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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살없는 감옥” 하루하루 힘겨운 노년
‘고된 삶’ 고시원 독거노인들
1평 남짓 공간 TV·침대·옷...
한 켠엔 수북한 알약 봉지들
자녀 안부전화도 끊긴지 오래
고독 넘어 삶의 의지마저 상실
IoT센서 등 위험 대비 장치들
“소통 가능한 기술 지원 등 필요”
서울 도봉구의 한 고시원에서 만난 김용수(가명·91) 씨의 방. 김영철 수습기자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로 만나는 사람이 없어요. 가끔씩 전화하는 게 전부죠.”

복도 양쪽으로 방들이 5개씩 줄 지어선 서울시 도봉구의 한 고시원. 70대 이상 1인가구만 19명이라는 이곳에서 김용수(가명·91) 씨는 7년 째 거주하고 있다. 김씨는 “여기선 다 각개전투다. 코로나19에 걸릴 위험이 높아 사람들끼리 잘 접촉하지 않는다”며 “다들 자신만을 위해 살아서 서로 돕고 이런 건 없다”고 말했다.

김씨의 방은 침대 위에 오래된 텔레비전을 놓고, 그 위로 전구 불빛을 가릴 정도로 옷가지를 쌓아둬야 할 만큼 비좁았다. 김씨가 혼자 사용하는 공간은 1평 남짓이라 화장실과 샤워실 등을 이웃들과 함께 사용해야 했지만 그들과의 유대감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더군다나 올해 초 이곳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김씨는 더욱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헤럴드경제가 만난 노인 1인가구 3명은 외부 단절과 고독감이 가장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사회복지사 등 현장 종사자들은 이들이 고독사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우려하며 식사 등 기본적인 생활 지원뿐 아니라 심리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권유상(가명·70) 씨는 서울 중랑구의 다가구주택에서 올해로 28년째 혼자 살고 있다. 아내와 이혼한 뒤 일 년에 한 두 번씩 자녀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만남을 이어갔지만 이마저도 연락이 끊긴지 5년이 돼간다.

혼자 사는 생활이 길어지면서 권씨는 스스로 건강을 챙기기도 벅찼다. 권씨의 다섯 칸짜리 약 서랍에는 허리부터 심장, 폐 등을 위한 알약 봉지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아침, 저녁, 취침 전 등 하루에 세 번씩 약 60알 정도를 먹는다”며 “2년 전부터는 공황장애마저 앓고 있다”고 말했다.

권씨는 “내가 쓰러져서 못 일어나도 사람들은 알 수 없고, 알아도 오지 못할 텐데 불현듯 내게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걱정을 자주 한다”며 “내가 죽으면 가족이 나를 어떻게 수습할건지가 제일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권씨와 같은 고령의 1인가구들에게 위험이 닥칠 것을 대비한 장치들을 마련하기도 했다. 서울시는 권씨의 집을 비롯해 노인 1인가구 1만2254가구(6월 기준)에 사물인터넷(IoT) 센서를 마련하고 올해 말까지 1만2500대 설치를 마칠 계획이다.

IoT 센서는 노인이 자택에서 일정 시간 동안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는 등 이상 징후가 나타나면 생활지원사가 해당 가구에 연락하거나 방문하고 119에 신고하는 등의 조치로 이어지게 하는 장치다. 지난 2018년부터 지난 6월까지 IoT센서로 서울시에서 독거노인의 생명을 구한 사례가 총 83건 있었다.

그러나 이같은 장치가 노인들의 심리적 고독까지 막아줄 수는 없었다. IoT센서가 설치된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 사는 손유섭(91·가명) 씨는 15년 전 아내와 사별한 뒤 혼자 살고 있고 있다. 자녀와 매년 연락을 이어가고 있으나 부엌부터 거실까지 가득 붙은 아내와 자녀, 손자 등 가족들의 사진에서 손씨의 헛헛한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손씨는 지난해부터 지인들과 연락이 끊겼다. 일주일에 한 두 번씩 서울북부보훈지청에서 청소하러 오시는 아주머니가 유일한 방문객이다. 손씨는 “창살 없는 감옥이 따로 없다”며 “코로나 이전에는 6·25 참전 용사들끼리 버스를 빌려서 도봉산, 대모산 등 웬만한 산들을 모두 등정했는데 이젠 친구 한 명도 못 만나고 있다”고 말했다.

물리적인 도움에 일부 노인들은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씨는 “고맙지만 쓰러진 다음에 오면 무엇 하겠느냐”며 씁쓸하게 웃었다. 손씨도 “기계가 내 말벗이 되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내가 고독사 하는지 안하는지 그거 확인하려고 세워둔 거 아니냐”며 반문했다.

현장 종사자들은 독거노인들의 응급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이웃 간의 연대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박건우 강남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는 “내 주변에 누가 사는지, 이웃의 가족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는 사회적 분위기가 독거노인에게는 더욱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IoT센서에 대해 현장 종사자들은 양방향 소통이 되는, 이용자들 외로움을 줄여줄 수 있는 방향으로 디지털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박 사회복지사는 “어느 복지관이든 어르신들을 하나하나 찾아뵙기 어려울 정도로 인력이 부족할 것”이라며 “안부 확인이라도 주기적으로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김현미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장 역시 “단순히 기계를 통해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게 아닌 상호 소통이 가능한 기술적 지원이 필요하다”며 “가령 밥을 먹다가 소화 잘 안 돼 이를 말로 전해 복지관으로부터 소화제를 받는 식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기계적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라고 조언했다. 주소현 기자·김영철 수습기자

address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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