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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플러스] 경제로 흥한 우파 포퓰리스트, 인플레의 역습에 치명타
터키 에르도안·브라질 보우소나루·헝가리 오르반…外資 덕분에 권력 공고화
유동성 급증·원자재가 상승·인력난發 글로벌 인플레, 3개국서 더 극명
통화 가치 폭락도 인플레 부추겨…‘동족방뇨’식 헛발질 정책에 문제 심화
경제난 가중에 민중 분노 폭발…대규모 시위 이어 대선·총선 표심으로 결집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터키 대통령과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의 모습. [AFP, 로이터, 123rf]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전 세계를 휘감고 있는 기록적인 물가 상승세가 ‘스트롱맨’으로 군림해온 ‘우파 포퓰리즘(populism, 대중 인기 영합주의)’ 대표 주자 3인을 강타, 굳건한 것처럼 보이던 정치적 기반을 뒤흔들고 있다.

‘21세기 술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브라질의 트럼프’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빅토르 독재자(Victator, 이름인 빅토르와 독재자의 합성어)’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바로 그들이다.

향후 1~2년 내 권력 연장을 결정할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초(超)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불러온 경제 위기와 민심 이반은 그들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모양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세 지도자들이 모두 큰 선거를 앞두고 인플레이션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신의 선물’ 글로벌 투자 덕분에 권력 다진 포퓰리스트

오르반 총리와 에르도안 대통령이 각각 11년, 18년에 걸쳐 권좌에서 내려오지 않았고, 극우 성향으로 불리던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대중 다수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경제적 성과 때문이었다.

이들 3개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발생하기 전부터 이어진 글로벌 ‘저성장·저물가’ 수혜를 누려 왔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를 비롯해 유럽중앙은행(ECB), 영란은행(BOE) 등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낮추자 전 세계 큰손들이 고위험·고수익을 찾아 신흥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막대한 외자 유치 덕분에 개발도상국의 대표 국가들로 불린 브라질, 터키, 헝가리의 경기는 호황을 맞았고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은 이를 자신의 성과로 포장했다.

다론 아제모을루 미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경제학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거시경제 환경은 권위주의 지도자들에게 ‘신의 선물(godsend)’이었다”고 평가했다.

대표적으로 지난 2009년 급격한 경기 침체에 빠졌던 터키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이 몰리며 빠르게 정상 궤도를 회복했다. 또, 지난 2018년 미 연준이 기준금리를 낮추자 미국 투자 자본들이 브라질 채권으로 대거 몰렸고 ‘경제 개혁’을 기치로 내세워 막 출범한 보우소나루 정권에겐 단비와 같은 호재였다.

유동성 급증 發 인플레, 통화 가치 하락에 직격탄

세 명의 우파 포퓰리스트들에게 코로나19에 따른 경제 침체에 빠지지 않기 위해 전세계 국가가 함께 했던 몸부림은 역설적이게도 이들에겐 정치적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다.

천문학적인 돈을 풀어 온 글로벌 중앙은행의 정책에 따른 유동성 급증과 원자재 가격 상승, 봉쇄(Lockdown) 등으로 인한 인력난으로 생산·물류 시스템이 마비되며 발생한 글로벌 공급망 붕괴 등이 맞물리며 전 세계 물가가 전례가 없을 정도로 치솟았다.

[트레이딩이코노믹스 자료]

이들 세 나라도 예외일 수 없었다.

브라질의 물가 상승률은 지난 11월 10.74%까지 높아졌다. 항목별로는 주식인 쇠고기값은 43%나 폭등했고, 전기·가스비도 1년 사이 30% 넘게 올랐다.

터키의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하다. 터키 공식 통계 조사 기관인 ‘투르크스탯’이 지난 3일 발표한 11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21.31%다. 터키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20%를 넘어선 것은 3년 만에 처음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18일 아프리카 청년들과 만난 자리에서 “조만간 인플레이션을 4%대로 떨어뜨릴 것”이라며 호언장담했다.

이들 두 국가에 비해 상황이 낫지만, 헝가리의 11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 역시 7.4%로 2007년 이후 최대 폭으로 상승했다.

각국 통화 가치가 빠른 속도로 하락한 것도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터키 리라화(貨) 가치는 연초에 비해 50% 이상 폭락했다. 지난 2월 1달러당 6.96리라였던 환율은 지난 17일 기준 16.4리라까지 치솟았다.

헝가리 포린트화의 1달러당 환율도 지난달 22일 329.1포린트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고, 브라질 헤알화의 1달러당 환율도 지난 6월 말 1달러 당 4.91헤알로 5헤알 선 아래로 내려갔던 데 비해 지난 21일 5.75헤알까지 높아졌다.

[트레이딩이코노믹스 자료]

경제 이론 무시한 ‘자책골’로 위기 심화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의 ‘헛발질’ 정책은 3개국의 문제를 더 심화시키고 있다.

터키는 물가가 치솟는데도 넉 달 연속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지난 9월 기준 19%였던 터키 기준금리는 현재 14%까지 떨어진 상황이다.

터키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는 에르도안 대통령 압박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고금리가 고물가를 유발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신의 의지로 인플레이션은 떨어지기 시작할 것”이라며 “무슬림으로서 이슬람의 가르침이 요구하는 대로 이를 계속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슬람 법인 샤리아는 이자 청구·지급을 금지하고 있다.

경제학보다 종교가 앞선 탓에 풍부해진 유동성을 줄이고자 다시 금리를 인상하는 주요국 움직임과 정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지난 8일(현지시간)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에 위치한 대통령 관저 앞에서 브라질 시민들이 경제 정책 실책에 대해 항의하며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아서 리라 브라질 하원의장, 파울로 게데스 브라질 경제장관의 얼굴이 표시된 가짜돈을 날리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

금리 인하로 인해 그동안 터키에 투자돼 있던 외자도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고 있다.

클라우디아 칼리치 런던 M&G인베스트먼트 신흥시장 채권 책임자는 “터키 국채에 투자했던 자본금을 모두 정리했다”며 “잘못된 정책이 계속되고 있는 현실을 보면 판단은 탁월했다”고 설명했다.

브라질과 헝가리도 최근 유권자들에게 현금을 대거 살포했다. 재정 지출이 늘면서 가뜩이나 폭락한 통화 가치는 더 추락하고, 인플레이션 압력도 상승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NYT는 “선거를 앞둔 탓에 ‘반짝’ 경기 회복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제난에 폭발 직전까지 다다른 민중 분노

결과적으로 세 포퓰리스트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하는 모양새다. 장기간 지켜온 권좌에서 세 명의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이 밀려날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지난달 24일 터키 이스탄불, 앙카라 등 전역에서는 수천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뛰어나와 “에르도안은 터키를 떠나라”고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여기에 터키 최대 경제인 단체인 ‘터키경제산업협회(TUSIAD)’까지 나서 자국 정부에 저금리 정책을 폐기하고 “경제학의 기본으로 돌아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19일(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에서 시민들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경제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로이터]

2023년 대선과 총선을 앞둔 에르도안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도 크게 떨어지는 모양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 정의개발당(AKP)의 지지율은 2018년 대선·총선 당시 42.6%에서 지난 10월 31~33%까지 떨어졌다.

내년 총선이 치러지는 헝가리에선 오르반 총리가 이끄는 피데스당에 대항하기 위해 단일화를 이뤄낸 야권 간에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양상이다. 2018년 총선에서 피데스당이 여유 있게 승리했던 것과는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이다.

가장 큰 위기에 봉착한 것은 보우소나루 대통령이다.

최근 내년 10월 열리는 대선 1차 투표 예상 득표율 조사에서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23~27%로 좌파 후보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46~48%)에 20%포인트 넘게 뒤처지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선 중도 진영의 세르지우 모루 전 법무장관에 밀려 결선 투표에 진출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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