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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칼럼]표현의 미덕

새해의 첫 시작이 주는 설렘과 기대가 필자에게는 새 학기와 함께 학생들이 가득한 3월부터 시작된다. 그러다 보니 필자의 새해 다짐이라든지, 거창한 목표들은 거의 3월이 되어서야 완성되고 동시에 시작된다. 자신을 위한 운동부터 주변사람들을 위한 봉사까지 올해도 어김없이 다이어리 ‘해야 할 일’ 리스트를 꽉 채웠다. 그중에서도 오랫동안 고민해왔던 한 가지를 목록에 추가했다. 사실 머릿속에 맴돌고 입안에서 겉돌았던 이것은 늘 생각해왔던 일임과 동시에 늘 ‘잘’ 실천해보려고 노력했던 것이기에 큰맘 먹고 세운 결심이라기보다 어떻게 하면 ‘잘’하고 또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영향을 받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것 같다.

바로 “‘ 미안합니다’ ‘잘’하기”이다. 굳이 ‘잘’이라는 부사를 강조해서 붙인 이유는 사전적 의미대로 ‘옳고 바르게’ ‘좋고 훌륭하게’ 그리고 ‘익숙하고 능란하게’ 미안함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우연히 본 드라마에서 한 아이가 평소 눈엣가시였던 같은 반 친구의 신발을 몰래 숨겼다. 아이 사이의 문제가 결국 양쪽 학부모를 학교에 모이게 했고 대수롭지도 않은 일로 귀찮게 한다며 잔뜩 찌푸린 얼굴로 돈봉투를 건네는 가해 학생의 어머니에게 피해 학생 부모가 돈봉투를 사양하며 동시에 주먹을 들어보였다. “어라, 이거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되는 건가?” 했더니 다섯 손가락을 차례로 펴 보이며 “미.안.합.니.다”면 된다고 했다. 그래, 두툼한 돈봉투보다 ‘미안’하다는 말이 먼저였고 그거면 되었겠구나.

우리는 종종 ‘미안’이라는 말을 ‘내가 졌어’와 같은 패배감과 자존심 하락 그 언저리 즈음의 의미로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니 그 말 한 마디를 하지 않고 쭈뼛쭈뼛 버티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자존심이 아니다. 흔히 드러내기 창피한 ‘아둔한 자만심’이다. 단 다섯 글자. 말하는 데에 1초 남짓 걸리는 그 한 마디를 듣기 위해 몇십 년을 기다린 사람도 있고, 미처 듣지 못하고 세상을 등진 사람도 있다. 곤경에 처해 있는 위기의 순간에 나를 돕다가 다친 사람에게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물론 나를 도와준 그 상황이 고마운 것이니 당연하다. 그런데 나 때문에 다치게 되어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는지 생각해보라. 감사한 마음만큼 미안한 마음도 가슴 한쪽에 오랫동안 묵직하게 자리 잡는다. 때를 놓쳐버린 인사로 서먹해진 관계를 들여다보면 미안한 사람이 차마 그 말을 하지 못했다고들 한다.

1980~90년대 TV 광고에서처럼 ‘말하지 않아도 아는’ 감정은 없다. 말하지 않고 표현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었던 우리 네 방식이 ‘미안함’까지 포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히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에게 하는 사과, 직급이 낮은 사람에게 하는 사과, 나보다 약하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하는 사과를 부끄러워하지 말자. 외국에서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좀 피곤하다는 말에도 “미안해(Im sorry)”라고 한다. ‘유감’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그만큼 미안하다는 말에 인색하지도, 패배감을 느끼지도 않기에 가능하다.

필자의 목표라고는 했지만 미안함을 잘 표현하는 것은 우리 모두 함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감사함의 표현도 마찬가지이다. 단지 감사함보다 미안함의 무게감이 더 크기에 아직은 서툰 우리의 표현을 부추기는 것이다.

김은성 호남대 작업치료학과 교수

kwat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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