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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 피라미드와 미래산업의 황금열쇠, 측정표준

인류 최초의 표준은 기원전 7000년께의 고대 이집트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집트에서는 원통형 모양의 작은 돌을 표준화해 정확한 무게를 측정하는 단위로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표준의 효용을 체감한 이집트인들은 길이에 대한 표준도 정립했는데, 바로 ‘로열 이집트 큐빗’이다. ‘큐빗’은 성인의 팔뚝길이를 뜻하는데, 사람마다 그 길이가 다르므로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어려웠다. 이에 이집트 파라오는, 자신의 팔꿈치부터 중지까지의 길이를 ‘로열 이집트 큐빗’으로 정의하여 표준화했다. 이 측정표준 덕분에 인류사에 영원히 남을 정교하고 거대한 피라미드가 건축될 수 있었다.

우리도 표준의 역사가 제법 깊다. 세종은 천체의 규칙을 응용해 해시계 앙부일구(仰釜日晷)와 별시계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를 만들었다. 장영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수압과 부력의 원리를 이용해 자동 알람기능이 탑재된 자격루(自擊漏)라는 물시계를 발명하였다. 또 이 시기에 세계 최초의 표준 우량계인 측우기(測雨器)가 만들어졌다. 측우기가 갖는 중요한 의미는, 단지 측정표준을 만들어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전국에 보급하여 강우량을 체계적으로 측정하였다는 것에 있다. 이러한 측정표준 개발 및 보급노력이 조선의 농업발전에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현대로 발길을 돌려보면, 실생활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표준과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스마트폰을 통해 시간을 확인하고 길이와 무게를 재기도 하며 미세먼지의 양도 손쉽게 알 수 있다. 우리가 즐겁고 편리한 생활을 누리는 데 표준이 큰 역할을 하는 셈이다.

현대 산업분야로 무대를 옮기면 표준 무게가 한층 무거워진다. 산업에서 표준은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표준과 정확한 측정은 무결점이 요구되는 산업현장의 핵심요소이다. 그리고 무결점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교정(較正·Calibration)’기술이다.

한국계량측정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2019년 1년간 우리 기업들은 품질을 높이기 위해 길이, 온도, 질량, 압력 등 측정표준 분야에서 약 233만건의 교정성적서를 발급받았다고 한다. 바야흐로 측정표준의 시대이다.

특히, 첨단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측정기술을 개발하고 품질을 지원하는 교정 및 시험인증기관의 역할이 더욱 강조된다. 왜냐하면 산업이 고도화될수록 완전무결함을 위해 더욱 정밀하고 미세한 기술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즉, 초정밀 측정표준과 교정기술이 미래산업의 안전과 품질을 담보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자 황금열쇠로 여겨지는 것이다.

필자 역시 한국인정기구(KOLAS)에 속한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의 원장으로 근무하면서, 측정표준의 중요성을 산업현장에서 체감하고 있다. 아울러 우리 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21세기형 ‘자격루’를 만들고, 미래형 ‘측우기’를 보급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가슴깊이 느껴진다. 이런 마음을 담아 KTL은 미래산업인 우주항공, 스마트 전력량계, 전기차충전기, 협동로봇 등을 비롯한 첨단 측정기기에 대한 초정밀 교정기술 개발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앞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국제무대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이기 위해서는, 미래표준에 대한 이런 개별기관의 노력과 더불어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경제위상을 고려해볼 때, 전문기관의 역량과 정부의 관심이 결합돼 시너지를 낸다면 우리가 세계표준시장을 선도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그리하여 언젠가, 우리 손으로 만들고 보급하는 측정표준, ‘K-교정기술’을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표준강국으로 도약하기를 기대해본다.

김세종 한국산업기술시험원 원장

oskym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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