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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악’,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종합선물세트 [리뷰]
11일간 15회…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첫 뮤지컬
소리와 욕망을 소재·전통과 현대음악의 조화
'금악'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금악’은 여러모로 ‘종합선물세트’와도 같았다. 전통을 도구 삼아 사극의 형식 안에서 구현할 수 있는 안무, 무대, 음악을 적절히 보여줬다. 이 무대를 만들기 위해 경기아트센터 산하 예술단체들이 총출동했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부터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경기도극단, 경기도무용단이 뛰어난 실력으로 만든 무대였다.

‘금악’은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가 선보이는 첫 뮤지컬로, 원일 예술감독이 연출을 맡아 지난 18일부터 11일간의 공연을 마쳤다.

배경은 조선 순조 재위 말기, 효명세자가 대리청정을 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궁중음악원 장악원에서 ‘금지된 악보’ 금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을 담은 판타지 사극 뮤지컬이다. 3년의 작품 개발 과정을 거친 이 뮤지컬은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에게도 도전이었다. 원일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은 “다양성에 맞춘 뮤지컬을 제작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며 “작곡가 4명의 협력과 다양성이 녹아있고, 그것을 조화롭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이 시대의 다양한 음악을 통해서 펼쳐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금악’의 가장 큰 강점은 ‘음악’이다. 작품에는 뮤지컬 ‘니진스키’의 작곡가 성찬경, 창극과 경극이 만난 ‘패왕별희’의 작곡가 손다혜, 국악과 재즈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 중인 음악감독 한웅원, 원일이 공동 작곡자로 참여했다. 무엇보다 다양한 음악적 시도가 돋보인다. 전통음악을 토대로 동시대의 음악적 요소가 조화를 이뤘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전통음악 사운드에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더해지고, 일렉트로닉 사운드까지 더해져 음악으로 들려줄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특히 나각, 생황과 같은 국악기와 타악기에 어우러진 ‘천재 악공’ 성율의 넘버 ‘들려주고 싶어’와 내면의 욕망이 형상화된 캐릭터 갈이 부르는 중독성 강한 넘버 ‘갈’ 등을 비롯해 아름다운 음악의 향연이 무대를 보다 풍성하게 채웠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공존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소리를 찾는다는 작품의 메시지가 음악으로 형상화됐다. 각각의 넘버는 하나로 존재하면서도 조화로웠고, 각 캐릭터의 색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넘버 속 음악 구성과 악기, 선율은 다양성을 지니면서도 이지러짐 없이 통일감을 이뤘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가 카메오처럼 등장해 극의 한 장면으로 들어오는 진찬연은 ‘금악’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명장면이었다.

'금악'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제공]

드라마는 전개가 제법 빠르다. 소리와 욕망이라는 ‘흥미로운 소재’에 개인의 성장담이 버무려졌다. 비극적인 가족사를 품은 채 성장한 ‘천재 악공’ 성율이 장악원에 들어가는 과정, 빛나는 재능을 인정받아 장악원 선배들의 표적이 되고, 역경을 딛고 서다 ‘욕망’의 실체와 마주하는 장면들이 숨가쁘게 이어진다. 작품은 성율이 ‘금악’을 읽고, 그 안에 갇힌 욕망의 실체인 갈을 깨우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갈이 등장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소리꾼 추다혜는 노래뿐 아니라 인간이 아닌 존재를 몸짓과 표정으로도 완벽하게 형상화했다.

갈의 등장까지 순식간에 지나간 1막에 비한다면 주제의식과 주요 사건들을 다뤄야 하는 2막의 전개는 늘어지는 편이다. 2막에서의 ‘옥의 티’는 ‘금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로 나아가는 과정에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금악’ 속 모든 인물들은 욕망을 가지고 산다. 사람들의 욕망을 먹고 자라는 갈조차 ‘새로운 곳에서의 영원한 삶’을 꿈꾸는 장면은 꽁꽁 싸맨 맨얼굴을 본 것 같아 애처롭기까지 하다. 작품에선 결국 한계를 벗어난 욕망이 가져오는 비극을 통해 깨달음을 전달한다. 하지만 그 깨달음을 얻으려 희생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억지스러운 교훈처럼 다가온다. 그런 뒤 마주하는 해피엔딩은 작위적이라 마무리를 위한 음악이 길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려는 욕심이 엿보이지만, 사극 뮤지컬이 담기엔 역부족인 장면도 적지 않았다. 피바람이 불어닥친 궁궐의 비극을 그리는 장면들을 몸으로 옮긴 배우들의 슬로모션은 엉성하고, 장면들의 연결이 매끄러지 않은 점은 아쉽다. 또한 배우들의 동선이 어수선하고, 입퇴장 장면이 눈에 띄는 것도 보기에 따라 불편할 수 있었다.

몇 가지의 아쉬움을 차치하고서도 ‘금악’은 흥미로운 뮤지컬이다. 신선한 소재로 창작 뮤지컬이 보여줄 수 있는 새로움과 음악적 다양성과 성실히 보여줬다. 원일 예술감독은 “코로나와 함께 창작 뮤지컬 ‘금악’이라는 긴 숲을 힘겹게 통과해 출구에 다다르니 또 다른 거대한 숲으로 들어서는 입구가 보인다. 이전보다 더 유쾌하고 명랑하게 그리고 단단한 마음과 몸으로 또 다른 음악과 소리의 거대한 숲을 탐험할 것이다”라는 소감을 남겼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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