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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팬텀’은 곧 가면…표정관리 안 되는 나와 닮아” 이무일 감독
뮤지컬 ‘팬텀’ 심리와 감정 보여준 가면
여섯 개의 가면으로 ‘또 다른 얼굴’ 표현
“표정관리 안 되는 나와 닮아…”

한국 대중문화 특수분장 1.5세대
상업·순수미술 고민할 때 방향 제시한 ‘팬텀’
“나의 미술은 꿈을 꾸는 어른들을 위한 놀이”
뮤지컬 ‘팬텀’ 속 가면은 네 번째 시즌을 맞으며 대대적인 변화를 맞았다. 가장 달라진 점을 꼽자면, 팬텀의 얼굴을 과감하게 드러낸 ‘반가면’의 등장이다. 반가면의 크기는 4분의 1로 작아졌고, 규현 카이 등 팬텀을 맡은 배우들은 오른쪽 눈썹까지 얼굴을 드러낸다.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오페라 극장 지하를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가득 채운다. 화려한 날개 가면을 쓴 ‘팬텀’의 신비로운 목소리. 그의 시간을 방해하는 불청객이 등장하자, 팬텀의 얼굴이 달라진다. 방심한 순간, 가면 속 얼굴을 들켜버린 팬텀. 순식간에 ‘분노 가면’으로 바꿔쓰고 참을 수 없는 감정의 깊이를 고스란히 발산한다.

“모든 가면은 팬텀의 심리적인 상황이나 의상, 무대에 맞춰 디자인했어요.”

뮤지컬 ‘팬텀’은 천부적인 음악성을 지녔지만, 흉측한 얼굴 탓에 오페라 극장 지하에 유령처럼 숨어사는 팬텀(극중 이름 에릭)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어낸 작품이다. 팬텀에게 ‘가면’은 또 하나의 얼굴이다. 무대 위 팬텀은 관객에게 단 한 순간도 맨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의 모든 감정과 상황은 여섯 개의 가면으로 치환된다. 팬텀의 ‘또 다른 얼굴’을 만든 주인공은 이무일 가면 제작감독. 한창 공연 중인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이 감독을 만나 ‘팬텀’의 가면 이야기를 들어봤다.

뮤지컬 ‘팬텀’에서 가면은 흉측한 얼굴 탓에 오페라 극장 지하에 유령처럼 숨어사는 팬텀(극중 이름 에릭)의 심리와 상황을 드러내는 중요한 장치다. 가면을 만든 이무일 감독은 “‘팬텀’의 심리상태에 따라 가면이 바뀌는 설정이 표정관리가 잘 되지 않는 나와 비슷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팬텀’의 가면은 네 번째 시즌을 맞으며 대대적인 변화를 맞았다. “초연 때는 총 7개의 가면을 제작했는데, 극 상황에 맞춰 나가다 보니 재연 때부터 6개로 제작하게 됐어요.” 올해는 팬텀 역을 4명의 배우가 맡은 만큼 총 24개의 가면이 만들어졌다. 가장 달라진 점을 꼽자면, 팬텀의 얼굴을 과감하게 드러낸 ‘반가면’의 등장이다. “이번 시즌엔 기본 가면, 눈물 가면, 태양 가면이 반가면으로 제작됐어요. 보석 가면과 분노 가면도 디자인이 달라졌고요.” 반가면의 크기는 4분의 1로 작아졌고, 규현 카이 등 팬텀을 맡은 배우들은 오른쪽 눈썹까지 얼굴을 드러낸다.

가면은 저마다 용도가 다르다. “팬텀이 크리스틴처럼 가까운 인물과 있을 때는 반가면을 쓰고, 자신의 정체를 가려야 하는 상황에선 얼굴을 더 많이 가리는 가면을 써요.”

뮤지컬 ‘팬텀’에 등장하는 보석가면, 눈물가면, 태양가면, 날개가면, 분노가면, 기본가면(좌측 아래부터 시계방향) [이무일 감독 제공]

가장 많이 착용하는 반가면은 하얀색의 ‘기본 가면’이다. 팬텀이 크리스틴과 함께 ‘내 고향(Home)’, ‘넌 나의 음악’, ‘이렇게 그대 그의 품에’ 등 극의 주요 넘버(노래)를 부를 때 이 가면을 쓴다. 기본 반가면은 ‘사랑 가면’으로도 불린다. 팬텀과 크리스틴이 데이트를 하는 장면에서 쓰기 때문이다. 2막이 오르면 오페라 극장 지하를 벗어난 두 사람이 숲 속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크리스틴은 팬텀에게 가면을 벗어달라고 간청하며 ‘내 사랑’을 부른다. 팬텀의 얼굴 위 사랑 가면은 달달한 시간을 표현하지만, 이내 상황은 반전된다. 가면을 벗은 팬텀을 마주하자, 크리스틴은 기겁하고 도망쳐버린다. 분노한 팬텀의 얼굴은 일그러지며 눈물 범벅이 된다. 팬텀은 어느새 눈물 반가면을 쓰고 있다. “‘팬텀’의 심리상태에 따라 가면이 바뀌는 설정이 재밌더라고요. 표정관리가 잘 되지 않는 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팬텀’ 속 가면은 배우들의 얼굴에 맞게 본을 뜨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런 다음 얼굴 모형에 조각을 하고, 음각 틀을 만들어서 가면재질로 성형해 만든다. [이무일 감독 제공]

가면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가면 하나를 만들 때 보통 2주 정도 걸려요.” 가면 제작은 배우들의 얼굴 모형을 뜨는 일부터 시작한다. “사람마다 눈, 코, 입, 얼굴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먼저 얼굴 모형을 떠야 해요. 배우들은 실리콘과 비슷한 소재의 재료를 얼굴에 붙이고 30분 동안 꼼짝 없이 있어야 해요.” 그런 다음 조각을 하고, 음각 틀을 만들어 가면 재질로 성형한다. “배우의 얼굴에 제작을 하기 때문에 사이즈는 딱 맞게 만들어야 해요.” 날개 가면처럼 디자인이 복잡해지면 시간은 더 오래 걸린다. 날개를 만드는 데엔 이틀이 추가된다. 보석 가면은 일일이 손으로 보석을 붙인다. “한 땀 한 땀 수작업이죠. 손이 많이 가서 애착이 가기도 하고요. (웃음) 보석 가면은 보기에는 화려해 보이지만, 검은색 베이스 가면에 보석의 위치로 팬텀 얼굴 속의 흉측함을 표현했어요. 사실 가면을 썼을 때의 화려함 보다는 암울한 느낌이 나도록 제작된 가면이에요.”

모든 배우의 얼굴에 제작을 하기 때문에 사이즈는 딱 맞게 만들어져야 하고, 무엇보다 편안함과 안전이 생명이다. 이 감독은 “배우마다 얼굴이 다르고, 원하는 사항이 달라 가면 제작 후 현장에서도 작업하기도 하고, 수차례 재작업에 들어가기도 한다”고 말했다.[이무일 감독 제공]

뮤지컬 ‘팬텀’의 반가면 기본 스케치 [이무일 감독 제공]
완성된 기본 반가면 [이무일 감독 제공]

배우들이 얼굴에 착용하고, 무대 위에서 3시간의 러닝타임을 보내야 하는 만큼 제작에는 세심한 과정이 필요하다. 이 감독은 “편안함과 안전”을 강조했다. “배우마다 얼굴이 다르고, 원하는 사항이 달라요. 배우들의 얼굴에 편안하게 밀착하기 위해 현장에서도 작업을 하는 경우가 있어요. 가장 중요한 건 안전이에요. 혹시라도 부딪혀 깨지지 않아야 해요.” 가면 안쪽에 스펀지와 천을 대 부드러운 착용감을 준 것도 노하우다.

이무일 감독은 한국 대중문화계의 특수분장 1.5세대로 꼽힌다. 극영화 제작소에서 괴수 만드는 파트에서 시작한 일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차인표 이정재 주연의 영화 ‘알바트로스’(1996), 일본 영화 ‘벡터맨’(1997) 속 괴물을 만든 것을 계기로 특수분장에 손을 댔다. 이 감독은 스스로를 ‘생계형 미술학도’라고 말한다. “제게 미술은 꿈이자 생계였어요.” 상업미술을 하고 있기에 자신에게 ‘예술가’라는 수사를 붙이지 않는다. “클라이언트가 의뢰한 무언가를 만들고, 그들이 정한 디자인과 도면을 기반으로 작업하는 일이니까요.”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속 랑발 단두대 머리. 이무일 감독 작업물 [이무일 감독 제공]
드라마 ‘별순검’ 시즌2 속 이무일 감독 작업물 [이무일 감독 제공]
이무일 감독 작업물 [이무일 감독 제공]

석고와 실리콘을 구하기도 어려워 신발 밑창을 만드는 재료로 특수분장을 하던 때를 지나 컴퓨터그래픽(CG)이 사람의 손을 대신하게 될 무렵 그는 공연 쪽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아날로그가 남은 분야가 공연 쪽이라 자연스럽게 들어오게 됐어요.”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웃는 남자’, ‘마리 앙투아네트’ 등 지금까지 이무일 감독의 손을 가친 작품도 숱하다. 그에겐 배우들의 얼굴이 하얀 도화지이자, 반죽하지 않은 원형의 진흙이다.

“이 일을 시작하고 상업미술과 순수미술을 어떻게 혼합할지, 혼합을 해도 되는 것인지 의문과 혼란이 들 때가 있었어요. ‘팬텀’의 가면은 제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주고, 또 다른 미술을 꿈꾸는 계기가 됐어요.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인 가면처럼 저의 미술은 꿈을 꾸는 어른들을 위한 놀이가 아닐까 생각해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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