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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비즈] 저소득층의 자산형성 프로그램이 필요한 이유

금융불균형, 자산불균형, 가계부채가 중앙은행의 화두인 시절에 새삼스레 자산을 들먹이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금융불균형이나 자산불균형, 그리고 가계부채 증가가 우리 경제의 중요 현안임에는 틀림 없지만 모든 사람이 똑같이 직면하는 문제는 아니다. 특히 저소득 혹은 저자산 보유계층의 사람들에게는 이 현안들은 다른 무게를 갖는다.

우리나라 가계의 자산구조에 대한 설명에 으레 따라붙는 ‘8대 2’ ‘5대 5’라는 숫자가 있다. 앞의 8대 2는 가계자산 중 주택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70~80%이며, 금융자산은 나머지 20%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뒤의 5대 5는 20%의 금융자산 중 은행예금 등 안전자산이 절반 이상이라는 의미다. 이렇듯 주택자산에 자산을 몰아넣고, 교육비·양육비 부담에 허덕이며, 노후를 위한 금융자산 축적의 여유가 없는 상황이 평균적인 가계의 현실이다. 그리고 가계부채의 상당 부분은 주택자산을 레버리지를 통해 사거나 전세 임대를 하는 데 쓰인다.

이러한 평균적인 가계와 비교해 저소득층은 상당히 다른 자산·부채 패턴을 보인다. 먼저 주택자산이 가계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더 크고 금융자산의 비중이 더 낮은 편이다. 반면 부채를 보유하는 가계의 비중은 대단히 작다. 소득 5분위 중 1분위(저소득) 가계의 70% 정도는 부채가 없다. 이를 저소득층이 가계부채 문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증거라고 기뻐하기는 이르다. 오히려 이들이 금융 서비스로부터 소외돼 부채를 가질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라 보는 것이 맞다. 한 마디로 저소득 가계는 대개 사는 집 한 채 혹은 그에 달린 임차보증금 정도가 그들이 가진 전부라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 일반적인 가계의 주식 보유 비중은 낮은 편이지만 저소득층의 경우는 훨씬 더 낮다. 이 같은 자산 배분 패턴의 소득계층 간 격차는 장기적으로는 자산불평등을 악화시키고 소득불평등을 확대시킬 수 있다. 경제를 하나의 주식회사로 본다면 국내총생산(GDP)은 그 회사가 주주에게 지급하는 배당금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금융자산, 특히 주식은 이 경제의 성과물을 나누는 근거가 되는 셈이다. 따라서 모든 소득계층이 주식에 대한 적절한 투자를 할 수 있다면 경제성장의 성과는 비교적 고르게 나눠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소득계층과는 달리 저소득층은 저축할 자금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이에 매칭 방식을 기반으로 한 자산 형성 프로그램을 저소득층을 위한 정책 수단으로 추천하고자 한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지자체나 공공기관이 주도하는 매칭 방식의 저축 장려 프로그램이 이미 여럿 있다. 하나의 은행예금계좌를 중심으로 저축과 지원이 이뤄지는 기존 프로그램과 달리, 저소득층을 위한 자산 형성 프로그램은 은행예금계좌와 상장지수펀드계좌를 두고 참가자가 은행예금계좌에 저축하면 정부는 매칭되는 지원금을 참가자 명의의 상장지수펀드계좌에 넣어준다. 이렇게 되면, 가입 대상 저소득자들은 저축을 늘릴 유인을 갖게 될 뿐 아니라 안전자산 일변도에서 탈피해 적절하게 자산 배분을 다각화하면서 수익률을 높이는 효과를 누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회 전체적으로는 자산불평등을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자산 배분의 소득계층 간 차이를 줄일 수 있게 된다.

이는 재정적으로도 큰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다. 저소득층은 다른 소득계층과는 달리 상위 소득계층으로의 이동 가능성이 크지 않다. 따라서 자산 형성 프로그램에 투입된 재정 지원의 상당 부분은 사회안전망을 유지하기 위해 쓰였을 미래 재정지출을 줄여주는 효과도 있다. 또 이미 상위소득계층의 개인연금저축에 대한 세액공제 규모가 연 1조원을 넘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형평성 차원에서 저소득층에 대한 자산 형성 프로그램의 시행은 검토해볼 만하다.

허석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nature68@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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