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최정호의 현장에서] “늘려라” vs “직접 해라”…하도급의 모순

“경찰은 건설 현장에 만연한 불법 재하도급 대리 시공 의혹에 대한 수사도 진행 중이다.” 광주에서 발생한 공사 중 아파트의 붕괴 사고와 관련한 뉴스의 한 부분이다. 건설 사고가 날 때마다 원인 중 하나로 나오는 ‘하도급’ 문제가 또다시 언급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하도급’은 건설 현장에서 사라져야 할 악습 같은 단어가 되고 말았다. 3자에게 맡겨 일을 한다는 국어사전의 정의가 아닌, 대기업의 중소기업 착취와 이를 벌충하기 위한 중소기업의 부실 공사라는 사회적 정의가 사람들의 뇌리에 선명하게 남은 것이다.

실제 공사 현장에서 하도급은 만연하다. 아파트 한 동을 만들기 위해 터파기부터 기초 공사, 골조, 타설, 전기, 마감까지 10여가지 공종이 들어간다면 이 중 절반이 넘는 공사는 하도급을 통해 이뤄진다. 현장 인력, 자재 조달과 전문성 등에서 강점이 있는 특정 분야 전문업체들의 장점을 살리는 것이다.

심지어 법에서도 한때 건설업체들을 종합건설사와 전문건설사로 구분해 업무를 수행하도록 의무화하기도 했다. 종합건설사로 구분된 대형 건설사들이 시공하는 공사에서 일정 부분 작업을 하도급하게 강제했었다. 이 법은 2018년 개정됐다. 건설사들의 재하도급 등 관행을 개선하겠다며 종합건설사와 전문건설사 간 업무 경계를 없애고 자유로운 수주경쟁을 하도록 한 정부의 조치다.

이러자 전문건설사들이 들고 일어났다. 종합건설사가 전문건설사들의 일감을 빼앗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대한전문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만 9700억원가량의 전문건설사 일감이 종합건설사에 돌아갔다. 같은 기간 종합건설사 영역의 일감을 확보한 전문건설사의 신규 수주가 2800억원에 머무른 것과 대조된다.

실제 지방 공사 현장의 모습도 원청, 즉 대형 건설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과는 반대로 흐르고 있다. 지방자치제도가 자리 잡으면서 지역 중소 건설사들의 생존을 위해 의무적으로 지방 업체에 하도급을 주도록 하는 곳도 늘고 있다. 심지어 전체 공사 중 절반이 넘는 금액을 의무적으로 하도급하도록 명문화한 지자체도 다수다. 그러다 보니 “간판만 래미안, 자이지 실제로는 지방 건설사 작품에 산다”는 입주자들의 하소연까지 나올 정도다.

업계 한 관계자는 “종합건설사, 즉 대형 건설사는 하도급을 쓸 수밖에 없고, 또 해당 지역 업체를 무조건 쓰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하도급을 줄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며 “문제는 그 업체들이 또 재하도급을 하고, 그러다 보니 현장 컨트롤에 한계가 오는 게 문제”라고 설명했다.

인명 피해까지 발생하는 건설 현장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 다양한 입법을 하고 규제를 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다만 그 조치들이 과거부터 내려오던 습관적인 문구만 반복하는 데 그친다면, 또 현장의 다른 정책과 모순된다면 사고 예방이 아닌 사고를 오히려 부채질할 수 있다는 점도 명확하다. 이번 광주 사고를 계기로 나올 정부와 업계의 대책이 더 냉정하고 현실적인 분석을 기반으로 만들어져야 할 이유다.

choijh@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