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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포] 21일간 ‘장애인 지하철 시위’ 왜?…“교통 인프라 구축돼도 무관심 여전”
척수장애인 동행 취재…혜화→길음역, 40여분 소요
승강장 사이 넓은 틈으로 휠체어 바퀴 빠져
열차-승강장 턱 높이 달라 진입에 어려움도
일반버스 2대 지나가야 저상버스 1대 통과
장애인 이용석에 접이식 버스 설치돼 불편
지난 23일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길음역 방면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 척수장애인 추경진 씨. 김영철 기자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지하철을 탈 때마다 늘 싸늘하죠. 엘리베이터 앞에 줄을 서도 ‘당신 때문에 못 탄다’는 볼멘소리가 가득해요.” 오토바이 사고로 척수장애인이 된 추경진(54) 씨는 저상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는 데 비장애인들보다 40분 정도 더 오래 걸린다고 했다. 추씨는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때마다 늘 주변 시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왔다”고 토로했다.

장애인단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진행한 지하철 시위가 21일(주최 측 추산) 만에 종료된 가운데, 이들이 시민 불편을 초래하는 방식의 시위를 고수하게 된 배경에 대해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23일 헤럴드경제는 추씨와 그의 활동지원사인 김향길(66) 씨와 함께 지하철과 지상버스를 타면서 장애인들이 겪는 불편을 살펴봤다.

추씨가 지하철 4호선 혜화역 2번 출구 엘리베이터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께였다. 추씨는 “혜화역에서 열차까지 승강기를 두 차례 이용해 내려가면 10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된다”며 “장애인 일행이 있으면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추씨에 따르면 혜화역은 그나마 장애인 편의 시설이 잘 갖춰진 편이다. 혜화역 승강장에는 열차문과 안전문 사이에 고무판이 설치돼 휠체어가 바퀴에 빠질 위험이 없었다. 반면 추씨의 안내로 하차한 4호선 성신여대역에는 고무판이 없어 열차와 안전문 사이에 15㎝ 정도의 넓은 틈이 있었다. 이 때문에 김씨, 기자, 지나가던 시민, 세 명이 추씨를 옮겨야 했다. 추씨는 “4호선이 다른 노선에 비해 오래된 편이어서 아직 이런 편의가 제공되지 않는 역들도 더러 있다”고 털어놨다.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열차 승차장(왼쪽)과 4호선 성신여대역 열차 승차장 모습. 혜화역 승차장은 고무판을 설치해 열차와 안전문 사이 틈을 줄였으나, 성신여대역의 경우 간극이 넓어 휠체어 바퀴가 빠질 위험이 충분했다. 김영철 기자

열차와 안전문 사이 높낮이가 다른 것도 문제였다. 열차의 턱이 안전문보다 5㎝ 정도 높은 탓에 휠체어가 부딪쳐 열차 내부로 들어가기 어려웠다. 때문에 김씨는 휠체어 뒤편을 당겨 앞바퀴를 살짝 띄우는 식으로 추씨를 열차에 태워야 했다.

이런 과정이 지나고 추씨가 4호선 길음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40분께였다. 지하철 애플리케이션에서 이동시간이 7분으로 나온 점과 비교해 5배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성신여대역에서 잠시 하차한 점을 감안해도 비장애인보다 턱없이 많은 시간을 소요한 셈이다.

길음역에서 미아사거리역 방면 버스 정류장에 이동해 저상버스에 탑승한 시간은 오후 4시55분께였다. 추씨는 버스를 타면 시간이 오래 걸려 약속이 있을 때에는 꼭 지하철은 탄다고 했다. 그는 “지금은 무작위로 저상버스를 타서 (시간이)얼마 걸리지 않았지만, 특정 버스를 기다리게 되면 일반버스 2대가 지나야 저상버스 한 대가 온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러나)출·퇴근길엔 승객들이 많아 저상버스를 두세 대 보낸 뒤에 탄다”며 “(이런 경우)버스기사들이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공간을 마련해줘야 하지만, 이를 외면한 채 떠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토로했다.

지난 23일 오후 척수장애인 추경진 씨가 저상버스 내 장애인 지정석에 탑승한 모습. 김영철 기자
지난 23일 오후 척수장애인 추경진 씨가 탑승한 두 대의 저상버스 내부 모습. 장애인 이용석에 접이식 의자가 있는 저상버스도 있어 탑승 시 의자를 일일이 접어서 휠체어를 댈 공간을 만들어야 했다. 버스기사가 직접 장애인 이용석에 부착된 안전고리를 휠체어에 연결하는 경우도 있었던 반면 버스기사의 도움 없이 활동지원사가 스스로 접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김영철 기자

미아사거리역으로 돌아가기 위해 탑승한 또 다른 저상버스의 장애인 이용석에 접이식 의자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버스기사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조작법이 미숙한 것을 이유로 거절했다. 결국 활동지원사인 김씨 혼자서 접이식 의자를 일일이 접어가며 공간을 만들고 나서야 추씨를 태울 수 있었다.

추씨는 장애인 이동권을 증진하려는 뜻에는 동의하면서도 지하철 시위로 불편을 겪은 시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고 했다. 그는 “시위로 인해 시민들이 불편을 겪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기에 미안하다”며 “‘왜 우리를 볼모로 잡느냐’는 말도 하는데, 다른 날보다 출근길이 10~20분 소요되다 보니 시민들의 마음도 이해한다”고 고백했다.

전문가들은 저상버스와 지하철 승강기가 있음에도 장애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보다는 여전히 ‘보여주기 식’에 그친다고 지적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독일에선 승객들이 버스 안 장애인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 것에 반해 한국에선 (이 공간마저)늘 붐빈다”며 “저상버스조차 장애인이 이용할 공간에 접이식 의자가 있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현상”이라고 꼬집었다. 이동석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역시 “저상버스가 도입돼도 조작법에 익숙하지 않은 버스기사들이 많아 장애인들이 아직도 이용에 불편함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yckim645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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