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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승인 없이 北원전 돕는다?’…논란이 놓친 ‘진짜 쟁점’ [한반도 갬빗]
2018년 4월 남북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공동취재단]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남한의 북한 원전 건설지원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북한에 원자력 발전소를 지어주려면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북미 원자력 협정’ 체결과 미 의회의 승인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청와대와 여당은, 야당이 공세를 펼치고 있는 북한 원전 지원 추진 의혹에 대해 비상식적이고 비현실적이라며 단호하게 부인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전달한 ‘신경제지도’ USB에는 ‘원전’의 ‘원’자도 담기지 않았으며, 담길 수도 없었다는 얘기다.

문제가 된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당시 에너지 관련 남북 경제협력 의제로는 신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 스마트그리드’가 꼽혔다. 동해선 주요 에너지벨트 사업이다. 전직 청와대 관계자도 USB에 담긴 발전소 사업은 신재생 및 화력발전과 연관돼 있다고 했다.

북한의 원전 건설 지원은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 독자적으로 제안해 추진할 수 있는 사업도, 두 정상만의 논의로 진행해갈 사안도 아니라는 것이 원자력 및 외교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남북간의 문제일 뿐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 규범과 밀접히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단독으로 북한의 원전 건설을 지원하고자 했다면 대북제재 뿐만 아니라 IAEA(국제원자력기구] 규범을 위반하게 된다. 원전은 감시없이 사용되면 무기로도 바뀔 수 있는 시설이기 때문이다.

2018년 공개된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물론, 정부부처와 민간 차원에서 원자력 발전 지원에 대한 구상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을 전후로 통일기금 신탁부터 동북아 슈퍼그리드 사업까지 각종 남북경협 구상이 우후죽순으로 제안됐다. 원유 매장량 조사를 위한 공동시추를 추진하자는 제안까지 있었다. 그만큼 당시 공기관뿐만 아니라 민간단체도 남북대화 재개와 비핵화에 대한 기대가 컸다. 심지어 미국 최대곡물업체도 비밀리에 방북을 해 현지조사를 실시하던 때였으니 말이다.

2018년 5월 15일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이 주관하고 통일부와 남북물류포럼이 주최한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현을 위한 남북개발협력’ 세미나에서 김민관 KDB산업은행 통일사업부 연구위원은 국제사회의 협조 하에 원자력 발전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고 봤다. 컨설팅업체 삼정KPMG의 대북비즈니스지원센터는 ‘북한 에너지 산업 진출 전략’ 중 장기전력 사업으로 ‘원자료발전소 건립’을 꼽았다.

그렇다면 왜 이제와서 ‘대북 원자력발전소 사업’이 새삼 논란이 되는 걸까. 결국 모든 논란은 ‘문재인 정부를 비롯한 민주당 정부는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대북제재 위반을 감행할 수 있다’는 가설에서 시작된다. 민주당 정부의 정치적 경쟁 세력인 보수 정치권 내에서 주로 나오는 주장의 근거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궤를 같이하는 역대 민주당 계열 정당과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을 최우선 정책 중의 하나로 추구해온 만큼 북한의 비핵화 진전없이 불법을 감수하고서라도 대북 지원에 나설 수 있다는 의심이 이번에는 ‘산업통상자원부가 북한에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해주는 방안을 실질적으로 검토했다’는 의혹으로 연결된 것이라는 얘기다. 과거 김대중 정부의 ‘대북송금 사건’은 이러한 의심에 빌미를 제공한 것은 물론이다.

한반도 체스판과 주변국 이해관계

하지만, 이 의심이 문재인 정부에도 적용돼도 합리적이라고 하려면 두 가지 명제가 참이어야 한다.

첫 번째는 남북 관계개선과 경제협력이 북한을 국제무대로 견인하고 비핵화로 유인할 수 있다는 문재인 정부의 이른바 ‘한반도 운전자론’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명제이고, 두 번째는 문재인 정부가 비핵화 진전과 관계없이 대북제재 대상인 사업을 강행할 수 있다는 명제다.

첫 번째 명제에는 어느 정도 힘이 실리고 있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에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가속할 수 있는 핵심이 빠져있다. 바로 ‘비핵화 방법론’이다. 북한의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참석과 4월 남북 판문점 정상회담은 분명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였다. 하지만 거기서 멈췄다.

김 위원장이 말한 ‘비핵화’와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비핵화’의 정의와 기준은 첨예하게 달랐고, 대화는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다. 이례적인 리더십으로 평가받는 트럼프 대통령조차 북한의 비핵화 절차는 신고·검증을 중시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신고나 사찰없이 영변 핵시설 폐기(동결)를 조건으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중 가장 강력한 제재인 2270호와 2397호를 철회시키고자 했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비핵화 협상은 북한과 미국이 협상 당사자’라는 원칙 하에 남북협력 사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두 정상간 대화를 중재했다면 비핵화와 관련한 절충점을 찾는 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했다. 물론, 정부가 중재를 안한 건 아니다. 정부는 북한의 영변 핵시설이 핵무력의 80%를 차지한다며 북측에는 추가적인 조치를, 미국에는 제재 완화를 촉구했다.

하지만 이 접근마저도 핵 비확산체제(NPT)에서 한참 벗어난 추상적인 방법론이었다. 북한의 비핵화 방법론은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지 못했고,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 방법론에 대해 구체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같은 대북강경파는 문 대통령의 대북접근법을 “‘조현병(schizophrenic)’ 같다”고 비판했다. 허버트 맥매스터 전 국가안보보좌관과 같은 참모형 인사도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비핵화에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지적했다.

비핵화 대화가 멈추면서 문재인 정부의 신경제구상은 물론, 각종 남북교류사업도 진전을 보지 못했다. 비핵화 협상이 진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진 모든 대화는 되레 북한에 ‘미국과 중국, 러시아등 주요 강대국 정상들이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대화무대로 나왔다’고 선전할 명분을 만들어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 사이 북한은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미 협상에 불만을 품고 어렵게 세운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남북 양자협력사업은 추진될 때마다 대북제재 논란에 저지됐다.

그러나 두 번째 명제는 참이라고 보기 어려운 지점들이 많다. 문재인 정부가 대북제재 위반을 각오한 상태였다면, 지난 3년 사이 각종 사업이 부진할 이유가 없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부터 남북 철도·도로 연결사업까지 문재인 정부의 ‘판문점 공동선언’ 공약들은 대북제재의 벽에 부딪쳤다.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개소하면서 우리 정부에 대북제재 준수의지를 강조하고자 했던 미국은 한미 워킹그룹 구축에 동참했다. 인도주의 차원에서 제공하는 타미플루조차 유엔사의 제지로 쉽게 보낼 수 없었다.

금융지원도 마찬가지다. 지난 2018년 9월 미국 재무부의 컨퍼런스 콜을 받은 시중은행과 국책은행은 세컨더리 보이콧 대상에 오를 것을 우려해 통일기금과 관련한 금융상품 출시를 전면 보류해버렸다. 박지원 현 국정원장의 이력을 의심의 근거로 내세우는 사람들도 있지만,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이 때문에 되레 정보공유를 철저히 하고 있는 분위기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8년 4월 27일 오후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산책하며 대화하고 있다. [연합]

결국 중요한 건 ‘남한이 북한에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지원하려고 했다’는 의혹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운전자론’과 ‘선공후득’(先供後得·먼저 주고 뒤에 취한다) 전략이 비핵화 협상에 효율적이냐는 문제다.

돌이켜보면 김대중 정부의 선공후득 전략도 북한의 비핵화 방법론을 불신한 부시 행정부의 고농축 우라늄(HEU) 프로그램 개발 의혹 제기를 계기로 동력을 잃었다.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주도권을 잡으려면 북한뿐만 아니라 미국도 공략해야 한다. 미국의 협조 없이는 그 어떤 결정도 섣불리 내리기가 어렵다. 1954년 분단체제 틀 자체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여기에 중국과 일본, 러시아와 관계도 계산해야 한다.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가 올린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일부 면제안을 두고 기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북미 정상회담을 진행하면서 협상입지를 높이기 위해 시진핑 중국 주석과 북중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했고, 문재인 정부의 임기는 1년 남짓 남았다. 당장 북한을 어떻게 다시 대화 테이블로 끌고 오고, 비핵화 협상을 이끌어낼지 생각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원자력발전소를 지원하려고 했다’는 야당의 공세는 합리적인 의혹이라고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차라리 ‘한반도 운전자론’의 한계를 지적했다면 그 의도가 의심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겐 시간이 부족하다. 진정한 한반도 비핵화를 어떻게 이뤄내고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어떻게 의사조율을 할지 고민하기에도 벅차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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