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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산四色] 체육계도 바란다

올해 고3이 된 딸아이가 새 학기 첫날 학교에 다녀오더니 얼굴이 허예졌다. 자고로 ‘K-고3’의 심기는 건드리면 안 된다고 배웠기에 눈치만 살피고 있었는데 딸은 생각지도 못한 이유를 말한다. “교실이 5층이라 너무 힘들어!” 딸아이도, 딸 친구들도 한 층 오르고 쉬고, 한 층 오르고 쉬고 하며 간신히 교실에 도착했다고 한다. ‘네 나이면 5층 정도는 한걸음에 뛰어올라 가야지’라고 해주고 싶었지만 역시 K-고3 앞이라 입은 열지 않았다.

청소년들의 체력 저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2022년 학교체육 활성화 추진 기본계획’을 보면 더욱 심각해진 현실이 드러난다. 해마다 실시하는 학생건강체력평가(PAPS)에서 저체력으로 평가되는 4·5등급 비율이 2019년 12.2%에서 2020년 17.6%, 지난해 17.7%로 치솟았다. 학생들의 비만과 체력 저하를 방지하기 위해 개발한 PAPS는 심폐지구력과 유연성, 근력·근지구력, 순발력, 비만 등 5개 체력 요소를 측정해 최상위 1등급부터 최하위 5등급까지 신체 능력 등급을 판정하는 시스템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실외활동 부족이 원인으로 꼽히지만 비단 코로나19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과열 입시경쟁 속에서 학교 체육 수업이 양적·질적으로 크게 위축된 것이 주된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현재 시행 중인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체육 교과 필수 이수 단위는 10단위다. 하지만 이마저도 자율학습 시간으로 대체되거나 다른 수업활동에 밀려나기 일쑤다. 지난 2018년 서울대 의과대학 건강사회정책연구실의 발표에 따르면 체육 수업 권장시간을 채우는 고등학교는 전체의 25.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체육활동 시간의 절대 부족은 저체력으로 직결되고, 청소년기의 무너진 체력은 가늠할 수 없는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 오는 2025년부터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학교 체육 수업은 또 어떤 운명을 맞을지 모를 일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체육계도 학교체육 활성화를 비롯한 다양한 의견과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윤 당선인도 지난 1월 ‘6대 체육 공약’을 발표하긴 했지만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구성 후 체육 현장의 의견을 수렴해 보다 세밀한 정책을 설계하여야 할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많은 체육인은 정부의 일방통행식 행정으로 비롯된 엘리트 체육과 비엘리트 체육의 대립을 윤 당선인이 풀어야 할 첫 번째 숙제로 꼽고 있다. 엘리트 체육과 생활체육은 겉으론 통합된 한몸이지만 그 안에선 반목과 갈등으로 곪아가고 있다. 서로 어울리지도 않고 맞지도 않는 옷을 억지로 한데 꿰어입은 꼴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한 스포츠혁신위원회 권고안 역시 엘리트 체육계의 거센 반발을 샀다. 기계적인 통합이나 대립이 아니라 상호보완적 관계로 시너지 효과를 낸다면 엘리트 체육과 생활체육의 상생과 발전이 가능하다. 그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이고, 정치가 해야 할 몫이다.

윤 당선인은 당선 첫 일정으로 국립 서울현충원을 방문, 참배해 ‘위대한 국민과 함께 통합과 번영의 나라 만들겠다’고 방명록에 적었다. 수년간 편을 갈라 대립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대한민국 체육의 통합과 번영에도 당선인의 약속이 지켜지기를 기대해 본다.

anju101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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