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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메달 훔쳐간 날, 신진서는 수십·수백만 중국팬 패닉 빠뜨렸다
1% 승률에서 기적의 역전승
‘중국 천재’ 양딩신에 LG배 1국 승리
절대불리에서 결정적 한수로 뒤집기
남은 두 대국중 한판만 이기면 우승
한국-중국 자존심 대결로 시선집중
제26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결승3번기 1국에서 신진서 9단이 온라인 대국에 임하고 있다. [한국기원]

지난 7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과 중국 베이징 중국기원 현장. 대국시간 3시간을 다 소비하고 초읽기 40초 다섯번의 시간이 남아있을때까지 10집 이상 불리했던 신진서 9단. 종반전 직전까지 단 한번의 우세도 잡지 못하고 시종일관 끌려다니던 신 9단. 그때 인공지능(AI) 카타고가 예측한 신진서가 이길 확률은 겨우 1%. 신 9단의 얼굴은 어두웠다. 바둑 프로세계에서의 종반전 10집 불리는 패배나 다름없었다. 돌을 던져도 이상할게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다. 회심의 칼은 하나 숨기고 있었다. 다만 상대가 중국 천재 기사로 손꼽히는 양딩신 9단이라는게 문제였다. 이날만큼은 신진서의 대마사냥을 요리저리 피하면서 날렵한 행마를 보여준 양딩신이기에 그가 실수할 확률은 제로에 가까워 보였다.

유일한 희망은 중앙하단. 마지막 불꽃의 끄트러미를 포기하지 않았다. 마지막 카드로 혹시나 하며 186수로 들여다봤다. 양딩신이 그 수 오른쪽으로 돌을 이었으면 게임은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무심코 187수로 이은 양딩신. 이게 3시간 내내 양딩신이 둔 유일한 실수였다. 그리고 그것은 통한의 패착이었다. 두어수를 더 둔 양딩신은 그제야 회복불능의 실착 임을 깨달은 듯 허둥지둥댔다. 온라인대국 현장 중계 해설자는 그때부터 들떴다. “양딩신이 어떻게 된 것 아닙니까? 중국에서 난리가 났어요. 떡수를 뒀다고….” 그러면서 “신진서가 게임을 포기하고 있었는데…. 아, 역전 가능성이 보입니다”라고 흥분했다.

바둑에서 한번의 중대착오는 평정심에 파도를 일으키는 법. 이날 대국에서 완벽했던 양딩신은 이후 무너졌고, 종반 직전까지 위력적으로 포진했던 중앙대마는 몰살을 당했다. 패착의 수 이후 서로 10수 정도를 두었을때 유튜브 중계를 하던 김성룡 해설자는 “중국팬들이 많이 들어와 시청하고 있었는데, 다 방을 나가고 있어요. 충격적입니다”라고 했다. 카타고가 예측한 이때의 신진서 승률은 99%. 패착의 수 이전의 1:99에서 99:1로 판세를 정반대로 뒤집은 것이다.

현존하는 프로기사 중 인공지능급 실력을 갖췄다는 신진서와 중국이 자랑하는 기재로 꼽히는 양딩신의 대결은 한국과 중국의 자존심 싸움을 상징하는 것이어서 중국팬들의 관심 역시 매우 컸다. 신진서와 양딩신의 그동안 역대전적도 5:5로, 호각지세였기에 중국팬으로선 양딩신이 신진서를 꺾어줄 것으로 기대했다. 초반과 중반의 기세도 유리했으니 승리에 대한 확신도 그만큼 강했을 것이다. 그런데 다 이긴 줄 알았던 시합에서 단한번의 막판 실수로 역전을 당하자 중국팬들이 충격을 받곤 중계 시청자 방에서 썰물같이 빠져나간 것이다. 잘 알려지다시피 중국은 바둑사랑에 관해선 지구촌에서 최고의 나라. 중국 바둑인구는 통상 2500만명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바둑광인 나라의 수많은 중국팬이 일시에 패닉에 빠진 것이다.

김 해설자가 “계속 신진서가 10집 이상 불리했는데, 반대로 이젠 15집 이상 우세하네요. 승리 확정적입니다”라고 했을때, 양딩신은 돌을 거뒀고 허탈감이 심한 듯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했다. 이겼어도 멋쩍어 하는 신진서의 표정. 밝지않은 얼굴로 자리를 떴다.

국내랭킹 1위인 신 9단이 LG배 결승1국에서 양딩신 9단을 상대로 이같이 기적의 역전승을 연출했다. LG배는 올해 첫 세계 타이틀이다. 백을 잡은 신 9단은 이날 온라인으로 열린 제26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결승3번기 1국에서 양딩신에 226수 만에 불계승했다. LG배는 세번의 대결로 최종 우승자를 가리는데, 이날 1국의 승리로 우승컵에 한발짝 더 다가선 것이다. 이날 신 9단의 역전 뒤집기 승전보는 베이징올림픽 쇼트트랙 등에서 중국의 편파판정 논란이 후끈 달아오르는 시점에서 이뤄진 것이라 여러모로 상징성이 있어 보인다는 게 중론이다.

이날 대결을 본 이들은 한결같이 ‘기적의 대역전극’이 벌어졌다고 입을 모았다. 바둑TV 송태곤 해설자는 “신진서가 이기기 도저히 불가능한 구도였는데, 메이저대회 역사상 최고의 뒤집기가 아니었나 한다.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신 9단 역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결승1국 직후 인터뷰에서 “오늘 바둑은 어디에서 확실히 좋지 않았는지 판단이 안될 정도로 시종일관 끌려 다녔다. 마지막에 원래 노리던 걸 결행해봤는데 운이 따랐던 것 같다”고 했다.

이날 1국 승리로 신 9단은 양딩신과의 상대전적에서 6승 5패로 한발 앞서가게 됐다. 2국은 오는 9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우승상금은 3억원, 준우승상금은 1억원이다. 신 9단이 우승하면 LG배에서 두 번째, 자신의 세 번째 메이저 타이틀을 거머쥔다. 현재 보유 중인 춘란배와 더불어 첫 메이저 2관왕을 차지한다. 김상수 기자

heral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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