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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영미 시인의 심플라이프] 코로나 시대 ‘냉동열차’

며칠 전 전주에서 문학 강연이 있었다. 책기둥도서관에서 오전 10시30분에 시작하는 강의에 늦지 않으려고 아침에 먹을 고구마와 달걀을 그전날 밤에 쪄두고 새벽 5시30분에 자명종을 켜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젊었을 때는 아침끼니를 거르고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요즘엔, 코로나가 온 뒤에는 삼시 세끼를 챙겨먹는다. 코로나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 내가 얼마나 몸을 아꼈나. 피곤하지 않게 일정을 조정하고 허튼 약속을 삼가고, 장거리 이동을 자제했다. 감기에 걸릴 자유와 아플 권리를 나는 잃었다. 아침을 거르고 빈속에 강의를 해? 그러다 아프면, 그러다 코로나에 걸리면 큰일이니까 몸을 위해 미리 챙겨먹는다.

새벽에 일어나 차가운 고구마와 달걀 그리고 요구르트에 사과 반쪽과 귤 한 개를 먹고, 평소보다 든든하게 배를 채운 뒤 버스를 타고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 내렸다.

오전 7시45분 용산에서 떠나는 전주행 KTX를 타려면 DMC역에서 7시 전에 경의중앙선을 타야 하는데, 현재 시간이 궁금해 역사 앞을 두리번거렸는데 시계가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는 모든 기차역 역사 정문에 시계가 있지 않았나. 고개를 돌리기만 하면 웬만한 가게의 벽에 커다란 시계가 걸려 있었는데, 요즘엔 어디를 가도 시계가 보이지 않는다. 역사 안에 들어서니 2층에 둥근 시계가 보였다.

열차 안이 추웠다. 에어컨을 끄고 싶은데 사방을 둘러봐도 냉방 조절장치가 보이지 않아 ‘얼음지옥’에 갇혀 2시간을 떨었다. 나는 더위에는 강하나 추위에 약하다. 긴팔 재킷을 걸치고 긴 바지에 긴 양말을 신었는데도 한기가 느껴져 참다못해 좌석에서 일어나 통로로 나갔다. 바깥 공기가 들어와 덜 춥겠거니 기대했는데 웬걸, 여기도 에어컨이 싱싱 돌아가네. 아 대한민국, 언제부터 우리가 에어컨을 틀었다고 7월 복중도 아닌 6월에 새벽열차를 냉동칸으로 만드나? 석유 한 방울 나지 않으면서 기름 낭비가 심하다.

30도가 넘는 여름날에도 베를린의 버스는 에어컨을 틀지 않았다. 내가 갔던 유럽 대부분의 도시에는 아예 버스와 전차에 에어컨이 달려 있지 않았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막으려면 자주 환기하는 게 좋은데 열차 창문을 아예 열지도 못하게 만들었으니. 기계라면 환장하는 조선, 촌스러운 아시아에 사는 나를 탓할 수밖에. 1년 내내 대중교통에 에어컨을 돌리는 홍콩에 비하면 우리는 좀 나은 건가.

지구 온난화를 막자고 말만 하지 말고 실천을 하자. 우리 사회는 에너지를 절약하는 노력이 부족하다. 밤늦은 시각, 텅 빈 거리에 미친 듯 환하게 깜빡이는 전광판 네온사인들.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는 생활에너지 부족에 허덕일지도 모른다.

열차에도 에어컨을 틀지 않은 칸을 하나쯤 운영하면 좋겠다. 물론 창문은 열게 하시고. 지금 내가 사는 집에는 에어컨이 설치돼 있지 않다. 2013년 소설 ‘청동정원’을 잡지에 연재하던 여름, 마감에 쫒겨 글을 쓰며 땀을 닦는 시간을 아끼려 내 생애 처음 에어컨을 사기는 했다. 그해 여름에 잠깐 틀고 창고에 넣어둔 에어컨, 오래 쓰지 않아 지금 고장 났는지도 모르겠다. 외출할 때 숄을 가방에 넣고, 언제 소나기가 올지 모르니 양산 겸 우산도 챙겨넣고 땡볕을 걸을 때는 재킷을 벗어 넣을 보조가방이 필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내게 여름은 최악의 계절. 더워서가 아니라 추워서 여름이 괴롭다.

작가·이미출판사 대표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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