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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여성은 사회주의사회에서 더 나은 섹스를 하는가’외 신간

▶왜 여성은 사회주의사회에서 더 나은 섹스를 하는가(크리스틴 R. 고드시 지음, 김희연 옮김, 이학사)=독일 통일 전,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가장 최근의 데이트에서 만족감을 느꼈는지 묻는 질문에 동독 여성의 75퍼센트와 동독 남성의 74퍼센트가 그렇다고 답한 반면, 서독 남성은 84퍼센트, 서독여성은 46퍼센트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20여년간 자본주의화한 동유럽의 사회문화를 연구해온 저자는 자유시장이 여성의 삶에 불균형적으로 해를 끼치고 있음에 주목한다. 시장의 힘이 덜 미쳤던 과거 동독에서 여성은 더 행복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여성의 교육과 훈련을 지원하고 남성이 지배했던 직종을 여성에게 장려, 상위 정치 영역에 포진시켰으며 공공탁아소, 유치원, 세탁소를 구축, 가사노동과 양육의 사회화를 통해 여성을 이중고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주장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과거 국가사회주의로의 회귀를 강조하는 건 아니다. 규제받지 않는 자본주의를 손보고, 사회주의에서 몇몇 발상을 차용하자는 것이다. 제대로 이뤄지기만 한다면 사회주의는 우리를 경제적 독립, 더 나은 노동조건, 더 나은 일과 가정의 양립으로 이끌 것이고 더 나은 섹스로도 이끌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기 위해서 20세기 동유럽 국가사회주의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과거의 실수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도발적인 주장이긴 하지만 민주적 사회주의란 개념은 피케티가 주장하듯 양극화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기도 하다.

▶건축은 어떻게 전쟁을 기억하는가(이상미 지음, 인물과사상사)=‘결코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을 뜻하는 마지노선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침공을 막기 위해 20조 원을 들여 10여년간 지은 난공불락의 요새로 불렸지만, 독일군의 창의적인 저지선 돌파로 허망하게 무너졌다. ‘유럽의 만리장성’으로 불린 마지노선의 요새들은 지금 와인창고와 관광지로 쓰이고 있다. 전쟁의 참화에서 살아남은 건축물의 역사와 전쟁사를 아우른 책은 로마시대부터 냉전시대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러시아 등에 걸쳐 28개 건축물을 탐색한다. 베를린의 한복판에 자리잡은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는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기 위해 공습으로 부서진 종탑을 보수하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다. 독일 건축의 걸작으로 꼽히는 드레스덴 성모교회는 처참하게 파괴됐지만 시민들이 수집한 건물의 잔해를 모아 옛 모습을 기적적으로 되찾았다. 이탈리아의 유서깊은 몬테카시노수도원은 무려 5번 파괴되고 5번 재건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탄흔과 그을린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책에는 17세기 30년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는 하이델베르크성의 22만 리터 들이 술통을 비롯, 검투사들의 싸움터로만 알려진 콜로세움에서 모의해전을 치렀다든지 런던탑이 왜 빨간 양귀비로 장식되는지 등 건축물의 뒷얘기도 풍성하다.

▶날마다 만우절(윤성희 지음, 문학동네)=주변에 있을 법한 인물을 통해 따뜻한 공감을 불러온 작가 윤성희의 여섯번째 소설집. 2019년 김승옥문학상 대상 수상작 ‘어느 밤’을 비롯, 열한 편의 단편을 수록했다. 소설집의 전반부는 노년 여성 서사가 주를 이룬다. 소설의 문을 여는 ‘여름방학’의 나는 오래 근무하던 회사에서 막 잘린 상태로,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궁리한다. 오래 일한 자신을 위한 꽃다발 사기, 축하주 마시기, 이름바꾸기 등 위시리스트를 써내려간다. 그러던 차에 오래전 헤어진 연인에게서 연락이 오면서 이야기는 깊어진다. ‘남은 기억’의 나는 오랜 시간 연락이 끊겼던 영순으로부터 전화를 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영순의 부탁은 황당하다. 자신의 남편과 내연관계였던 여자와 남편의 회사에서 일하다 공금횡령을 했던 남자가 결혼해 국숫집을 차렸는데 대박이 났다며, 같이 가서 욕을 해달라는 것이다. 자신의 아들이 어렸을 때 장난감을 많이 사준 영순을 거절하지 못하고 함께 가면서 만나지 못했던 수십 년의 시간이 이야기들로 메워져 나간다. 노년이야기의 절정은 ‘어느 밤’에 나오는 킥보드 타는 할머니다. 아파트 놀이터에 세워진 분홍색 킥보드를 본 나는 바퀴의 불이 깜빡이는 걸 자신을 갖고 가라는 신호로 읽고 훔친다. 킥보드를 타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단지를 돌다보면 남편을 미워하는 마음도, 딸을 만나지 못하는 슬픔도, 어린시절 겪었던 아픔도 사라진다. 윤성희의 노년의 주인공들은 무기력하지 않다. 새로 이름을 짓고, 킥보드를 타며 의지껏 시간의 바퀴를 돌려본다. 이런 노년 서사가 나올 때가 됐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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