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레마을엔 지천으로 ‘노란동백’ 반겨
김유정역은 ‘사랑의 완성’ 테마파크로
호변조각공원 애니박물관엔 ‘태권브이’
한마을 150명 ‘박사마을’ 별밤 글램핑
구봉산카페·해피초원목장은 뜨는 명소
부귀리 벚꽃길 |
‘억센 처녀마저 눈빛과 목소리가 촉촉해지게 만드는 곳’(시인 오정희), ‘오월의 내 사랑이 숨 쉬는 곳’(가수 김현철 ‘춘천가는 기차’)
봄 춘(春), 내 천(川), 춘천은 사계절 봄이다. 수필가 유안진이 “춘천은 가을도 봄이다”고 했으니, 가을도 춘천 차지. 여름엔 대한민국 ‘썸, 추억 1번지’ 답게 몰려드는 청춘(靑春) 때문에 그렇고, 겨울엔 전방 군인들을 응원하기 위해 중간거점인 이곳에 봄볕 같은 온정과 ‘곰신’들이 몰려든다.
‘봄 고을’춘천의 진짜 봄은 어떤 형용사로 그릴 지 고민이다.
▶부귀리 S라인 벚꽃, 휠체어 태우는 킹카누=비가 덜 와도, 얼었던 산악의 봄물이 쏟아내려, 소양강·북한강이 모이는 춘천의 봄내(春川)는 넉넉하다. 봉화산 옆 부귀리 S라인 벚꽃길은 연중 가장 화려한 순간을 맞고 있지만 들킬 새라, 숨어있다.
“느 아버지가 고자라지?” ‘둥근 네모’ 같은 김유정(1908~1937)작가의 모순 개그가 여전히 유효한 실레마을엔 서울의 궁궐에서나 볼수 있는 노란 동백(생강나무꽃)이 지천이다.
의암호와 소양강이 만나는 지점, 물레킬 킹카누는 이제 휠체어 까지 태워, 장애인, 어르신들의 봄 미소를 역대 최고로 밝혀놓았다. 호변 조각공원까지 낀 애니메이션박물관-로봇전시관엔 아이 보다 어른들이 더 좋아하는 로봇태권브이(1976년생)가 우뚝 서, 춘천식 추억 소환의 깊이를 20대, 10대는 물론, 유치원 때 까지로 빠져들게 한다.
소양강 처녀 동상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노라면, ‘아 그리워도 애만 태우는’ 그 가슴시린 감성이 여행자에게 빙의한다. 그래서 춘천의 봄은 그곳을 떠나고서도 조강지처의 살 냄새 처럼 지워지지 않는, 감성의 낙인이 된다.
소양강처녀 |
▶에티오피아-소양강처녀상-애니박물관 호변하이킹=춘천역에 내리면 요일별로 코스가 다르고 오는 4월부터 방문지가 풍요로워지는 시티투어버스가 기다린다. 6000원을 내면, 문화상품권과 손소독제 등 비슷한 가액을 돌려준다. 춘천사람들이 이렇게 몇 천원으로 여행자의 마음을 홀딱 가져가버리니, 시티투어를 마친 이방인들은 일제히 돈 쓰러 명동 닭갈비, 구봉카페거리, 샘밭장터, 신북 막국수거리, 효자동 낭만골목, 춘천중앙시장 등지로 2차 여행을 떠났다.
소양강에는 처녀상, 국내 최장 유리다리 174m 스카이워크, 조만간 미디어파사드 빛 예술을 선보일 소양2교, 에티오피아 참전기념관이 있다. 에피오피아는 한국전쟁때 파병 6037명, 전사 123명, 부상 536명, 포로는 한명도 없을 정도로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워줬고, 코로나 국경봉쇄때 아프리카 대륙에 발 묶인 우리 교민들을 아디스아바바로 모아 안전 귀국시켜줬다.
국민가요 때문인지 12m높이의 ‘소양강 처녀’ 동상 앞에서 누구든 가슴이 뛴다. 해 진 뒤 조명등이 켜지면 아름다운 춘천 야경의 랜드마크가 된다. 반야월 작가가 1967년 3월, 1968년 6월 춘천 방문 때 만난, 노을 속 노 젓던 고3학생, 자신의 춘천여행때 동행한 작가회 알바생(춘천 출신)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소양강 처녀상은 순수한 춘천 사람들을, 강 한복판 18m 높이 쏘가리상은 춘천의 청정생태을 상징한다.
소양강과 북한강과 만나는 지점은 공지천이다. 이곳에서 자전거를 빌려 스카이워크-소양교-첨단문화산업단지-애니메이션박물관 등 소양호 주변을 한바퀴 돌아도 되겠다. 에티오피아의 집에서 아라비카 커피 한 잔 마시는 건 필수다.
김유정 문학촌 전시관 앞 노란동백꽃 |
▶한 마을 박사 150명, 볓이 빛나는 글램핑=조금만 남쪽으로 가면 송암동 의암호 카누·킹카누 나루터를 만난다. 정부, 한국관광공사, 춘천시가 카누에 휠체어 까지 태워 장애인, 노약자까지 의암호를 물 위에서 유람하도록 했다. 누구든 장애 없이 춘천을 즐기도록 하려는 배려가 돋보인다. 인근엔 학자출신 의병장 유인석 기념관, 밤별들이 쏟아져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가족단위 야영장 ‘박사마을 어린이 글램핑장’도 있다.
올 가을 국내 최장 길이가 될 3.6㎞의 의암호~붕어섬~삼학산 의암호케이블카가 완공되면 하늘에서 멋진 호반의 도시를 감상하게 된다.
이곳에 차로 10여분 남쪽으로 가면 금병산 아래 소설가 김유정의 고향 실레마을에 이른다. 신동면 증리 김유정 문학촌에선 그의 단편소설 30여편 중 12편이 이 마을 실존인물들의 에피소드로 탄생했음을 알수 있다.
‘동백꽃’의 산기슭, ‘만무방’의 노름터, ‘봄봄’의 봉필영감의 집, ‘산골나그네’의 덕돌네 주막터가 바로 소설 배경이다. 물레방아는 강원도 출신 이효석의 소설에선 ‘기막힌 밤’ 러브 핫플레이스인데 비해, 김유정의 소설 속에선 병든 남편 치료비를 마련하려 타인에게 위장결혼한 여인이 남편을 숨겨둔 장소로 기능한다.
▶김유정 희대의 짝사랑 2건, 금사빠였나=문학촌 내엔 초당정자와 연못을 지어 여행자들이 쉬도록 했다. 노랑동백꽃은 많은 꽃잎이 뭉실뭉실 붙어 아름답고, 열매는 짜서 헤어뷰티 테라피(동백기름)로 쓰며, 잎은 튀각이나 차(茶)로 먹는다.
연희전문에 다니던 김유정이 낙향, 금병의숙을 열어 농촌계몽에만 매진한 데에는, 퇴학의 이유였던 병마 외에 실연(失戀)도 한 원인이었다. 어머니를 닮았다는 이유로 명창 박록주에게 열렬히 구애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다. 김유정은 소설 ‘두꺼비’에 “어디 사람이 동이 났다고, 거리에서 한번 흘깃 스쳐본, 쭈그렁 밤송이 같은 기생에게 정신이 팔린 나도 나렸다. 저쪽에선 나의 존재를 그리 대단히 여겨주지 않으려는데, 나만 몸이 달아서 답을 못받는 엽서를 매일 같이 석달동안 썼다”고 아픈 추억을 기록해뒀다.
1936년 5월호 잡지 ‘여성’에 공동 주제로 김유정과 나란히 글을 실었던 문인 박봉자도 짝사랑 상대였다. 김유정은 ‘금사빠’였을까. 어쨌든 구애에 대한 답은 없었고, 한달 뒤 다른 이와 결혼했다는 소식만 날아왔다. 독신으로 아쉽게 요절한 그는 화장해 묘가 없다. 그 대신, 김유정역은 초대형 예물 다이아몬드, ‘우리 오늘 결혼했어요’라는 조형물로 사랑이 완성을 뜻하는 테마파크로 꾸몄다. 이곳은 나훈아의 ‘강촌에 살고싶네’ 배경지, 강촌 가는 레일바이크 기점이다.
해피초원목장 |
▶해피초원, 구봉산카페거리 새 명소=춘천의 매력은 워낙 많은데, 특이하거나 생소한 곳만 들어보자. 남산면 강아지숲 테마파크는 반려견을 가진 가족들에게 제대로 된 반려문화를 체험할 기회를 준다. 춘천 시내 북쪽 고슴도치섬 옆에는 인형극·판토마임 세계대회를 연 도시 답게 국내유일의 인형극장·박물관이 있다. 레포츠, 캠핑, 휴양을 즐기는 국립숲체험원은 공공기관이라 가성, 가심비가 다 높다.
사북면 해피초원목장은 ‘춘천의 스위스’라 불리는 새로운 핫플레이스다. 소양강을 내려다 보는 산기슭에 7만평 규모의 한우목장이 착상한 곳으로, 목장산책, 동물교감 체험, 포토존 인생샷 촬영, 커피타임을 즐긴다.
산토리니 풍 전망대를 산기슭에 지어놓은 구봉산 카페거리는 춘천의 전경을 한눈에 바라보며 집집마다 솥 다른 커피를 맛보는 곳이다. 야경 역시 아름답다.
많은 청춘이 사랑을 위해 춘천을 찾는다. 김유정이 못 다 이룬 사랑을 춘천에서 완성하길. 최근 파종이 끝난 감자 같은 사랑을. 함영훈 여행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