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버려져 서러운데…주민번호 없는 아이들 [유령아이 리포트]
〈2부 : 사랑받지도, 기록되지 못하는 아이들〉 ① 전국 보육원 실태조사

[일러스트=권해원 디자이너]

전국에 흩어진 아동복지시설 280여곳에는 1만600여명(2019년 말 기준)의 아이들이 산다. 보육원에서 지내는 아이들 대부분은 시설장의 도움을 받아 출생등록을 마친다. 하지만 주민등록번호 없이 살아가는 ‘유령아이’들도 존재한다. 낳아준 어른의 복잡한 이유의 ‘덫’에 붙잡혀 등록되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사랑받으며 자라지 못하는 것도 서로운데 존재마저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셈이다.

헤럴드경제는 보편적출생신고 네트워크(UBR Network)와 협업해 지난 3월 초부터 전국 251개 아동복지시설(아동양육시설·아동일시보호시설·아동보호치료시설·자립지원시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설문의 핵심 문항은 최근 2년(2019년~2020년) 사이에 각 시설에서 출생신고가 안 된 상태의 아이가 있었는지다. 246개 시설(5곳은 미응답)에서 총 146명의 아동이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그래픽=권해원 디자이너]

이는 앞서 헤럴드경제가 전국 229개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정보공개청구를 진행해 확인한 2019~2020년 ‘미등록 아동’ 숫자(308명)보다는 적다. 설문조사를 아동복지시설을 대상으로만 진행했기 때문이다. 사망했거나 원가정으로 복귀한 아이들, 집단생활을 하는 보육원이 아닌 친인척·그룹홈·위탁가정 등에서 지내는 아이들의 숫자는 빠졌다. 그야말로 오갈 데 없어져 갓난아이 시절부터 아동복지시설에 맡겨졌으나, 출생이 기록되지 못해 정부의 보호체계 밖으로 내쳐진 아이들이다.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돼야 하며 출생 시부터 이름을 갖고, 국적을 취득하며, 가능한 부모를 알고, 부모에게 양육 받아야 한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명시된 아동의 권리다. 보육원의 ‘유령아이’들에겐 사치스러운 이야기다.

[그래픽=권해원 디자이너]
보육원 유령아이 평균 0.77세…서울에 가장 많다

아동양육시설에서 발견된 출생 미등록 아동은 2019년 74명, 2020년 72명이었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 소재 시설에 63명(전체의 43%)의 유령아이가 있었다. 충남(20명), 부산(14명), 경기도(13명) 등의 지역이 뒤를 이었다.

미등록된 아동의 평균 연령은 0.77세(9개월)로, 전체의 70.5% 가량인 103명의 아이들이 태어난 지 1년도 안 된 상태였다. 초등학교 취학을 앞둔 6살에 이르러서도 출생신고를 하지 못한 아동도 6명이 있었다. 이들은 정부 행정시스템에 이름이 새겨지지 않았다. 의무교육은 물론 의료보험, 사회복지 등 다양한 공적 체계에서 원칙적으로 배제됐다.

[그래픽=권해원 디자이너]

김희진 국제아동인권센터 변호사는 “지자체는 긴급 복지가 필요한 아동에게 사회복지 전산관리번호를 부여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이번 조사에서 다수 아동복지시설은 ‘영유아에게 필요한 발달검사의 경우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해 (기관이) 사비를 지출한 후 출생신고가 완료되면 비용을 돌려받고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어쩌다 보육원에서 지내게 됐을까. 110명은 베이비박스(서울 관악·경기 군포·부산 등)에 유기된 아이들이다.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과 경찰이 발견한 아동은 각각 12명( 8.2%), 5명(3.4%)이었다. 지자체가 직권 인지한 아동은 10명(6.8%)이다.

[그래픽=권해원 디자이너]
버려진 아이가 대부분

설문조사에서는 아이들이 제때 출생신고되지 못한 이유도 물었다. ▷기아(베이비박스) ▷기아(베이비박스 외) ▷미혼모 ▷미혼부 ▷혼인 외 출생 ▷이주아동(미등록) ▷이주아동(미등록·난민 외) ▷병원 외 출생 ▷기타 등 9가지로 분류(중복응답)했다.

이 가운데 베이비박스에 유기돼 ‘기아’(생부모를 알 수 없는 버려진 아동)인 이유가 110건(68.8%)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혼인 외 출생(14명, 8.8%), 미혼모(6명, 3.8%), 병원 외 출생(5명, 3.1%), 미등록이주아동(5건, 3.1%), 미혼부(3명, 1.9%) 순으로 집계됐다. 가정사, 친모의 출생신고 회피, 학대 피해 아동, 부모의 수감 등의 이유는 ‘기타’로 분류했다.

[그래픽=권해원 디자이너]

헤럴드경제와 UBR네트워크가 파악한 아동복지시설의 미등록 아동(146명) 가운데 올 지난달 기준 출생신고를 마친 아동은 118명(80.8%)이다. 여전히 미등록 상태였던 28명 가운데 16명은 출생신고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남은 12명은 원가정으로 돌아갔는데, 부모가 출생신고를 했는지는 파악할 수 없었다.

“출생신고 어려워” 호소하는 보육원…정부·지자체는 불구경

시설에 사는 아이들은 통상 시설장 법정후견인 자격을 얻어 출생신고 절차를 진행한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아이의 부모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어야만 시설장이 나설 수 있다. 설문조사 응답한 전국의 시설 가운데 33곳(67.3%)이 ‘출생신고 과정이 어렵다’고 응답했다. 만약 엄마를 찾아냈지만, 양육 의지가 없고 출생신고도 거부한다면 시설로서는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경북에서 발견된 생후 4개월 아이가 대표적이다. 친부모는 아이를 지인에 맡기고 잠적했다. 지인은 경찰에 신고했고 아이는 보육원으로 보내졌다. 지난 3월 시청 담당자는 친모를 찾아냈고 출생신고를 권유했다. 하지만 친모는 “전 남편과의 이혼 소송 과정에서 혼외 자녀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불리할 수 있다”며 거절했다. 현재 보육원 쪽은 ‘아동복지법상 방임 혐의’로 검찰에 친모를 고발한 상태다. 아이의 출생신고가 언제 이뤄질진 기약이 없다.

한 초등학교 입합식의 모습.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연합]

현장 실무자들은 ‘미등록 아동을 관리하는 통합관리 체계의 부재’도 문제점으로 꼽는다. 법무부, 보건복지부, 행정안전부와 각 지자체 등이 아동의 출생신고 문제에 관여하지만 주무관청이 불분명하고 통합관리를 위한 협업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강원도 아동보호전문기관의 한 사례 관리 담당자는 “미등록 아동이 학대로 신고될 경우, 공공기관 내 아동의 미등록 정보를 입력하는 시스템이 없다”며 “출생신고는 어떤 법률과 내용을 참고해서 어떤 기관에 요청해야 하는지 정확한 정보를 찾기가 어렵다”고 목소릴 높였다.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에는 부모가 정해진 기한 내에 출생신고를 피하거나 못해 아이의 복리가 위태롭다면 검사나 지자체장이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46조)고 규정한다. 하지만 현실에선 드문 일이다. UBR 네트워크가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정보공개청구한 결과를 보면 2019~2020년 사이 지자체장이 직권으로 출생신고를 낸 경우는 하나도 없다.

성유진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변호사는 “전국적으로 지자체장이 나서서 출생신고를 한 사례가 적다 보니 담당 공무원이 어떤 절차를 통해 어떻게 결재를 받아야 하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검찰에서도 해당 규정을 ‘친모가 사건의 피의자가 돼야 검사 직권으로 출생신고가 가능하다’고 오인해 친모를 고발하라고 안내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nyang@heraldcorp.com

dodo@heraldcorp.com

궁금했습니다. 왜 출생 사실이 기록되지 않은 아이들이 끊임없이 등장할까. 출생신고는 하나의 행정적 절차이지만, 동시에 세상에 난 존재가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누릴 아동의 권리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 최소의 권리에서 비껴난 아이들은 존재합니다. 우린 그들을 ‘유령아이’, ‘투명아동’, ‘그림자 아이들’ 이라고 부릅니다.
헤럴드경제는 전국 곳곳에서 발견된 출생 미등록 아동의 사례를 수집했습니다. 온통 ‘어른들의 이유’들로 아이의 출생신고는 미뤄지거나 무시된 걸 확인했습니다. 취재팀은 개별 사례의 특수성에 매몰되기보다는, 보편적인 배경과 제도적 모순을 발견하려 애썼습니다. 그간의 취재 결과를 바탕으로 4부에 걸쳐 ‘아이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 기획보도는 ‘누락 없는 출생등록, 모든 아동의 출생등록’을 목표로 활동하는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UBR Network)와 함께 조사하고,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합니다.

헤럴드 디지털콘텐츠국 기획취재팀

기획·취재=박준규·박로명 기자

일러스트·그래픽=권해원 디자이너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