명은 외국인으로 구성된 다국적 악단이다. 한국은 물론 러시아, 우크라이나 단원들이 음악으로 하나 되며 오랜 시간을 교감했다. 러시아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크냐제바 올가(Knyzeva Olga·53)는 만감이 교차한 듯했다. 그는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전쟁이라는 뉴스를 들어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전 세계 음악계에서 러시아 출신들이 퇴출되고 있는 가운데 ‘세계 평화 염원 특별 콘서트’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바이올린 연주자가 한 무대를 꾸민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크냐제바 올가(왼쪽)와 세르게이 살로는 “음악은 전쟁, 정치보다 높은 차원의 것”이라며 “전쟁으로 음악가가 배척돼선 안 된다”고 힘줘 말했다. 박현구 기자

“전쟁의 참상·희망과 평화 연주”

“지금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지만, 서울팝스오케스트라 단원들의 관계와 우정은 견고하고 변화가 없어요. 어서 빨리 평화가 왔으면 좋겠어요.”(크냐제바 올가)

모든 단원이 같은 마음이었다. 특히나 러시아의 침공 이후 음악계와 서울팝스오케스트라를 놀라게 한 소식도 날아 들었다. 우크라이나 출신 단원인 콘트라베이스트 지우즈킨 드미트로가 모국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40대의 막바지에 고국을 지키기 위해 떠난 그는 악기를 내려놓고 군복에 총을 들었다.

세르게이는 “전 세계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공유되는 모든 뉴스를 믿을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 전쟁은 중단돼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이번 공연은 국적과 세대를 초월해 한 무대를 꾸민 서울팝스오케스트라가 다시 한 번 음악으로 ‘진정한 평화’와 ‘화합’을 보여주는 자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지금 전 세계는 ‘루소포비아(러시아 혐오)’에 휩싸이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달 24일 이후, 전 세계는 ‘지구인으로의 행동’을 요구받았다. 음악계는 더 강경했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쌓은 친(親) 푸틴 음악가들이 줄줄이 퇴출됐다. 푸틴으로부터 큰 혜택을 받은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의 공연은 유럽과 북미 지역에서 볼 수 없게 됐다. 비단 ‘친 푸틴’ 음악가에게만 국한하지 않는다. 이젠 러시아 출신의 예술가는 물론 차이콥스키와 같은 클래식 음악사의 주요 작곡가들이 레퍼토리에서 검열되고 있다. “러시아 출신이라고 무조건 배척하고 퇴출하는 것은 또다른 차별과 혐오를 낳는 것”(장일범 음악평론가)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세르게이도 “발레리 게르기예프, 안나 네트렙코는 물론 피아니스트 데니스 마추예프(Denis Matsuev)의 콘서트가 취소되고, 연주 계약이 불발되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친푸틴 음악가라고 해서 그들이 지금껏 쌓아온 음악적 업적이 폄하되거나 음악가로의 활동이 배척돼선 안돼요. 문화, 특히 음악과 정치(전쟁)는 별개의 것이에요. 어떤 상황이든 그들은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며, 문화는 현재의 상황과 분류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올가 역시 “나로서도 이해하기 힘들고 마음이 아프다”며 “전쟁은 군인들이 하는 것이지 음악인들이 한 것이 아니다. 음악가들은 전쟁을 시작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관객에게 행복을 선사하기 위해 연주를 하는 사람들이지 군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쟁이나 정치, 그 모든 것보다 음악이 제일 위에 있다고 생각해요. 음악은 전쟁, 정치보다 높은 차원의 것이에요.”(세르게이·올가)

우크라 침공 한 달 ‘평화의 선율’

연주회에서 두 사람은 세르게이 트로파노프(Sergei Trofanov)의 앨범 ‘집시 열정(Gipsy Passion)’에 수록된 ‘몰도바(Moldova)’와 ‘종달새(Skylark, 스카이라크)’를 각각 연주하며 ‘우정의 무대’를 보여준다. 전쟁 이후 전 세계 어디에서도 열리지 않았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연주자의 한 무대가 이날 공연에서 성사된다. 세르게이는 “몰도바는 상당히 슬프고 가슴 아픈 곡”이라며 “이 곡을 통해서 전쟁에 놓인 아이들의 고통과 슬픔을 노래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군인들은 명령과 지시를 기다리고 있지만, 시민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어요. 지금 우크라이나는 상황이 좋지 않아요. 물이나 가스, 먹거리 등의 지원도 줄고 있는 힘겨운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버티는 사람들의 마음을 전달하려고 해요.”

올가의 솔로가 돋보일 ‘종달새’는 세르게이의 ‘몰도바’와 달리 밝고 활기찬 곡이다. 전쟁의 참상이 세르게이의 선율을 통해 이어졌다면, 올가는 다가올 희망을 연주한다. 그는 “종달새는 사람의 눈으로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하늘 높이 날지만, 지저귀는 소리만큼은 우리의 귀에도 들린다”며 “굉장히 밝고 활기찬 이 곡을 통해 평화와 화합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가 한 무대를 꾸미는 것이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전쟁과 무관하게 우리는 아주 친한 친구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고, 우리의 우정과 감정들을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하고 싶어요. 솔로몬의 반지에 적힌 글귀 중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는 말이 있어요. 그 말처럼 전쟁도 끝을 향해 달려갈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루 빨리 이 시간이 지나고, 전쟁이 끝이 나길 바랍니다.”(세르게이·올가)

우크라이나 국민을 위로하고 세계 평화 메시지를 전하는 ‘세계 평화 염원 특별 콘서트’는 서울팝스오케스트라의 하성호 단장이 지휘, 소리꾼 장사익, ‘미스트롯2’에 출연한 국악 소리가 김태연, 바리톤 고성현, 소프라노 진윤희 등이 재능기부로 공연을 준비했다. 헤럴드경제와 코리아헤럴드, 예술의전당이 공동 주최하며, 수익금 일부는 우크라이나의 국민들을 위해 기부할 예정이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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