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임대료·향후 투자가치 고려
지식산업센터·공유오피스 등 넉넉
‘무신사’ ‘VC’ 등 신사옥 확장이전
성수동의 공유오피스 스파크플러스 성수2호점 |
서울 성수동이 새로운 ‘스타트업 클러스터’로 떠오르고 있다. 강남과 판교에 몰려있던 스타트업들이 최근 잇달아 성수동으로 이전하며 업계 지형도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스타트업의 성수동 이전 대열의 선두에는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반열에 오른 무신사(대표 조만호)가 있다. 무신사는 지난해 9월 공유오피스 스파크플러스 성수2호점(사진)에 입주했고, 성수동 일대에 841억원을 들여 부동산 투자를 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성수동이 최근 새로운 패션 메카로도 떠오르는 것을 감안해 ‘무신사 타운’을 조성하려는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인공지능(AI) 기반 동영상 후기 서비스를 운영하는 인덴트코퍼레이션(대표 윤태석)도 지난달 성수동 신사옥으로 확장 이전했다. 스타트업 밸리로 주목받고 있는 성수 에이원센터에 입주한 것. 크래프톤(대표 김창한)은 성수동에 신사옥 건립 용도로 650억원 규모의 부동산을 매입했다. 크래프톤은 판교의 크래프톤 타워와 서초역 인근 구 펍지 사옥, 대치동의 개발스튜디오 등으로 인력이 분산되어 있었으나, 최근 본사를 판교에서 서울로 옮기기로 정관을 개정했다. 대규모 개발자 채용을 진행하면서 사옥을 확충하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벤처캐피탈(VC)과 액셀러레이터(AC)도 성수동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아산나눔재단이 운영하는 창업지원센터 ‘마루180’에 있던 퓨처플레이(대표 류중희)는 이달 서울숲 인근 사옥으로 이전했다. 인원이 많아지면서 사무실을 두 곳으로 나눠 분산 운영해야 했던 비효율을 해소하기 위한 선택이다.
성수동이 스타트업 클러스터로 주목받는 배경에는 포화상태에 이른 강남, 판교의 사정이 있다. 사업 초기 단계 스타트업은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VC나 다른 스타트업과 유기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강남, 판교를 선호한다. 하지만 점프업 단계에 들어서면 사정이 달라진다. 기업 규모가 커져 넓은 사무실이 필요해지는데, 임대료나 건물의 포화 상태 등을 감안하면 테헤란로나 판교를 나오는게 낫다는 것이다.
판교는 IT벤처와 스타트업들이 빼곡히 자리를 잡으면서 건물마다 공실률이 0%일 정도로 사무실을 추가로 구하기 어렵다. ‘사무실 전쟁’이 치열해 건물주가 ‘면접’을 보고 입주 기업을 들일 정도다. 최근 판교에서 사무실을 옮긴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건물주가 VC처럼 회사의 성장 가능성을 따져묻는다. 임대료를 제대로 받을 수 있을 지 고려한다곤 하지만 황당했다”고 전했다.
반면 성수는 최근 공유오피스도 자리를 많이 잡은 데다, 성동구 내 70여개의 지식산업센터도 있어 사무실 전쟁에서 해방될 수 있는 선택지다. 임대료도 강남, 판교보다 합리적인 수준이다. 대중교통으로는 약 20여분만에 닿을 정도로 강남과 가까워, 강남으로 출근했던 직원들의 출퇴근 편의도 보장할 수 있다.
일찍부터 소셜벤처들이 다수 자리를 잡아, 스타트업 친화적인 분위기가 갖춰져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성동구가 소셜벤처 허브센터를 운영해왔고, 현대가(家) 3세인 정경선 대표가 창업한 루트임팩트 등 소셜벤처 생태계가 자리잡고 있다. 루트임팩트는 성수동에서 소셜벤처에 사무공간 등을 제공하는 ‘헤이그라운드’(사회적 기업에 사무공간 제공)를 운영하고 있다. 소셜벤처에 주력하는 VC인 소풍벤처스(대표 한상엽) 외에 차량공유업체 쏘카(대표 박재욱)와 VC인 DSC인베스트먼트(대표 윤건수) 등도 성수 스타트업 생태계를 뒷받침하고 있다.
여기에 ‘투자목적’도 숨기지 않는다. 좋은 인프라를 바탕으로 성수의 투자가치가 더 높아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특히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 이후 개발 기대감이 더 커졌다. 오 시장은 2007년 성수동 한강변 개발을 제안한 바 있다. 일찌감치 터를 잡으면 고급 주거·업무·문화 클러스터로 변모하는 성수의 가치 상승을 고스란히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도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