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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년에 100만원은 꼭 쓰세요”…4세대 실손 ‘병원쿠폰’ 되나
年 보험금 100만원 이상 할증
청구금 없어도 할인 혜택 미미
보험료 할인 보다 효용 더 커
비급여수가 부재가 근본 원인
업계 “실패할 운명” 한목소리

#. A씨는 서울 노원구 B정형외과를 틈 날 때면 방문한다. 명목은 도수 치료지만 실상은 1대 1 필라테스 수업을 받기 위해서다. 전문적인 필라테스기구도 있다. 주로 50분짜리 코스(도수 치료 30분+전기 치료 20분)를 이용한다. 병원이 A씨가 보유 중인 실손의료보험의 자기부담비율이 30%라는 점을 확인한 후 추천한 코스다.

병원은 “자기부담비율이 20%라면 90분짜리 코스를 권한다. 고객들의 선호도가 높다”고 귀띔했다. A씨 역시 만족스럽다. 전문 필라테스학원보다 1대 1 강의료가 저렴하기 때문이다.

이달부터 ‘과잉 의료 이용’을 막기 위한 4세대 실손보험 판매가 시작됐지만 여전히 ‘도덕적 해이’를 없애지는 못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4세대 실손보험은 과다 의료 이용으로 보험사 적자가 심화되고, 소비자 보험료 부담이 증가하자 정부가 내놓은 일종의 정책보험이다. 자기부담금은 높지만 기존 상품보다 보험료가 50~70% 저렴하다.

실손보험의 전체 지급 보험금 중 비급여 비중이 65%에 달한다. 이에 4세대 실손보험은 비급여 진료 이용량에 따라 5단계로 보험료를 할인·할증한다. 직전 1년간 비급여 보험금 지급액이 100만원이 넘으면 다음 연도 보험료가 최대 2배까지 할증된다. 150만~300만원은 3배, 300만원 이상은 4배 할증된다. 이같이 보험료 할증 대상자는 전체 가입자의 1.8%에 그칠 것으로 금융 당국은 추정했다.

문제는 받은 보험금이 100만원 미만일 때다. 1년간 보험금을 하나도 청구하지 않았다면 5%가량의 보험료 할인을 받을 수 있지만 금액으로 따져보면 미미하다. 40대 남성 기준 월보험료는 1만2000원으로, 5% 할인 받아도 고작 600원이다. 게다가 할인·할증은 통계 확보를 위해 2024년부터 적용된다.

A씨처럼 도수 치료로 둔갑한 필라테스를 선호하는 소비자 입장에선 100만원까지 쓰고 내년 보험료를 동결하는 게 합리적이다. 회당 도수 치료비가 10만원이라고 한다면 14회까진 받아도 문제 없다.

총 140만원이 들지만 보험금으로 98만원을 돌려받을 수 있다. A씨 입장에선 회당 3만원만 낸 셈이다. 필라테스 학원의 1대 1 수업료가 통상 5만~7만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훨씬 저렴하다.

그나마 불편한 게 있다면 도수 치료를 10회 받을 때마다 병적 완화 효과를 확인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병원에서 해주면 그만이다.

보험업계는 4세대 실손보험도 결국 비급여 관리에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데 입을 모은다.

업계 관계자는 “병원들이 이미 비급여를 통한 돈벌이에 적응한 만큼 4세대 실손보험에 맞는 치료 코스 역시 또 개발해낼 것”이라며 “해마다 1년째 되는 시점에 100만원 한도를 채우라는 식의 마케팅이 성행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도수 치료도 엄밀히 치료인데 증상이 아닌 보유한 실손보험상품에 따라 코스, 치료시간을 달리 처방하는 게 비정상적”이라며 “비급여 항목의 수가가 부재해 병원이 마음대로 가격을 결정할 수 있도록 방치한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정경수 기자

kwat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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