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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훈육 명분 아동학대 사회에 경종”...‘정인이 사건’ 공론화 선봉장 [피플 & 스토리-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
잇따른 신고에도 학대 인정않던 경찰
광범위한 정보 수집 제도개선 이끌어

학대 뉴스 보면 아파했던 평범한 사람
지인 연관 ‘울산 계모사건’ 계기로 바뀌어

‘자식=소유물’ 인식 사회통념이 문제
피해자 치명적 상처 정상적 삶 힘들어

가출 피해청소년에 ‘친정엄마사업’ 목표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 개선에도 박차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최근 서울 강남구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사무실에서 가진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서 “자식 잘되라고 때린다는 말 자체가 거짓말”이라고 지적했다. 박해묵 기자

“악마를 보았다.” 올 초 한국 사회에 충격을 던진 ‘정인이 사건’. 이 사건을 접한 많은 시민들은 이처럼 잔혹한 아동학대 사건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생후 16개월밖에 안 된 정인이는 양모의 학대로 인해 췌장이 끊어지고 복부에 피가 가득차 생을 마감했다. 양모가 거칠게 흔들고 미는 유모차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에 몸부림을 치는 정인이의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 동영상은 한국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처음부터 정인이 사건이 사회의 주목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경찰은 아동학대 신고를 받고 세 차례나 출동했지만,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학대를 인정하지 않았다. 아동학대전문기관(아보전)마저도 끝까지 정인이를 지키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정인이의 죽음에 경찰과 아보전도 공범이라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무관심 속에 묻힐 뻔했던 정인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이를 밝히는 데 선봉을 섰던 인물이 공혜정(53)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대아협) 대표다. 그는 양부모의 주변 지인들을 설득해 학대 정황을 수집했고, 경찰의 부실 수사를 규탄하며 아동학대 제도 개선을 이끌어 내는 데 힘을 보탰다.

그의 노력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 법원도 지난 14일 1심 선고에서 정인이 양모의 살인 혐의를 인정하며 무기징역이라는 중형을 선고했다. 시신 훼손이 이뤄지지 않은 아동학대 사건 중 처음으로 무기징역이 선고된 것이다. 징역 5년이 선고된 양부는 법정구속됐다..

정인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공 대표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공 대표는 “양부 역시 살인 공범으로 앞으로 있을 2심에서 반드시 양모와 마찬가지로 중형을 선고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계속해 정인이 사건의 진실 규명에 앞장설 것임을 전했다.

정인이 사건으로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봄날, 공 대표를 만났다.

공 대표는 아들과 딸을 기르는 평범한 ‘워킹맘’이었다. 그는 “뉴스에 아동학대 기사가 나와도 그냥 불쌍하다고만 느끼는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공 대표가 아동학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13년 발생한 ‘울산 계모 사건’이다. 소풍을 보내 달라는 초등학교 2학년 여아를 아이 부친의 동거녀가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이다.

동거녀 박모 씨는 아이의 소풍 가방에 2300원을 몰래 넣어 둔 뒤 도둑으로 몰아 아이를 폭행했다. 우리 나이로 아홉 살 된 아이의 갈비뼈 16개가 골절됐다. 박씨는 아이의 몸에 든 멍을 없앤다며 물을 채운 욕조에 아이를 넣었다. 그때까지도 아이는 살아 있었다. 결국 아이는 호흡곤란과 피하출혈로 의식을 잃고 욕조 속에서 숨졌다.

우연히도 사망한 아이의 친모가 공 대표의 지인이었다. 공 대표는 “법원에서 이 사건을 학대치사로 판단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얼마나 가혹해야 살해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며 “많은 아동학대가 이렇게 가볍게 다뤄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아동학대 문제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공 대표의 노력에 법원은 최종적으로 살인 혐의를 인정, 계모에게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이후 공 대표는 인터넷 카페를 개설해 본격적으로 아동학대 문제를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이 인터넷 카페가 지금의 대아협 뿌리다. 카페 회원이 점차 많아지고, 체계적인 대응 필요성이 생기면서 2018년 대아협을 설립했다.

공 대표는 아동학대를 위해 지내온 지난 8년간 이룬 가장 큰 성과로, 2013년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통과시킨 일을 꼽았다. 공 대표는 “2013년 12월 국회를 찾아가 특례법 통과를 요구했다. 회기 만료가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며 “매일 1인 시위를 하고 의원들에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문자메시지로 법안을 요구해 26일 만에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했다.

유교 사상의 영향으로 한국에서는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 때문에 아동학대에 대해 사회적 인식이 굉장히 관대했다. 자기 소유의 물건을 마음대로 다루는 것에 대해 문제삼지 않았던 셈이다.

아동학대를 다루는 법원의 판결에서도 그런 한국 사회의 분위기는 여실히 드러난다. 2019년 인천에서 5살 의붓아들의 손과 발을 묶고 둔기로 때려 숨지게 한 계부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되기도 했다. 2019년 전국에서 유죄가 인정된 아동학대 범죄 가운데 집행유예 선고가 96건으로, 실형 33건보다 3배가량 많았다.

공 대표는 “자식 잘되라고 때린다는 말 자체가 거짓말”이라며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해 아이를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부터 버려야 한다”고 일갈했다.

공 대표 역시 과거에는 ‘사랑의 매’라는 명목으로 자식들을 훈계할 때 매를 들고는 했다. 그는 “그때에는 그게 정상적인 훈육 방법이라고 교육하는 이들이 많았다”며 “지금 생각해보니 그들의 말은 틀렸다. 어떤 상황에서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사랑의 매 따위는 들지 않을 것”이라며 “그래도 바르게 자란 아이들에게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공 대표의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서울 강남구 대아협 사무실 앞. 한 중년 여성이 흐느끼고 있었다. 공 대표는 “아동학대 피해자인데 여전히 아동학대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운 사연을 전했다.

공 대표는 “많은 아동학대 피해자가 성인이 돼서도 어렸을 때 당했던 피해로 인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며 “어떤 피해자는 부부싸움을 하면 맞을 때까지 싸움을 키우기도 한다. 어릴 적 아버지에게 맞던 버릇에, 맞아야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동학대 피해자는 성인이 된 후 아동학대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공 대표는 “많은 아동학대 피해자가 자신도 모르게 훈육 방법을 자신이 받은 그대로 하게 된다”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아동학대 가해자는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훈육’이라는 명목 아래 자기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공 대표는 “가해자들은 처음에는 죄책감을 느끼곤 하지만 어느 순간 자기의 행동을 합리화시키고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며 “폭력을 가하는 가해자는 어떠한 이유를 찾아서라도 폭력을 가하며, 이 모든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한다”고 말했다.

대아협은 홈페이지나 카페 공지 글 어디에도 후원 계좌를 찾아볼 수 없다. 따로 연락을 취해 후원을 하고 싶다는 사람들에게만 후원을 받는다. 공공 예산도 받지 않는다. 공공 예산을 받으면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또 돈이 많아지면 아동학대 방지라는 협회의 순수성이 변질될 수 있다는 공 대표의 고집 때문이다.

공 대표는 “지난해 우리 협회 월 수익이 50만원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재정난에 시달렸지만, 그때에도 후원을 독려하거나 정부 예산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인터뷰 현장에 있던 대아협 간사도 “대표님이 고혈압이 있는데, 약값 18만원이 없어서 먹지 못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공 대표는 “그래도 정인이 사건 이후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 최근에는 후원이 많이 늘었다”며 “협회 일이 많이 힘들지만 그래도 숨쉴 수 있는 건 회원들 덕분”고 웃어 보였다.

많은 아동학대 피해 아동이 청소년이 되면, 학대를 피해 가출을 하곤 한다. 그렇게 가출한 아이들은 갈 곳이 없어 여성들의 경우 성매매 등 극단적인 길을 택하기도 한다. 그 중에는 어린 부모가 되는 아동들도 있다.

공 대표는 이런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피해 아동들의 ‘엄마’가 돼 주고 싶어한다. 그는 “아동학대를 피해 도망쳐 나온 아이들 중 일찍 아이를 갖게 된 아동들이 생각보다 많다”며 “이런 아동들을 위한 ‘친정엄마 사업’을 꼭 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공 대표는 “학대를 받은 아동들이 아이를 낳게 되면 영아 학대나 살인 등을 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양육에 도움을 주는 사회적 역할이 필요하다”며 친정엄마 사업을 하고 싶은 이유를 설명했다.

이와 관련,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교육센터도 준비 중이다. 공 대표는 “국내에는 아동학대 전문가가 너무 적다”며 “아동학대를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교사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을 내달 안으로 개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채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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