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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태우 사망] 남북기본합의에서부터 유엔가입까지…남북협력·분단 과제 모두 남긴 노태우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숨졌다. 지병으로 오랜 병상 생활을 해온 노태우 씨는 최근 병세 악화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의료진의 집중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삶을 마감했다. [연합]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26일 별세한 노태우 전 대통령은 남북 대치관계를 평화통일을 위한 협력관계로 전환할 이정표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련 해체를 맞아 전방위적 북방외교를 펼친 데 이어 북한의 체제를 인정하고,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올해 30주년을 맞이한 유엔 가입도 노 전 대통령의 전방위 외교로 성공할 수 있었다.

1987년 대선에서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후보를 제치고 제13대 대통령에 당선된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뒤 소련·중국 등 공산권 국가들과 수교하며 외교지평을 넓혔다. 45개국과 새롭게 수교하며 노 전 대통령은 국가의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유엔회원 가입을 추진했고, 이는 공교롭게도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을 이끌었다.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숨졌다. 사진은 1990년 1월 22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김영삼 민주당 총재, 김종필 공화당 총재(오른쪽)와 청와대에서 긴급 3자회동후 3당 합당을 발표하는 모습. [연합]

남북 유엔공동가입은 남북 대외관계를 질적으로 변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엔 공동가입은 한반도에 두개의 주권국가가 있다고 국제사회에 공인하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노태우 정부가 추진한 유엔회원 가입은 탈냉전 체제에서 남북간 공존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는 평가와 함께 분단을 고착화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편, 노 전 대통령과 김일성 당시 북한 주석은 냉전 질서의 해체를 목도하면서 상호 협력의 필요성을 느꼈고, 이는 1991년 고위급회담을 거쳐 화해와 불가침, 교류협력에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채택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1989년 10월 강영훈 당시 총리가 우리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해 김 주석을 만나기도 했다. 남북 기본합의서가 탄생하기까지 남북한 총리는 8차례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협의했다. 노태우 정부가 이끈 남북기본합의서는 이후 지금까지도 남북관계를 규정하는 기본 틀로 남아있다.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오늘날 남북간 비핵화 협상이 지속되고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 정부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계기로 남한 내 주한미군 기지에 배치됐던 핵탄두를 모두 철수했다. 지난 2018년 남북 및 북미 정상 공동성명에서 우리 정부가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표현을 담은 배경에도 남북 비핵화 공동선언이 있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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