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데스크칼럼] 언론중재법 개정과 공손룡의 궤변

“활의 명인은 뒤의 화살촉을 앞에 쏜 화살의 오늬에 명중시키고, 이렇게 차례로 쏘아서 앞뒤의 화살이 한 줄로 연달아 이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 또 맨 앞의 화살이 표적에 이르러 채 떨어지지 않았을 때 뒤의 화살이 차례로 이어져 맨 마지막 화살의 오늬는 아직 활시위에 매겨져 있어 마치 화살이 하나의 선을 이룬 것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지요.”

중국 춘추시대 궤변(詭辯)으로 유명한 공손룡(公孫龍)의 주장이다. 명인은 기술은 이뿐 아니다. 화살을 당겨 사람의 눈을 쏘아 정확히 눈동자 앞에서 멈추게 할 수도 있다. 이른바 ‘눈동자에 도달해도 눈꺼풀을 깜박이지 않는(至 不睫)’의 경지다.

여권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허위·조작 보도를 막고 기사로 인한 재산상의 손해, 인격권 침해, 그 밖의 정신적 고통을 막기 위한 취지다. 언론사의 고의·중과실 기준을 처음으로 담았다. 헌법상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것이란 우려도 많지만 언론의 잘못된 행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상당하다.

가짜 뉴스와 악의적 보도로 인한 피해를 막으려는 취지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문제는 법을 통해 언론을 재단(裁斷)하려는 접근이다. 이미 형법상 명예훼손과 신용훼손죄로 가짜 뉴스 포괄적 처벌이 가능하다. 이번 개정안은 고의와 중과실의 기준으로 제목과 기사의 관계, 취재의 기사화 과정, 복제·인용 과정 등을 명시했다. 취재와 기사 작성 과정을 법적으로 살피겠다는 뜻이다. 개정안을 우려하는 가장 큰 이유는 손해배상이 아닌 편집권 침해 가능성이다. 고의와 중과실인 인정되면 징역형도 가능한 형법상 명예훼손과 신용훼손 적용 가능성도 커진다. 현행 언론중재법상 벌칙은 과태료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인신구속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셈이다. 사법권이 늘 옳고 공정하다면 문제가 없다. 공손룡이 말하는 활의 명인의 수준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는 못하다. 자칫 언론의 권력 감시 ‘고삐’를 사법부에 넘기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흰 옷을 입고 외출했다. 비가 오자 검은 옷으로 바꿔 입고 귀가했다. 개가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짖어댔다. 화가 난 주인이 개를 때리려 하자 이를 본 주인의 형이 말린다.

“그러지 마라. 나갈 때 흰 개였는데 돌아올 때 검은 개가 됐다면 너라도 괴이하게 여기지 않겠느냐.”

열자 ‘설부편(說符篇)’에 나오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가르침이다. 지금의 여당이 야당일 때는 권력을 비판하는 언론이 당연했는데 집권 후에는 그런 언론이 오히려 불편해졌을 수 있다. 지금의 야당이 여당이 됐을 때 언론이 권력을 비판하지 못한다면 야당이 될 지금의 여당은 괴이하게 여기지 않을까? 근본적으로는 대중의 평판이 생명인 언론이 스스로 잘못에 대해 부끄러움을 깨닫게 해야 한다. 바람직한 지배구조와 수익구조를 갖추도록 유도할 방법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법은 늘 최소한이어야 한다.

춘추시대 진(晉) 나라에 도둑이 늘자 포도(捕盜)의 달인인 극옹( 雍)을 채용한다. 도둑들은 극옹을 암살한다. 진나라 군주는 이후 민생을 안정시키는데 주력하고, 도둑질이 부끄러운 것임을 백성들에 가르치는 데 애를 썼다. 그제서야 도둑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잘못을 바로 잡으려면 현상보다는 근본적인 원인에 먼저 접근해야 한다.

kyhong@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