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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적book적]호모사피엔스부터 남중국해까지, 바다의 눈으로 쓴 인류대서사
선박·항해기술 가진 고대인류 원양항해
그리스·로마 서구문명사는 일부일 뿐
中 정희 원정 과시용…패권 유럽으로
군사충돌·해양오염 등 미래 준비해야
“세계 경제의 발전은 해로가 책임지고 있다. 정보화의 확대와 그에 기반한 미래 경제는 해저 케이블의 확대 없이는 불가능하다.(…)바다는 언제나 인류 역사의 중요한 무대였고, 현재 가장 뜨거운 삶의 현장이며, 장래 우리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공간이다.”(‘바다 인류’에서)

바다가 근대 체계의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점을 밝힌 ‘대항해 시대’(서울대출판문화원)의 저자로 잘 알려진 주경철 서울대 교수가 인류사 전체를 바다의 관점에서 조명한 ‘바다 인류’(휴머니스트)를 펴냈다. 15~18세기 대항해 시대에 한정하지 않고 호모 사피엔스의 아프리카 탈출부터 현재까지 해양이 인류 역사 발전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새로운 관점으로 통관한 인류사다. 1000여쪽에 달하는 묵직한 책은 늘 인류와 함께 해왔으나 대륙의 역사에 가려진 새롭고 역동적인 인류의 또 다른 삶과 문명의 현장으로 이끈다.

현생인류가 바다를 처음으로 건넌 때는 언제일까? 1만 2000년 전까지 9만년간 지속된 마지막 대빙하기때 타이, 수마트라, 자바, 보르네오 등 인도네시아의 각 섬과 동남아시아는 땅으로 연결돼 있었다. 순다랜드다. 해수면이 현재보다 50~150미터 내려가 이들은 걸어갈 수 있었다. 온난한 기후를 찾아 이 대륙에 도착한 인류는 순다와 오스트레일리아, 뉴기니, 테즈메니아 등 사훌 대륙 사이 산재한 섬들을 징검다리 삼아 바다를 건너갔다. 그렇게 오스트레일리아에 발을 내딛은 게 약 6만5천년 전이다.

마찬가지로 베링해협은 북동시베리아와 서부 알래스카가 연결된 육로였다.약 1만 6000~1만7000년 전, 아시아계 사람들이 이 육로를 건너 아메리카로 들어와 인디언의 조상이 됐다는 게 기존 정설이다. 또한 최초의 원주민은 내지의 사냥꾼이라기보다 물에 잠기는 연안에서 물고기를 잡았을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이후 인류의 이동과 확산은 폴리네시아, 미크로네시아 등 태평양 수천 개의 작은 섬으로 이어진다. 이들 오스트로네시아족은 인구 과잉, 모험과 약탈, 신분상승 등 여러 이유로 망망대해를 건너갔다. 이들이 해상 이주를 감행하던 기원전 3500년 경엔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선박과 항해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일찌기 원양항해가 이뤄진 것이다.

저자는 태평양 섬에 사람들이 확산하는 역사적 과정을 되짚어보면 그동안 대양을 바라보는 시각이 왜곡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며, 파푸아 뉴기니 출신의 인류학자 에펠리 하우오파의 설명에 동조한다. 즉 “태평양 세계의 주민들은 작은 세상에 갇혀 사는 게 아니라 서로 왕래하고 교역하는 대양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며, 바다를 고향삼아 이웃과 교류해온 이들의 대양공동체를 분할한 것은 제국주의 세력이라고 지적한다.

각 대양권역을 살피면서 문명의 발달을 거슬러올라가는 여정에 흥미로운 점은 흔히 원양항해는 문명의 결과로 여겨지는 것과 달리 선사시대부터 원양항해가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인도양 해역에서도 선사시대부터 원양항해가 이뤄졌으며, 원양항해가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인더스 문명의 발전과 교류를 촉진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인류 최초의 문명으로 여겨지는 수메르의 아카드 제국 초대 황제인 사르곤 1세(기원전 2400년경)의 인장에는 강과 바다의 수송 네트워크를 통해 인도 고대문명권과 교역한 기록도 있다. 인도 북서부의 귀중한 상품들이 마간으로 들어오고 딜문을 거쳐 메소포타미아 중심부로 들어갔다.

서구문명의 기원지로 거론되는 지중해세계도 교과서적인 설명에서 벗어난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명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 문명이 성장하고 로마가 이를 이어받아 서구 문명의 모태가 됐다는 게 일반적이다. 저자는 이런 서술은 역사의 실상을 왜곡시킬 우려가 크다며, 초기 지중해 세계는 그리스 로마의 독무대가 아니라 다양한 민족 집단들이 협력하고 한편으론 투쟁하는 복합적인 역사 흐름이 이어지는 곳이었다고 설명한다.수많은 역동적인 네트워크의 집합체, 남유럽 뿐 아니라 아프리카, 중동, 북유럽 등 여러 지역의 문명 요소들이 교류하고 융합돼 새로운 문명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연구가 부족한 아시아 대륙과 해양이 어떻게 발전해가는가를 살핀 대목도 눈여겨 볼만하다.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해양 네트워크는 오랜 기간에 걸쳐 발전하고, 인도양 세계와 연결됐으며, 이슬람세계와도 조우했다. 그 중심에 말라카해협이 놓여있다.

고대 중국은 해양교역에 소극적이었다. “중원 사람들은 남부 해안 지역과 그 너머 세계에 대해 단지 귀중한 이국 상품이 들어오는 통로”로만 봤다. 외국의 희귀 물품에 대한 욕망은 중국중심의 이데올로기인 조공을 통해 해결했다. 조공이 아닌 교역에 대해선 호의적이지 않았다. 한편 황허문명권은 남중국해를 통해 간헐적으로 외부세계의 물품을 들여왔는데,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지역이 매개역할을 했다.

당나라때는 해상교역에 적극적이었다. 문호를 개방, 이슬람 상인이 중국 남부에 들어와 활발한 교역 활동을 펼쳤다. 스리위자야나 샤일렌드라, 촐라 왕국 같은 동남아시아 중계세력들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저자는 명초 정희의 남해 원정을 새롭게 평가한다. 세계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거대한 해상 팽창사업이었지만 새로운 발견 보다 과시용이었음을 지적한다. 그나마 단기간의 사업 이후 중단됐다. 저자는 “중국이 바다 너머 세계를 자신들의 내부로 끌어들이려 한 반면 유럽은 바다를 통해 세계로 외연을 확대했다”며, “결과적으로 근대 세계의 해양 패권은 유럽의 차지가 되었다”고 평가한다.

책은 기존 수렵 및 채집으로부터 농업을 거쳐 문명으로 이어졌다는 문명발전경로와 달리 해양 환경적 관점에서 문명발전론을 제기한다. 또한 서구 중심의 해양사, 제국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나 바다를 통해 소통하고 연결된 네트워크 공동체로 인식하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현재 강대국의 군사력 충돌과 해양 오염 등 인류 생존의 보고이자 희망이며 우려의 대상인 해양 문제도 짚었다.

기존의 700여편의 논문과 저서, 보고서는 물론 새롭게 제기되는 가설까지 담아낸 현재진행형 바다 인류 이야기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바다 인류/주경철 지음/휴머니스트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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