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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러내고 인정하는 상처…‘치유’에 닿다
현대미술 거장 ‘루이스 부르주아’ 개인전
삶·예술 분리되지않고 하나로 이어진 세계
난해하거나 이론적이지 않고 ‘직관적’ 표현
미술가에 영감주는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마지막 10여년간의 ‘치유의 과정’ 54점 전시
‘유칼립투스의 향기’展 30일까지 국제갤러리
2010년 99세로 타계하기까지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온 루이스 부르주아(맨위쪽사진)는 현존 미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꼽힌다.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 자기 내면을 직시하고 받아들인다는 의미를 담은 작품 ‘거울(THE MIRROR·가운데)’와 ‘내면으로(‘Turning Inwards’) #4’ 중 ‘유칼립투스의 향기 (THE SMELL OF EUCALYPTUS (#1))’ [국제갤러리 제공]

“내 작업은 고통과 상처를 정화하고 치유를 위해 존재한다.”(루이스 부르주아)

미술계의 ‘강력한 인플루언서’로 떠오른 방탄소녀단의 리더 RM의 인스타그램에 최근 거대한 거미 조각이 등장했다. 작품명은 ‘마망(Maman)’. 프랑스어로 ‘엄마’를 뜻한다. 높이 9m, 지름 10m의 이 거대한 청동 거미는 ‘20세기 최고의 조각가’로 불리는 루이스 부르주아(1911~2010)의 작품이다.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등 전 세계 미술관에 6점이 설치됐고, 미국의 디아 비콘(Dia Beacon)에서도 볼 수 있다. RM이 들른 장소다. 국내에선 용인 호암미술관에 가면 만나게 된다.

‘현대미술의 거장’ 루이스 부르주아는 뒤늦게 빛을 발한 작가다. 70세가 넘어서야 작가로서 조명을 받았다. 1982년 71세가 되던 해에 여성 작가 최초로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회고전을 열었고, 1999년에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으며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쳤다. 2010년 99세로 타계하기까지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온 그는 현존 미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꼽힌다.

부르주아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가장 큰 주제는 어머니다. 아버지의 불륜을 목격한 유년시절의 트라우마, 불륜을 묵인하고 체념한 어머니를 향한 연민, 아버지에 대한 증오가 그의 작품 곳곳에 담겼다. 부르주아는 ‘마망’에 대해서도 “강인한 모성애를 보이지만, 상처받기 쉬운 여성으로의 불안한 내면”을 표현했다고 했다. 그의 자기고백은 동시대 최고의 예술품이었다.

오랜만에 한국에서 열리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개인전 ‘유칼립투스의 향기’(국제갤러리·1월 30일까지)는 생애 마지막 시기인 2006~2009년까지 제작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 시기의 작품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겪어낸 이전작과 달리 치유로 나아간다. 삶과 예술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이어진 부르주아의 작품 세계를 완성하는 시기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유칼립투스의 향기’는 부르주아의 후기 작품 세계를 나타내는 문구이기도 하다. 병든 어머니를 간호하던 시절 약용으로 사용한 유칼립투스는 “어머니와의 관계를 상징하고, 작가의 노년기에 두드러지게 표면화된 모성 중심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매개체”라는 것이 국제갤러리의 설명이다. 작가의 삶 곳곳에서 함께한 유칼립투스는 그에게 ‘치유’의 의미다.

부르주아는 생애에 걸쳐 조각, 드로잉, 회화, 판화,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작업을 시도했고, 미술 사조를 반영하면서도 독창적인 작업 세계를 구축했다. 이번 전시에선 ‘내면으로(’Turning Inwards‘) #4’ 시리즈를 비롯해 마지막 10여년 간 작업한 다양한 작품을 총 54점 선보인다. 윤혜정 국제갤러리 이사는 “부르주아의 대부분의 작업은 개인사, 삶의 전반에서 영감 받은 사유, 철학, 태도, 시선에서 출발했다”며 “다른 현대 미술 작품들처럼 난해하거나 이론적이지 않고 비교적 직관적이라 공감을 잘 이끌어낸다”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점은 전시에서 선보이는 ‘내면으로’ 시리즈가 판화로 제작됐다는 것이다. 윤 이사는 “부르주아는 초기엔 회화 작업을 해오다 회화가 현실을 반영하는 데 부족하다 느껴 1940년대 중반에 조각으로 방향을 전환했다”며 “본격적인 조각 작업 시작 전 3차원을 실험하기 위해 판화를 시도해 꾸준히 이어오다 1990년대 판화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전시에선 부르주아의 성찰을 만나게 된다. 총 39점의 대형 동판화로 이뤄진 ‘내면으로’ 시리즈는 “과거의 분노와 상처, 증오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돌아보는 성장과 성찰”을 보여준다. 초기의 날 선 작품과는 달리 치유로 나아가는 진화한 작업 세계다. 여기에 모성, 섹슈얼리티, 가족, 식물과 자연에 대한 작가만의 시선을 담았다.

미술적으로는 추상적, 초현실적 탐구와 실험도 꾸준히 이어간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기하학적 형태로 두려움과 폭력을 암시하는 작품(KNOTS)부터 초현실주의자들과 교류가 활발하던 시기에 완성한 조각 ‘무의식의 풍경(UNCONSCIOUS LANDSCAPE)’까지 다양한 주제가 매체를 아울러 나타난다.

신체처럼 보이는 머리와 몸통 안으로 무수히 많은 눈을 채운 초현실적 작업(I SEE YOU!!!)도 흥미롭다. 부르주아는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초현실주의 작가로 호명되거나 이들과 함께 분류되는 것을 꺼렸다”고 한다. 당시 초현실주의자들은 “남성우월적인 태도를 보이고, 인간의 실존을 도외시”했기 때문이다. 부르주아를 ‘20세기 최고의 페니미즘 작가’로 부르는 것도 미술의 사조가 아닌 자신의 시각, 여성의 시각으로 주제와 가치관을 표현한 이유에서다. 부르주아 작업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인 거울로 만든 작품인 ‘거울(THE MIRROR)’(1998)도 전시에서 주목해야 할 작품이다. “과거의 상처에서 자기 내면을 직시하고 받아들인다”는 의미를 담았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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