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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포] 분노→허망으로 끝난 ‘방역패스 첫날’…사장님만 속탔다
방역패스 의무화 첫날인 13일 혼란 가중
종일 QR코드 먹통…손님과 입씨름
손님 10명 내보낸 사장님도
질병청, 이날 방역패스 적용 안 하기로
지난 13일 오후 8시께 서울 마포구의 한 일식집에서 가게를 정리하고 있는 업주 김삼순 씨. 김씨는 이날 점심시간부터 전자출입명부(QR코드) 오류로 손님들과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가게 정문에는 김씨가 쓴 방역패스(백신패스) 안내문이 붙어 있다. 김빛나 기자

[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 허탈함. 지난 13일 오후 8시께 서울 마포구에서 일식집을 운영하는 김삼순(52) 씨가 30분 전에 재난문자를 받았을 때 심정이다. 해당 문자에는 ‘오늘은 방역패스(백신패스)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질병관리청의 발표가 담겼다. 김씨는 “점심시간부터 종일 전자출입명부(QR코드) 오류 때문에 손님들과 실랑이 벌여야 했다”며 “인증이 안 돼 손님을 거부하자 단골에게 ‘서운하다’는 소리 듣고, 어떤 분에게 욕까지 먹었다”고 말했다.

인근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정병숙(52) 씨도 분통을 터뜨렸다. 정씨는 “영업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이제야 방역패스 적용 안 한다고 발표하면 어떡하냐”며 “가게에 안심콜이 없어 QR코드 오류가 뜨면 손님을 내보내야 했다”고 말했다.

방역패스(접종완료증명이나 PCR 음성 확인서) 의무화 첫날이었던 지난 13일, 자영업자들은 롤러코스터 같은 하루를 보냈다. 방역정책을 정확히 숙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점심시간부터 QR코드 오류까지 발생하자 식당·카페 사장들은 우왕좌왕했다. 점심·저녁시간 내내 손님과 씨름하고 남은 건 허망함뿐이었다.

지난 13일 오후 7시께 서울 마포구의 한 중식당에서 한 시민이 질병관리청 쿠브(COOV)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해 QR코드 인증을 받으려 했지만 오류가 발생하고 있다. 김빛나 기자

같은 날 오전 0시부터 식당·카페 등에서 방역패스 확인을 하지 않으면 이용자, 운영자 모두에게 과태료가 발생한다. 하지만 오전 11시30분께부터 두 시간가량 네이버, 카카오, 질병청 쿠브(COOV)의 QR코드 전자증명 시스템에서 오류가 발생했다. 점심시간에 QR코드 체크인 수요가 몰리자 질병청이 관리하는 백신접종 관련 서버에 과부하가 걸린 것이다.

이후 정상화가 되는 듯했으나 저녁시간대인 오후 7시 전후로 또다시 시스템이 먹통이 됐다. 질병청은 오후 8시가 돼서야 “방역패스 시행을 대비해 사전 조치를 했는데도 실시간 대량 인증 처리 장애 등 과부하 대응에 미흡한 점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저녁시간에도 혼란이 이어지자 식당은 방역수칙 위반을 감수하고 손님을 받기도 했다. 이날 오후 7시께 마포구 지하철 홍대입구역 부근의 한 중식당에서는 손님 2명이 “QR코드가 작동 안 한다”고 하자 사장 장모(38) 씨는 “어쩔 수 없다. 그냥 들어오시라”고 말했다. ‘방역수칙 위반인데 괜찮냐’는 질문에 장씨는 “일단 손님을 받고 시스템이 정상화되면 다시 QR체크인을 하라고 할 것”이라고 답했다.

같은 시각, 중식당 부근의 닭갈빗집 알바생인 강주천(22) 씨는 저녁손님 6명이 접종 완료 확인을 전자출입명부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했다. 강씨는 “‘국민비서 구삐’가 보낸 카톡 메시지 내용이나 병원에서 보낸 문자로 확인한 뒤 손님을 받았다”고 말했다. 장씨와 강씨 가게에는 안심콜이 없었다.

일부 식당 주인은 손님을 내보내기도 했다. 2층 규모의 대형 음식점을 운영하는 민금섭(36) 씨는 이날 점심시간에만 손님을 10명 이상 돌려보냈다. 민씨는 “점심때는 (QR코드가) 먹통이라 손님을 돌려보내고, 저녁에 접종 완료자가 미접종자로 떠서 확인을 거쳐 손님을 받았다”며 “안심콜은 없고 수기 명부도 원칙적으로 금지라 하기에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식당·카페 등에서 ‘방역패스(백신패스)’ 미확인 시 이용자와 운영자에게 과태료가 부과되기 시작한 지난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방역패스를 증명할 QR코드 서비스가 장애를 일으키자 시민이 식당에 들어가지 못하고 대기하고 있다. [연합]

QR코드 오류로 종일 속을 태웠지만 ‘긴가민가한’ 방역수칙도 자영업자를 혼란에 빠뜨렸다. 간이음식점으로 등록된 포장마차의 경우도 일반음식점처럼 방역패스 의무화 대상인데도 모르고 있는 사업자가 많았다. 홍대입구역 주변에 설치된 포장마차에서는 접종 완료 증명 없이 떡볶이와 어묵을 먹고 있는 시민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일부 가게에서는 잘못된 정보를 알고 있기도 했다. 스마트폰이 없는 노인과 청소년을 위해 수기 명부 작성이 가능하나 수기 명부 자체를 없앤 가게들도 있었다. 버블티카페 아르바이트생 이모(21) 씨는 “수기 명부가 아예 안 되는 줄 알고 명부 자체를 없앴다”고 말했다.

방역패스 확대를 두고 자영업자들의 혼란은 가중될 전망이다. 이창호 코로나19 대응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 공동 대표는 이번 혼란에 대해 “정부도, 자영업자도 방역패스 시행을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 너무 짧았다”며 “사업장마다 사정이 달라 인력이 부족하거나 전자명부 도입이 어려운 곳도 있는데 이에 대한 대책 없이 도입해 모두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사장님들은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마포구 지하철 상수역 부근에서 한식집을 운영하는 정모(63) 씨는 “점심때 실랑이가 있었긴 하지만 ‘힘들었던 날’로 생각하고 넘기려 한다”며 “오늘도 그렇고, 요즘 손님이 많이 없다.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도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binn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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