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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조 이사람] 문화·예술인들의 ‘법률 주치의’ 박주희 변호사
미술가 꿈꿨지만 포기하고 예술분야 법조인으로
저작권 분쟁 외에도 2차 창작물 산업 발달
단순히 법률지식 외에 창작품에 대한 이해 선행돼야
“스포츠 에이전트에 비해 문화·예술계는 시스템 정착안돼”

고1까지 미술가를 꿈꿨던 박주희 변호사는 문화 예술계 인사들의 법률 문제를 해결하는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여의도 사무실에서 인터뷰하는 모습. 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헤럴드경제=좌영길·안대용 기자] 문화·예술계 관련 산업이 성장하고, 종사자들의 권리의식도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현장에서 법적 뒷받침은 미흡하다. 창작물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의뢰인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소통하기가 쉽지 않아 진입장벽이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박주희(37·사법연수원 42기) 변호사는 업계에서는 드물게 예술 분야 전문 변호사로 인정받고 있다. “단순히 예술인에게 법률 조언을 하는 게 아니라, 전반적인 매니지먼트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그를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났다.

“최근에는 아트테크라고, 미술품 구매도 재테크 수단이 됩니다. 미술품 공동구매를 하는 스타트업도 있고, 저작권만 사고파는 업체도 생겼어요. ”

그는 기존에 생각하기 어려웠던 분쟁이 문화예술계에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에는 유명 아이돌 가수가 콘서트 도중 북을 이용한 전통춤을 췄는데, 그 춤 원작자 상속인들이 문제삼은 일도 있다고 한다.

한 번은 미술 공모전 응시자가 민화 창작물을 차용해 대상을 수상한 일이 있었다. 당사자는 민화에는 저작권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재해석한 2차 창작물은 엄연히 다르다. 결국 검찰에서 저작권법 위반 여부를 검토했지만, ‘민화는 다 똑같은 게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미술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박 변호사는 “산업과 연결이 되다보니까 창작자의 권리의식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한 업체가 미술작품을 대중화하는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생긴 저작권 분쟁도 비슷하다. 전속 작가를 고용해 원화를 만들어서 판매하는 사업이었는데, 외형만 놓고 무단 도용 논란이 벌어졌다. 언뜻 보면 유사하지만, ‘색면추상’ 기법을 사용하는 화풍에서 오는 공통점이었다. 사건을 맡은 박 변호사는 문제를 제기한 쪽 역시 다른 작가와 유사한 작품을 다수 그렸다는 점을 입증했고, 결국 같은 화풍을 공유하면서 생기는 현상이라는 점을 짚어냈다.

반대로 제도가 창작활동의 족쇄가 되기도 한다. 인간문화재를 이수한 승계자는 스승의 작품과 유사한 창작을 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승계자가 스승에게 배운 방식대로 제작한 작품으로 공모전에 참가하면 현행법상 업무방해나 저작권법 위반 문제가 종종 생기곤 한다. 박 변호사는 “법과 현실 융합을 할 수 있게 전문가들이 많이 관여해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문제를 외부로 드러내고 법적인 분쟁을 감수하는 일을 꺼린다. 박 변호사는 “단순히 변호사 업무만 한다면 계약서만 봐주면 되지만, 예술계 의뢰인들은 전반적인 상담을 하고 의견을 줘야 한다”고 말한다. 최근 ‘아트 콜라보’ 자문을 구한 의뢰인에게는 ‘당장 돈이 되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재능이나 작품의 가치가 떨어질 수 있으니 객관적으로 사업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건네기도 했다. “그분들의 세계를 이해해야 하는데, 작품 소개만 본다고 되는 건 아니에요. 저작권 문제를 따질 때도, 단순히 외관이 비슷하느냐를 놓고 판단할 수 없거든요. 법률 지식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죠.”

박 변호사는 원래 미술가가 꿈이었고,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미술을 공부했다. 부모님이 어린 딸을 데리고 공연이나 전시회를 자주 찾았던 경험은 지금의 자산이 됐다. 대전에 살던 박 변호사는 먼거리를 마다않고 서울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을 자주 오가며 견문을 넓힐 수 있었다. 하지만 미술가 진로는 포기했다. “예술가가 되기에는 재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변호사가 된 후에도 이 일에 대해 흥미가 있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다른 길을 가야 하는 건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결국 예술가가 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 분야 일을 하고, 이해를 잘 할 수 있는 법조인이 되자는 절충을 한 거죠.”

박 변호사는 상명대 문화기술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예술가도 어떻게 보면 본인의 비지니스를 꾸려가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기본적인 법률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에는 예술계 종사자들을 상대로 그런 교육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지 않거든요. 계약법이나 저작권법 등 예술계 실무에서 필요한 법률을 쉽게 전달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박 변호사는 문화예술계에 대한 구매수요가 늘고, 산업화되는 사례가 증가하는 데 체계적인 법률지원은 아직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스포츠는 에이전트가 있어서 전반적인 일처리를 다 맡아서 해주잖아요. 문화예술계는 아직은 시스템이라고 할 만큼 정착이 안된 것 같습니다. 해외 작가들과 일해보면, 에이전시가 있어서 알아서 처리를 하는데 우리나라 작가들은 아직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권리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종합병원 의사같은 법률가보다, 예술가를 온전히 이해하는 ‘주치의’같은 역할을 하고 싶은 게 박 변호사의 목표다.

박주희 변호사는 ▷연세대 법학과 ▷사법연수원 42기 ▷홍익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 MBA ▷서울지방변호사회 사무차장 ▷예술법커뮤니티 부위원장 ▷한국매니지먼트연합 자문변호사 ▷한국예술법연구소 자문변호사 ▷보훈무용예술협회 자문변호사 ▷2019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 공로상 ▷법률사무소 제이 대표변호사

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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