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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시사]법과 절차는 공정하게 적용해야 한다

사법개혁, 검찰개혁은 워낙 오래 전부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주된 국정과제로 다룬 탓에 이제는 구체적으로 단일한 정의를 내리기도 어려울 정도에 이르렀다. 그러나 평범한 시민 시각에서 원하는 개혁의 방향은 분명히 있다. 예컨대, 동일한 사건에 대해 A판사가 재판을 하든, B판사가 재판을 하든 모두 헌법과 법률, 그리고 판사의 직업적 양심에 따라 공정한 재판이 이뤄지고, 고관대작이든, 일반 시민이든 동일한 법적 절차에 따라 사건이 진행돼야 하며, 권력에 관련된 사건일수록 더욱더 엄중하게 다뤄야 한다는 것은 시민의 원하는 최소한의 요구사항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몹시 유감스럽게도 최근 법조계에서 벌어지는 몇몇 주요 사건을 들여다보면 시민이 원하는 개혁의 방향과 동떨어진 일들이 빈번히 벌어지고 있다.

현 정권이 검찰개혁의 기치 아래 강력하게 추진했던 공수처의 경우를 보자.

김진욱 공수처장이 ‘김학의 불법 출국 금지’ 사건의 피의자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관용차에 태워 청사로 들인 뒤 조사한 사실이 알려졌다. 수사기관장이 피의자를 관용차에 태워 관사에 오게 한 경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에 재직할 때 이재용 삼성 부회장을 관용차에 태워 조사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당장 법무부가 징계했을 것이다. 더욱이 김 처장은 이 지검장을 조사했다고 하면서도 아무런 조서를 남기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나눈 것이었을까.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 엄중한 수사를 하라고 도입한 것이 공수처였는데, 첫 단추부터 공정성이 심하게 훼손됐다.

이성윤 지검장도 마찬가지다. 현재 피의자 신분인 이 지검장은 무려 4번이나 검찰의 소환에 불응했다고 전해진다. 평범한 시민은 검찰에서 소환 통보가 오면 생업을 뒤로하고 곧바로 소환에 응한다. 형사법에는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체포영장에 의한 체포가 가능하도록 돼 있다. 과연 검찰은 유력한 검찰총장 후보인 이 지검장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한편 박범계 법무부장관은 ‘김학의 불법 출국 금지’ 검찰 수사 상황이 언론에 유출된 경위를 따져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 장관은 한명숙 전 총리 사건 감찰 내용 일부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개한 임은정 부장검사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넘어갔다. 정권에 불리한 내용이 알려지면 ‘피의 사실 공표’이고, 정권에 유리한 내용이 알려지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 것인가?

법원도 오해를 살 만한 모습을 보였다.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으로 송철호 울산시장 등 13명이 기소된 것은 지난해 1월 29일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1년이 한참 지난 현재까지 공판 준비기일만 여러 차례 진행됐을 뿐, 단 한 번도 공판(재판)이 열리지 않았다. 덕분에 이 사건은 국민에게 점차 잊히고 있다. 소설가 정을병 선생은 단편소설 ‘육조지’에서 판사는 미뤄 조진다고 썼는데, 이 사건은 미뤄 뭉개기를 한 셈이다. 이 사건을 맡고 있는 김미리 부장판사에 대해 대법원은 ‘한 법원에서 3년 근무’라는 인사 원칙을 깨고 4년째 유임시켰다. 재판을 하다 보면 법관인사로 인해 재판부가 바뀌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의 경우는 다른 판사가 재판을 맡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메시지를 준 것이다. 부연하면 김 부장판사는 ‘웅동학원 채용 비리’ 주범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동생을 공범들보다 낮은 형량을 선고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앞서 언급한 사건들을 접한 국민은 법과 절차가 누군가에는 특혜를 주는 방향으로 적용되거나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특권 계급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불신의 늪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잘못한 사람은 책임지고, 법과 절차를 원칙대로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적용하면 된다. 더 늦기 전에.

김한규 전 서울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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