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富者), 재물이 많아 넉넉한 사람을 뜻한다. 유의어로는 이런 게 있다. 갑부(甲富), 재물로는 첫째(甲)가는 부자란 뜻이다. 거부(巨富), 말 그대로 부자 중에서도 큰 부자다. 그런데 이런 범주의 유의어도 있다. 폭부(暴富),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 사람이다. 졸부(猝富)도 같은 뜻이다. 우리 말로 하면 ‘떼부자’다. 요즘엔 ‘벼락부자’란 말도 유행이다.
이 범주의 유의어엔 행간이 있다. 긍정적 견해로는 ‘부러움’, 부정적 견해로는 ‘의심’이다. 통상 후자에 가깝다. 어떤 편법으로 하루아침에 부자가 됐는지, 그 정당성에 대한 의문과 추궁이다.
한국사회는 부자에 참 인색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제대로 된 부자보다 편법과 요행으로 부자가 된 이들을 삶 주변에서 더 많이 접한 경험치 때문이다.
세계사에 남을 만한 경제성장을 초단기간에 이뤄낸 한국 사회. 필연적으로 수많은 폭부와 졸부를 양산했다. 하루아침에 부를 거머쥔 이들을 바라보는 박탈감은 자연스레 의심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부의 성장속도를 법과 제도가 따라잡기 버거웠던 시대. 그 의심 또한 ‘합리적 의심’에 가까웠다. 이미 시대가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그 경험치는 우리 인식에 뿌리 깊이 남아 있다. 반(反)부자 정서는 반기업 정서와도 연결된다. 과연 기업이 절차적으로 정당하게 부를 축적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다. 올해 초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설문조사 결과, 한국 사회에 반기업 정서가 존재한다고 인식하는 응답이 93.6%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반기업 정서 원인으론 일부 기업인의 일탈행위, 정경유착, 기업 특혜시비 등이 꼽혔다.
이 사회는 여전히 기업에 ‘합리적 의심’을 보낸다. 기업들이 꼽은 그 이유 그대로, 편법행위와 정경유착, 특혜 등의 현대사를 경험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시대가 변하고 기업이 변했더라도 여전히 신뢰하지 못한다. 마치 층간소음 같다. 온 신경을 귀에 집중하며 종일 천장을 바라보다가 ‘쿵’ 소리 하나라도 나면 ‘역시, 변하지 않았어’라며 분노하는....
믿지 못하는 이들의 문제인가, 믿음을 주지 못하는 이들의 문제인가. 답은 명확하다. 기업이 변하지 않으면 결국 변할 수 없다. 믿어 달라는 호소와 억울함만으론 바뀌는 건 없다.
그래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이 더 중요하다. 요즘 기업들은 앞다퉈 ESG위원회를 신설하고 전담임원을 배치한다. 홍보하는 사업마다 ESG가 빠지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왜?’다. 이재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의 이윤추구 과정에서 절차적 공정성이 있는지 환경·사회·지배구조란 현미경으로 판단해보는 것”이라고 ESG경영을 정의했다.
핵심은 절차적 공정성이다. ESG경영의 목적은 환경보호활동이나 사회공헌을 하라는 표면적 목표를 넘어 기업이 정당히 부를 축적했다는 걸 투자자에 증명하는 과정이란 것이다. 기업을 공개해 공정한 기업이란 믿음을 주려는 노력이다.
반기업 정서를 해소한다면 뿌리 깊은 반부자 정서도 개선될 수 있다. 정당한 부를 인정하고 정당한 부를 존경하는 사회, ‘졸부’ ‘폭부’란 냉소가 사라지는 사회. ESG경영이 이 사회에 가져올 진정한 변화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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