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남산사색] 작은 왕국 사람들

10여년 전 ‘엑스페리먼트’라는 독일영화를 본 적이 있다. 실제로 1971년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의 실험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라고 한다. 20명의 지원자가 2주간 죄수와 간수로 역할을 나눠 그들의 심리와 행동변화를 관찰하는 것이었다. 교수의 의도와 달리 자신의 역할에 빠져든 지원자들은 실제 간수처럼 굴며 예상 못 한 과격한 행위를 일삼으며 실험이 종료됐다는 내용을 다뤘다. 단순한 알바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작은 권력, 그것도 누군가 한시적으로 쥐여준 권력에 취해 극도로 포악해지거나 그 포악함의 제물이 됐다. 비록 영화였지만 섬찟했다. 감당할 능력과 무거운 책임감이 없는 이에게 주어진 권력은 무서운 흉기였다.

사람들이 좇는 인생의 목표를 보통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이라고 한다. 학문적 성취나 선한 영향력 같은 가치는 논외로 하자. 슈퍼리치 같은 부나 노벨상 같은 명예, 장관급의 권력은 사실 일반인에겐 남의 일이다. 하지만 ‘작은 부와 권력, 명예’는 보통사람도 가져보거나 겪어보게 된다.

반장?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오래전에는 제법 ‘갑(甲)’처럼 구는 친구들이 없지 않았다. 대부분 듣기 싫어하는 군대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지금보다 훨씬 폐쇄적이고 비이성적이었던 1970~90년대의 군대를 경험한 이들은 폭력에 시달리기도, 가해자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허가권과 감독권을 가진 관청들의 권력, 하청업체를 쥐어짜는 원청업체의 갑질, 같은 부서 내의 위계 등 권력이 잘못 쓰이는 곳은 헤아릴 수 없다.

최근 가장 많이 뉴스에 오르내리는 것이 스포츠계와 연예계의 학교폭력 논란과 업무상 정보를 부당하게 이용해 투기를 해온 LH(한국토지주택공사) 비리 사건이다. 그들만의 ‘작은 왕국’ 안에서 부여받은, 혹은 부여받았다고 여기고 휘두른 권력의 오남용이 빚은 추악한 실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학생운동부 내의 폭력이 모든 선수에게 해당되는 건 아니지만 놀라운 사실도 아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대부분 숙소에서 단체생활을 했고, 후배는 선배의 말에 절대 복종해야 했으며, 어지간한 기합과 폭력 행사는 견뎌야 할 통과의례로 여겨졌다. 학창 시절 폭력 문제로 프로 입단이 무산되거나 징계를 받는 사례는 지금도 빈번하다. 오래전 자행된 폭력 사례가 뒤늦게 폭로되는 일이 잦아졌다. 성적 지상주의와 폐쇄적인 팀 운영은 이런 악습을 배양하는 음습한 토양이 됐다.

‘스포츠 학폭’이 개인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남기는 문제라면, LH 땅 투기는 공공기관의 집단일탈과 이들에 대한 감독 시스템 부재가 만들어낸 비리다. 토지 매매와 주택단지 조성 등과 관련된 중요 정보를 업무상 먼저 알 수밖에 없는 직원들이 이를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이용했다는 것에 전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부러우면 이직하라’는 LH 직원의 발언은 이 조직의 심각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심지어 이런 정보를 이용해 이득을 취하는 것이 LH의 복지라는 한 직원의 말에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과연 LH뿐일까. 사건 당사자들에 대한 일벌백계 처벌과 근본적인 문제를 발본색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회성이 아니라 앞으로 더는 이 같은 일을 꾸밀 생각조차 할 수 없게 하는 조치가 절실하다.

그들만의 왕국 안에서 벌어지는 어처구니없는 비이성적 일탈에 많은 이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하다. 누구도 그들에게 그럴 권리를 준 적이 없는데 말이다.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