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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본혁의 현장에서] 그들은 왜 출연연을 떠나는가?

국내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권위자로 꼽히는 한 출연연 연구자가 한국과학기술원(KAIST)으로 이직했다. 이 연구자는 자신이 몸담았던 출연연에서 연구업적을 인정받아 적극적인 지원과 함께 명예를 얻었기에 내부에 큰 충격을 던져줬다. 지난달에는 국내 수소 연구개발을 주도하던 출연연 연구자가 한전공대로 자리를 옮겼다. 이뿐만이 아니다. 코로나 팬더믹시대 중요성이 커진 영장류 연구 핵심 인력도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최근 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구기관의 핵심 인재 유출이 심각해지고 있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의 통계에 따르면 최근 6년간 약 700여명의 출연연 연구자가 연구현장을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출연연을 떠난 연구자 대다수는 대학으로 이직한 것으로 확인됐다. 출연연에 비해 정년이 길고 연구 환경이 상대적으로 좋은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출연연 연구자들의 이탈 현상의 이면에는 연구과제중심제도(PBS)에서 기인한 부족한 연구예산 문제가 있다. 예산 확보를 위한 생계형 사업 수주 확대로 연구 몰입 환경이 훼손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출연연 한명의 연구자가 연간 최대 15개의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있으며 과제당 평균 10여명이 참여하는 실정이다. 과학계 관계자는 “현재 과학계 출연연은 PBS로 인해 연구자가 연구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과제 수주에 더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며 “특히 대형 연구과제보다 1억원 미만의 소형 연구과제가 많아지고 있는 것은 출연연의 본래 기능을 상실하고 있는 증거”라고 말했다.

짧은 정년 문제와 열악한 처우 역시 큰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출연연구기관 연구자들의 정년은 만 61세다. IMF 외환위기가 닥친 1997년부터 4년이 줄었다. 더욱이 2015년부터는 과학기술계에도 임금피크제가 적용됐다. 출연연 연구자들은 국가 차원의 연구를 수행함에도 대기업이나 학교에 비해 급여가 낮고 연금제도 또한 공무원·사학·군인연금에 비해 적다. 또한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는 신분상의 불균형도 이탈에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과학기술분야 정부 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 육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출연연 연구원은 준공무원 신분이지만 공무원연금 등 공무원이 누릴 수 있는 각종 복리후생은 적용받지 못한다.

과학기술이 국가경쟁력으로 작용하는 시대에 우수한 연구자들이 일선 연구 현장을 떠난다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에 국내 과학기술계는 정년을 다시 65세로 하고 임금피크제 폐지를 통해 우수 연구인력의 유출과 이공계 기피 현상을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하지만 정부는 형평성을 이유로 이에 대한 개선에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 않다.

해마다 정부는 과학기술 연구 현장의 연구 몰입 환경 조성과 안정적인 연구비 지원을 늘려 나가겠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정부의 의지가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제 연구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책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nbgk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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