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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첼리스트·록밴드 ‘호피폴라’·북콘서트...“공감·위로의 음악, 모든 경계 넘어야죠”
클래식 대중화 ‘이정표’ 홍진호
새 앨범 ‘퓨리파이-라이브’ 발매
16일부터 ‘첼로탄츠’ 리사이틀도
첼리스트 홍진호 [크레디아 제공]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 가뿐해 보였다. “뭔가를 해내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가볍지만 무거운 마음’으로의 시도였다. “클래식 음악도 재밌고 좋을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고 한다. 2019년 JTBC ‘슈퍼밴드’에 등장한 첼리스트 홍진호. 클래식 음악가의 밴드 오디션 출연은 TV 앞 시청자에게도 낯설었다.

결과가 좋았다. 시청자들의 반응이 즉각적이었다. 홍진호가 멤버로 구성된 록밴드 호피폴라(Hoppipolla·아이슬란드어로 ‘물웅덩이에 뛰어들다’라는 의미)는 ‘슈퍼밴드’의 초대 우승자가 됐다. 최근 두 번째 시즌을 시작한 이 프로그램엔 콩쿠르를 방불케 할 만큼 많은 클래식 연주자들이 출사표를 던졌다. 새로운 길을 열어 젖힌 홍진호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에게 대중음악은 또 하나의 ‘물웅덩이’였을지도 모른다. 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 사이를 여유롭게 오가고, 거뜬하게 헤엄쳐 더 깊은 바다로 나아가는 홍진호(36)를 만났다.

‘슈퍼밴드’는 클래식 음악가 홍진호의 음악 인생에 이정표가 될 만한 사건이었다. 지난 3년 사이의 변화가 적지 않다.

“장르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 보니 삶의 방식, 음악을 대하는 태도, 작업하는 과정이 다르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클래식 분야에만 있을 땐 대중문화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은 적도 있었어요. 클래식을 고집해야 하고, 그 길을 잃으면 안 되고, 수도자의 길을 가는 것이 멋지고 이상적인 것이라 생각했었죠.”

첼리스트를 꿈꾼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 3악장을 듣고서다. “방 안을 꽝꽝 울리는 짐승 같은 소리”에 소년의 마음은 완전히 매료됐다. 그리곤 서울예고, 서울대를 거쳐 독일 뷔르츠부르크 국립음대 석사·최고연주자 과정을 밟은 ‘정통 클래식’의 길을 걸었다. 그의 음악적 방향이 완전히 달라진 것은 대중음악과 만나면서다. “공부하는 음악을 벗어나, 순수하게 즐기고 열정을 바치는 음악”, “모든 순간을 음악과 함께 하는 사람”들을 만난 것도 홍진호에겐 긍정적 변화를 가져왔다.

“클래식을 공부하는 동안엔 입시의 성공을 위한 음악을 하게 돼요. 이전까진 독주회를 한다 해도 사람들이 돈을 지불하고, 귀한 시간을 써서 오는 구조가 아니었어요. 어찌 보면 아마추어였고, 직업 음악인이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이전엔 작곡가로의 음악, 내 실력에만 집중했다면 이젠 제 음악을 들어주는 사람들에게로 방향이 확장됐어요. 내가 하는 음악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고민하게 된 거죠.”

치열한 경쟁의 연속, 콩쿠르를 통해 실력을 증명했던 시기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음악을 하고 있는 지금의 행보는 첼리스트 홍진호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성을 선명히 보여준다.

“여러 장르와의 협업을 시도하며, 생각의 한계를 넘어서는 과정도 필요했어요. 내가 어떤 음악을 할 수 있을까 늘 고민하게 되고요. 사실 넘나드는 과정도 순발력 있게 가능하지 않아요. (웃음) 넘나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는 넘나드는 사람이 아니라 탐구하고, 배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라는 명제, ‘크로스오버’의 시도는 이미 오랜 시간 다양한 연주자를 통해 이어왔다. 홍진호는 “윗 세대의 많은 선배들과 뛰어난 아티스트들이 이미 크로스오버를 시도했고, 클래식 대중화를 위해 활동해왔다”며 “인터넷 등 매체의 발달로 이제야 더 익숙해진 것이지 늘 공존해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정통 클래식 연주자인 홍진호는 다양한 장르와의 접점을 만들며 새로운 음악 세계를 보여주는 것은 물론 대중이 알지 못한 클래식 음악으로 레퍼토리를 확장하며 클래식 저변 확대에도 앞장서고 있다. [크레디아 제공]

다만 홍진호의 행보가 유달리 눈에 띄는 것은 기존 음악가들과 전혀 다른 길을 걷기 때문이다. 클래식 연주자로는 이례적으로 밴드 활동을 하며 음악 페스티벌, 방송 활동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고, 첼리스트 본연의 정체성도 성실히 보여주고 있다. 온라인 북콘서트 ‘진호의 책방’을 통해 다양한 장르와 협업하며 대중과의 접점도 넓혔다.

“클래식의 대중화라고 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민하는 것이 있어요. 비발디의 ‘사계’나 ‘사랑의 인사’처럼 대중에게 알려진 음악을 들려줘 친숙함이 들게 하는 방식이 있는데, 그것도 좋지만 처음 듣는 곡인데도 어렵지 않고 공감할 수 음악을 찾아 선보여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뻔한 클래식이 아니라 우리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음악으로 레퍼토리의 확장이 필요하다는 고민을 이어오고 있어요.”

클래식과 네오 클래식을 두루 담은 새 앨범 ‘퓨리파이-라이브(Purify-Live·13일 발매)’, 오는 16일(서울 노원문화예술회관)부터 이어갈 리사이틀 ‘첼로탄츠’(17일 광주문화예술회관, 2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7일 충남도청 문예회관) 공연은 그러한 고민에서 기획됐다.

독일어로 춤을 뜻하는 ‘탄츠(Tanz)’를 제목으로 붙인 이번 공연은 춤곡을 테마로 구성했다. 브람스의 ‘헝가리안 무곡’, 라벨의 ‘볼레로’ 등 춤곡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들을 비롯해 빌라-로보스의 ‘브라질풍 바흐’ 등 첼로 연주로는 많이 하지 않는 곡으로 레퍼토리를 구성했다. 첼리스트와 피아니스트가 함께 하는 전통적인 첼로 리사이틀의 구조를 깨고, 현악 사중주(스트링 콰르텟)와 클래식 기타(김진세), 재즈 피아니스트(조윤성 트리오)도 함께 한다. ‘슈퍼밴드’ 이후 높아진 인기는 공연과 음반을 준비하며 또 한 번 실감했다. 홍진호는 이번 음반 작업과 콘서트를 위해 텀블벅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다. 당초 1000만 원을 모금액으로 잡았지만 오픈 당일 이미 200% 이상 달성했다. 홍진호는 이번 ‘첼로 탄츠’ 공연은 “클래식이라고 예습하지 말고 느끼는 대로,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만나면 된다”고 말한다.

다양한 시도를 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은 음악가 홍진호의 정체성이다. “여러 장르와 만나면서 어떻게 하면 서로 어울릴 수 있을지 고민하게 돼요. 시도로만 끝나면, 자칫 산만한 첼리스트가 될 수도 있어요. 스스로 내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이 공연이고요.” 그 안에서 스스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클래식을 기반으로 장르의 확장을 이뤄가는 것이 그의 방향이다.

“장르간의 결합을 시도할 때도 서로가 잘하는 음악에 대한 존중이 바탕하면 그 안에서 새로운 것이 나오게 되더라고요. 제가 바라는 것은 첼로가 다른 장르에 흡수돼 어울리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경쟁하는 거예요. 음악 안에서 서로 돋보이며 공존한다면 좋겠어요.”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걷는 홍진호는 어느새 누군가의 이정표이자 롤모델로 자리한다. 그는 “책임감이 커지면서도 두려움이 있다”고 말한다. 시도하지 않는 길을 가는 만큼 홍진호는 걷는 곳마다 미지의 세계다. 따라갈 사람이 없기에 스스로 길잡이가 돼야 한다. 때문에 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열심히 채찍질을 하기도 한다.

“제가 정말 원하는 것은 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에요. 제 음악을 통해 때로는 공감하고, 때로는 카운셀러처럼 상담 받는 기분이 들고, 때로는 행복을 얻는다면 좋겠어요. 제 존재의 이유가 음악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음악이 모든 것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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