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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인데 영국 아닌 ‘북아일랜드’…브렉시트 후폭풍은 이제 시작
북아일랜드 곳곳서 폭력 시위…정치권 “깊은 우려”
아일랜드 쪽 장벽 피하려다 英 본토와 국경 만들어져
브렉시트, 해묵은 ‘연방주의 vs 민족주의’ 갈등에 기름 끼얹어
[게티이미지, 123rf]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지난해 말 유럽연합(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서 탈퇴하며 실질적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를 단행한 영국에서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아일랜드와의 통일을 원하는 북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의 반발을 피하기 위해 아일랜드와 영국령 북아일랜드 간 국경에 엄격한 통행·통관 절차를 적용하는 ‘하드 보더(hard border)’ 사태를 피하려다 오히려 영국 내 잔류를 요구하는 북아일랜드 연방주의자들의 극렬한 저항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며칠째 이어진 연방주의자들의 폭력 시위가 문제의 끝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1998년 ‘굿프라이데이협정(벨파스트 평화협정)’ 이후 잠잠해진 북아일랜드 문제가 브렉시트로 다시 전면 대두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북아일랜드 곳곳서 폭력 시위…정치권 “깊은 우려”

로이터 통신과 영국 일간 가디언, BBC 방송 등에 따르면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와 런던데리 등 주요 도시에서는 연방주의자들이 주도한 폭력 시위가 수일간 이어졌다.

시위대는 벨파스트 서부 ‘평화의 벽’ 인근에서 운행 중인 버스에 화염병을 던져 불을 내기도 하고, 경찰과 취재하던 사진기자를 공격하기도 했다.

평화의 벽은 연방주의자(신교)와 민족주의자(구교) 간 충돌을 막고자 북아일랜드 곳곳에 설치된 장벽을 말한다.

지난 7일(현지시간)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영국 내 잔류를 요구하는 연방주의자 시위대가 불을 지르는 등 폭력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폭력행위에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시위대가 경찰관과 언론인, 버스기사 등을 공격한 것을 특히 우려한다”면서 “차이는 대화로 해결해야지 폭력이나 범죄로 해결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알린 포스터 북아일랜드 자치 정부 수반도 “어떤 폭력도 정당화될 수 없다”라면서 폭력행위 중단을 촉구했다.

연방주의 정당인 민주연합당(DUP)과 민족주의 정당인 신페인(Sinn Fein)당 역시 시위대의 폭력을 비난했다.

아일랜드 쪽 장벽 피하려다 英 본토와 국경 만들어져

로이터는 이번 폭력 시위가 브렉시트로 인해 영국 본토와 북아일랜드 간에 ‘무역 장벽’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연방주의자 사이에서 커지는 가운데 벌어졌다고 전했다.

지난해 말 영국이 실질적 브렉시트를 완료하는 과정에서 EU 탈퇴 협정에 포함된 ‘북아일랜드 협약(Northern Ireland Protocol)’에 따라 북아일랜드가 EU 단일시장에 계속 남게 되면서, 오히려 같은 국가인 영국 본토와 북아일랜드 사이에 ‘무역 장벽’이 만들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

북아일랜드 협약에 따라 영국과 EU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아일랜드와 영국령 북아일랜드 간에는 엄격한 통행·통관 절차를 적용하는 ‘하드 보더(hard border)’를 피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에 따라 EU 관세 동맹에서 탈퇴한 영국 본토에서 EU 관세 동맹에 잔류한 북아일랜드로 상품이 건너갈 때 기존에 없던 통관과 검역 절차가 적용되게 됐다. 같은 국가 내 물류 이동임에도 다른 국가로 이동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익스프레스]

실제 올해 초 북아일랜드 주요 상점에서는 영국 본토에서 제때 신선 제품 등이 건너오지 못하며 품귀 현상이 벌어지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영국 스카이 뉴스는 “북아일랜드·아일랜드 국경 통제가 엄격해졌을 때 민족주의자 쪽이 폭력행위를 벌일 것이라고 우려하는 이들은 많았지만, 연방주의자들이 폭력행위를 벌일 것으로 생각한 이들은 적었다”라고 설명했다.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연방주의자들은 북아일랜드와 영국 본토를 나누는 무역 장벽이 비록 경제적인 영향력만을 미치는 것이지만, 상징적으로 ‘국경선’이 그어지는 것에 맹렬히 반대해왔다”고 덧붙였다.

브렉시트, 해묵은 ‘연방주의 vs 민족주의’ 갈등에 기름 끼얹어

전문가들은 이번 폭력 시위가 단순히 브렉시트만으로 유발된 것이 아니라고 분석하고 있다.

해묵은 북아일랜드 내 연방주의자와 민족주의자 간의 갈등에 브렉시트가 불을 붙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폭력 시위를 주도한 시위대는 시위 과정에서 지난해 신페인당 당원들이 장례식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제한 조치를 위반했음에도 경찰이 이를 처벌하지 않은데 대해서도 분노했다.

1998년 ‘굿프라이데이협정(벨파스트 평화협정)’ 합의에 참가한 사람들의 서명이 담긴 협정문 표지의 모습. [가디언]

과거 내전 상태로까지 격화됐던 북아일랜드 내 신·구교 주민 간 갈등이 어떻게 봉합됐는지에 대한 기억이 없는 젊은 층이 종교적, 민족적 감정을 바탕으로 상대 진영에 대한 분노를 적극적으로 표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스카이 뉴스는 “이번 시위에 참여한 젊은 층 다수가 1998년 벨파스트 평화협정 이후 태어났다”고 전했다.

당시 평화협정에 영국 정부 수석 협상가로 참가했던 조너선 파월은 브렉시트로 23년 전 협상에서 합의된 미묘한 이해의 균형이 흔들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벨파스트 평화협정을 통해 민족주의자들은 EU 관세동맹을 통해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를 가로막고 있던 국경을 걷어냈고, 연방주의자들은 영국과의 정치적 결합을 유지할 수 있었다”며 “브렉시트 후 북아일랜드가 EU 관세동맹에 잔류하면서 양측이 얻는 이익의 균형이 무너졌다. 연방주의자들이 희생을 치르고 있다는 의식이 강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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